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는 『호모데우스』에서 미래의 인간들은 불멸, 행복, 신성의 영역으로 다가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달구어진 프라이팬 위의 콩처럼 다글다글 볶이는 여름, 하라리의 견해보단 소설가 박민규의 ‘덥기만 덥고 짜디짠’ 지구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라는 묘사가 더 실감 난다. 어쩌면 덥기만 덥고 짜디짜기 때문에 불멸, 행복, 신성을 추구하는 신흥종교나 드루킹처럼 수상한 넷 집단이 비 온 뒤의 대나무 순처럼 번성하는 지도.
소설 「행복의 과학」에서 작가 박민정은 일본 신흥종교 ‘행복의 과학’교에 심취했다 탈출하는 전 과정을 블로그를 통해 고백한 청년 기노시타 류를 중요 인물로 등장시킨다. ‘행복의 과학’교는 일본 헌법 제9조일명 평화헌법 개정을 주장하는 극우 종교집단. 당연하게도 이들은 자이니치, 한국, 북한 등 일본 내 이민족과 인접 국가에 대한 배제와 혐오를 세력 규합의 근간으로 삼는다. 소설의 화자는 ‘행복의 과학’교를 “‘출판과 독서의 종교’라고 부를 만큼 출판에 관심이 많”고 “역사, 정치, 경제, 국가론 등을 주제로 한 다종다양한 출판물과 교리를 서사화한 ‘이야기’ 시리즈들은 실제 역사 속 인물을 이데올로그로 등장시키곤 한다”고 설명한다. 실제 ‘행복의 과학’교는 정당 ‘행복실현당’을 만들어 극우 보수세력에 파고들며, 인터넷 블로그와 댓글로 넷 우익들을 규합한다. 류는 넷 세대의 전형으로, 기성세대에 반감을 가진 청년들이 어떤 방식으로 ‘행복의 과학’교 류의 극단적인 새로움에 빠져드는지 보여준다. 마치 버블기 일본 사회에서 오컬트 붐을 타고 한순간에 젊은 층을 현혹시켰던 옴 진리교처럼, 과학기술에 힘입은 행복의 신 ‘엘 칸타레’의 현신은 인터넷이 세상의 전부인 청소년들을 쉬 현혹하는 것으로 화자는 파악한다. 흥미롭게도 류는 ‘행복의 과학’교를 ‘옴의 후계’로 지목하면서 탈출의 변을 내세운다.
나는 옴의 후계에서 도망쳤습니다. 그들이 무엇이라 말하든 이것만이 진실입니다. 그들은 반드시 현실적인 폭력을 저지를 겁니다. 폭력보다는 폭행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까요.(21쪽)
─ 「행복의 과학」, 『아내들의 학교』문학동네, 2017
류는 왜 ‘행복의 과학’교를 옴 진리교의 후계로 지목했을까? 옴 진리교는 1990년 진리당을 만들고 정치에 뛰어들었으나 교주와 신도 25명 전원이 총선에서 낙선했다. 정치권 진입에 실패하자 지하철역 사린가스 테러, 살인 등으로 체제전복을 꾀하여 일본열도를 전율에 빠뜨렸다. 류는 ‘행복의 과학’교 역시 행복실현당을 통해 정치세력을 배출하려 한다는 점에서, ‘행복의 과학’교가 정치권 진입에 실패할 경우 옴 진리교가 행했던 과격한 방식의 폭력단체로 전락할 것이라고 내다본 듯하다. 이와 아울러 류는 명민하게도 자기 서사를 가장 뜨겁게 전시할 수 있는, 다시 말해 네티즌들의 호응을 압도적으로 얻어낼 수 있고 일본인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주제, “‘행복의 과학’교는 옴 진리교만큼 위험하다”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려 한 것이다. (실제로 옴 진리교의 교주는 2018년 7월 6일 사형 집행됨으로써 다시 한번 세간의 화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폭로와 누설과 사생활의 전시로 대중의 관심과 인기를 끌어모으는 넷 세대의 전형 류는 이 고백록으로 파워블로거가 되고 급기야는 일본 전역에 팔로워를 거느린 인기 작가가 된다. 한국의 출판시장이 이 작가를 그냥 둘 리 없다. 『류의 이야기 - 행복의 과학』을 한국 출판사 이룸 서재가 번역 출간할 예정인 시점이 소설 속 시간이다.
