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병 시절, 신고식을 치를 때 고참이 “집이 어디냐”라고 물었다. 바짝 긴장한 나는 내무반이 떠나가라고 외쳤다. “네, 경기도 김포입니다!”
그랬더니 고참이 내 뺨을 툭 치면서 되묻는 것이었다. “인마, 김포가 다 네 집이냐?” 지내고 보니 선임병이 출신지를 묻는 것은 관례였고, 제대로 답하는 신병은 거의 없었다.
자기소개를 할 때는 어떠한가. 직장이나 학교 또는 사적 모임에서 자기를 소개할 때 이름, 나이학번, 부서학과를 말하면 끝이다. 신상 정보 공개가 길어지면 민폐다.
나는 신병이 자신의 거주지를 도시나 군 단위로 이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집’에서만 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을과 이웃 마을들, 즉 생활권에서 산다.
문제는 자기에 대한 인식의 크기가 작아졌다는 것이다. ‘나는 혼자’라는 자의식이 갈수록 강해진다. 가족 구성원이 줄어들고 집 밖 사회는 오직 ‘경제 논리’로 돌아가기 때문이리라.
급격한 산업화·도시화로 인해 ‘집’에 대한 개념이 달라졌다. 담장은 높아지고 문은 늘 닫혀 있다. 이웃이 사라졌다. 고향은 주소지로만 존재한다. 예전의 풍광과 인심이 오간 데 없다.
집에 있던 것들이 다 밖으로 나가고 밖에 있던 것들이 들어왔다. 출산과 잔치가 밖으로 나가고 우물과 화장실이 들어왔다. 가족보다 가전제품이, 어린아이보다 반려동물이 더 많아졌다.
공광규 시인의 시가 부럽다. 그렇다. 담장을 허물면 다 ‘들어온다.’ 시가 우리에게 이렇게 권하는 것 같다. ‘그대들 마음의 집을 에워싸고 있는 담장을 허물어보시라, 그리고 무엇이 들어오는지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보시라’라고.
★ 이 글은 농민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