전남 해남 땅끝마을. 30여년 만에 다시 찾았다. 이십대 후반, 처음 이곳에 발을 디뎠을 때는 뻐꾸기가 울던 늦봄, 맑은 날 저녁이었다. 여기가 반도의 끝자락이라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느 시인이 ‘살아온 날들을 다 데리고 왔다’고 했듯이 당시 나도 들끓는 청춘을 등에 지고 땅의 끝에 서 있었다. 그때 나는 바다만 바라보았다.
잔물결 하나 없는, 인조견을 펼쳐놓은 것 같은 바다는 저물면서 더 빛나고 있었다. 삼십대로 접어드는 나는 막막했다. 어제도 없고 내일도 없었다. 허무가 무거웠다.
그날 땅끝에 오래 서 있던 남루한 젊음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땅끝에서 돌아서면 바로 거기가 땅의 시작인 것을. 땅끝이 바다의 시작이자 바다의 한 끝자락이라는 것을.
뭍의 한복판으로 돌아와 적응과 일탈 사이를 정신없이 오가다 한동안 잊고 있던 옛 선승의 말씀을 부여잡았다. ‘땅에 넘어진 자, 그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
우리가 함께 읽는 오세영의 시는 4행에서 완결된 시다. 7행에서 끝나도 여운이 없지 않지만, 그다음부터는 부연 설명 같은 느낌이다. “끝의 끝은 다시 시작”이라는 구절은 ‘끝은 다시 시작’으로 줄여 읽어도 무방하겠다.
다시 찾은 땅끝에서 나 자신에게 물었다. 끝까지 가본 적이 언제였던가. 끝내지 못해 사라져버린 시작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이별하지 못한 이별들아, 만나지 못한 만남들아, 미안하다. 아니다, 오늘이 남은 생의 첫날이란 가르침을 놓치지만 않는다면 아직 지키지 못한 안팎의 약속들이 사뭇 고마워지는 날도 있으리라.
★ 이 글은 농민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