작품을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보자. 이룸 서재에서 『류의 이야기』 출간에 관여하고 있는 사람은 사장, 최초 기획자 수영, 책임편집자 ‘하나’이다. 그런데 작가는 저자와 책임편집자를 혼란스러운 혈연관계로 엮어놓는다. 「행복의 과학」 서사의 원류는 하나 엄마의 남자, 하나의 생물학적 아버지이지만 결코 아버지로 인정하기 싫은 일본인 CF 감독 기노시타 히로무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히로무의 손자가 저자 류이므로, 하나에게 류는 조카인 셈이다. 기노시타 히로무는 80년대를 호령하던 유명 광고감독으로 그의 코카콜라 광고 시리즈는 버블기 일본 최고의 작품이었다. 히로무는 역사에 길이 남을 광고작품을 낳은 한편 절대 알려져서는 안 될 불명예의 증거, 하나를 낳았던 것이다.
하나와 하나 엄마는 히로무 감독의 무책임한 은둔과 더불어 세상의 얼룩으로, 심지어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에게조차 ‘왜공주 년’ ‘자기 몸도 간수하지 못하는 더러운 년’ 등 불결하고 타락한 타자 취급을 받으며 수치스럽게 살아왔다. 가족의 수치, 결혼한 여자들 사이에서 정상가정을 위협하는 기생충, 민족의 오물 덩어리 취급을 받은 그녀들은, 그 어느 누구에게서도 지지받거나 이해받지 못한 채 이중적으로 혐오의 대상이 된 피해자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는 비밀스러운 출생 과정을 꼭꼭 숨긴 채 무심함과 무감함을 가장한 속내 감추기, 방관자적 거리두기 등을 생의 태도로 완전무장한다. 그래야만 건조한 직업인으로서, 비밀스럽고 불편한 관계인 저자의 책임편집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의 과학」소설 안에서 전개되는 『류의 이야기』는 일종의 ‘탈출기’다. 1925년에 쓰여진 한국의 고전, 최서해의 「탈출기」는 간도로 이주한 가난한 청년이 현실의 모순을 깨닫고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하게 되는 서간체형식의 작품이다. 『류의 이야기』는 이와 반대로 특정 이데올로기에 빠졌던 한 청년이 그 이데올로기보다도 더 강력하고 멋있어 보이는 오토코구미男組·남자조직·반反우익단체에 반해 배교하는 내용이다. 근대적 남성 개인에게 이데올로기가 존재의 의미였다면 현대적 남성 개인에게는 패션, 혹은 타인의 관심이 존재의 의미라고나 할까? 댓글만이 나의 힘인 넷 세대답게 류는 모든 사적인 내용을 가감 없이 인터넷 블로그에 전시한다. 게시물에 달린 부지기수의 댓글과 조회수가 류를 인기작가로 만들었다. 자신의 글이 신뢰받지 못할 즈음, 세간의 이목을 끌어들이기 위해 ‘나의 아버지는 살인자입니다’라는 경악할만한 내용을 선전 포스터마냥 당당하게 내건다. 1991년 압구정동 맥도날드 살인사건의 가해자가 자신의 아버지 기노시타 미노루 라는, 가문의 절대비밀을 인터넷 확성기를 통하여 온 세상에 고한 것이다. 만약 자기 저서의 한국어판 편집자가 숨겨진 고모라는 사실을 류가 알았다면 그것 역시 광고자료로 삼았을 것이다. 타인의 고통이 크고 충격적일수록 자기 서사의 잿밥이 되는 인터넷 세대의 생존 방식과 생태계를 소설 안의 또 다른 이야기, 『류의 이야기』로 길게 삽입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아버지 기노시타 히로무에게 한국인 현지처와 딸이 있다는 사실을 안 아들 기노시타 미노루는 야구 친선경기를 치르기 위하여 서울을 방문, 오로지 ‘예쁜 한국 여자’란 이유로 생면부지의 박영희를 살해한다. 그러나 이 사실은 미노루가 미성년이고 아버지가 일본의 유명인이란 이유로 은폐된 채 형 집행이 정지되고 신문기사는 피해자 ‘박양’의 안타까운 사연과 가족사를 포르노적으로 집중 보도하였다. 1997년 이태원 햄버거 가게 살해사건을 연상케 하는 이 사건을 통해 작가는 여성혐오의 근저에 인종혐오가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피해자 박양을 향한 가해자 미노루의 칼날은 어떻게 보면 하나 엄마, 혹은 하나를 직접 겨냥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생물학적 아버지 때문에 투명인간처럼 살아야만 하는 피해자인 동시에 한국 여자를 죽인 가해자를 이복 오빠로 두어야 하는 복잡한 상황에 하나는 처한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 내용을 읽은 하나의 태도는 단호하다. 후속작 「A코에게 보낸 유서」에서 하나는 이렇게 항변한다.
출생의 비밀은 유세할 만한 것도 숨길만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류가 고백한 일련의 내용들도 그저 일어나버린 사실일 뿐이다. 명백한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으며 누구도 그 사실에 조력하지 않았다. (51쪽, 강조 필자)
─ 「A코에게 보낸 유서」, 『아내들의 학교』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 자신을 피해자 혹은 가해자의 프레임에 가두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냉정하리만치 객관적인 판단. 이처럼 무심함과 무감함, 거리두기의 응시가 아니라면 하나의 삶은 피폐하기 이를 데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태도야말로 소설 속 인물들을 아주 객관적으로, 고현학적考現學的으로 탐구하는 작가의 서늘한 시선과 닮아있다.
「행복의 과학」에서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인 듯하다. 그 하나는 문화사적 측면에서 신흥종교 들여다보기. 일본의 종교를 모델로 택하였지만 작가는 한국의 인터넷 지형을 통해 급부상하는 야릇한 단체, 지난 정부와 관련된 여러 종파들이 한국사회에 끼친 영향 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듯하다. 다른 하나는 세대론이다. 전작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에서 선보인 대로, 2030세대가 기성세대에 대하여 가질 수밖에 없는 적개심과 반감, 인터넷을 통해 점점 우경화되어 가는 젊은 층들에 대한 관찰 들을 중2병 상태의 류의 고백을 통해 드러내 보인다. 일베와 워마드 등 가장 뜨거운 넷 세대들의 생존방식은 자기 아버지의 살해 행위, 아버지의 자살 사실과 유서, 가족사마저도 전부 ‘흥밋거리의 전시물’(102쪽)일 뿐인 류의 생존방식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파악한 듯하다.
마지막으로, 진짜 하고 싶은 말은 혐오의 기원에 관한 것. 후속작 「A코에게 보낸 유서」에서는 집요하게, 구체적으로 여성혐오의 근원을 탐색해낸다. 이를 위해 「행복의 과학」에서는 기노시타 가문 3대와 가문의 투명인간 하나 등의 기본 얼개 위에 근대성이 기획한 가부장성, 우생학에 근거한 인종혐오와 차별의식 등을 고현학적으로 탐구해낸다.
「행복의 과학」을 끌고 가는 한 축이 기노시타 류의 고백록이라면, 류의 아버지 기노시타 미노루가 자살하면서 아들 류에게 보낸 너절한 자기변명적 유서들이 「A코에게 보낸 유서」의 한 축을 이룬다. 류는 이 유서들을 알뜰하게 블로그 게시물로 활용하였다. 작가는 류의 아버지 미노루의 글을 통해 기성세대 남성들의 망상적 자기애와 인종 우월주의를 선보인다. 미노루가 전리품처럼 평생 동안 간직한 애장품은 마초주의 소설 「마코」 그리고 피해자 박영희의 일기이다. 우생학을 지배 논리로 포장해왔던 시대의 국민답게 그는 열등한 인간을 혐오한다.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추호의 반성도 회오도 없이.
반성이란 무능한 행위다. 아무것도 능동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그런 나에게 유의 문장은 놀라운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명백하게 저열한 종족이 있고, 그들의 졸렬한 삶을 다른 누군가가 해결해줄 수 있다는 믿음.(57쪽)
─ 「A코에게 보낸 유서」
그가 애호하는 작품에 관한 감상에서 드러나듯이 그는 반성은커녕 자신의 행위를 ‘이게 다 아버지의 저열한 인종 여자 때문이야’라는 식의 혐오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신의 과오의 희생양인 박영희, 소설 속의 에이코, 친구 유타로가 겁탈했으며 자신도 동조한 조선중고급학교 영자를 동일 선상에 놓고, 어느 정치인의 돼지발정제 무용담처럼 향수 어린 추억을 곱씹는다. 기성세대 마초를 대변하는 듯한 무반성의 인간 미노루의 윤리감각은 오히려 다른 데 있다. 그는 시대를 한탄하며 기본윤리가 붕괴되었다고 좌절한다.
우리 가족의 비밀은 차마 언론이라고 부를 수 없는 지라시에 의해 양산되고, SNS에 의해 소비되고 있다. 포르노처럼. 누구의 동의도 받지 않은 포르노. 차라리 범죄물인 스너프에 가깝다. 단언컨대 오늘의 폭로는 우리 사회가 기어이 붕괴되었음을 보여주는 가장 뚜렷한 징후인 것이다.(48쪽)
─ 「A코에게 보낸 유서」
아버지의 살해행위를 블로그를 통해 고발한 류의 글을 본 직후 쓴 내용이다. 재일조선인이면서 조선인을 극혐하던 친구 유타로, 유타로와 함께 ‘열등 민족’ 여자에게 마음껏 휘둘렀던 일련의 행위인종차별, 혐한, 재일조선인 여성 성폭행, 살인가 낭만으로 받아들여지던 좋았던 옛 시절에 대한 향수. 그는 자신의 범죄행위를 사죄하거나 뉘우치기는커녕 악행을 만천하에 전시하는, 그것을 즐기는 요즘의 세태를 윤리의식의 붕괴로 보는 꼰대다. 미노루의 이런 꼰대성은 국적, 진보, 보수의 성향을 가리지 않고 기성세대 남성들이 과거에 무시로 행해왔던 여성차별과 폭행의 행적들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하나를 오사카에 위치시켜 한국 남성들이 과거 일본 남성들이 행해왔던 행위와 똑같은 행위, 매춘과 민족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우쭐거리는 것 등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류의 표현을 빌자면, ‘멍청한’ 놈들의 한심한 짓거리들은 시대와 종족에 상관없이 절대 변하지 않고 지속된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여성혐오의 근저에 만연했던 남성우월주의와 인종혐오를 적시한다.
그렇다면 소설 속 여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일종의 전략이라고 보여지는데, 우선 여자들은 결코 피해자 프레임에 스스로 갇히지 않는다. 하나는 부모세대의 절대적 피해자이지만 그것은 이미 일어난 일이며 내가 원인인 일이 아니라고 치부하는 강단을 지니고 있다. 하나의 사수 수영은 출판사 사장으로부터 온갖 위협과 따돌림, 추방과 물리적 폭력 등을 당하지만 내부고발자로서 조금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어 사장에게 사과도 받아내고 복직한다. 죽은 박영희의 정신적 지주였던 운동권 여성은 위장 취업으로 경찰에 끌려가 모진 성고문을 받지만 끝까지 살아남아 국회의원이 된다. 소설 속 여성들은 감각이 무딘 것처럼 보일 정도로 냉철한 듯 보이지만, 서로를 감싸고 편이 되어주는 자매애를 발휘한다. 하나-수영은 서로의 손과 발이 되어 작가와 마찬가지로 고현학적 작업을 싸움의 무기로 장착한다. 얼굴 없고 존재 없고 목소리조차 없었던, 혐오살인의 희생자 박영희의 일기를 복원해 세상에 알림으로써 유령들에게 신체를 입히는 작업을 하며, 이 작업은 여성혐오에 맞서는 자의 투쟁으로서 지속될 것이다. 지상의 수많은 A코들의 친구가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