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나라를 지키는 군인으로 살고 싶었던 한 여성이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임무에 성실하고 자신에게 정직하며 세상을 향해 용감하게 목소리를 낸 트랜스젠더 변희수. 그녀는 사방 꽉 막힌 벽과 냉대, 편견과 공격을 다 받아내면서도 의연했다. 자신의 본 모습을 사랑했으며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고 결정한 주체적인 여성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녀를 향해 돌을 던졌고 그토록 원하던 군인의 임무조차 수행하지 못하게 막아버렸다. 폭언과 비난, 위협과 방관, 비정상인 취급으로 응답했다. 성적 자기결정의 권리조차 인정하지 않는 비정한 세상. 그녀는 스스로를 놓아버리는 안타까운 결정을 하고 말았다.
충격적인 소식에 참담한 마음으로 읽게 된 한정현의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에서 예의 저 사건이 에피소드로 쓰인 것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고인이 된 변희수의 전역과 복무를 둘러싼 편견과 차별과 욕설과 비아냥이 일년 내내 진행되는 동안 이 작품이 구상되고 쓰여졌을 터인데, 변희수의 사건이 작가로 하여금 작품을 쓰게 촉발한 동기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조심스레 해 본다.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에서 미국의 트랜스젠더 메리는 연인 수연이 울면서 전해준 링크를 통해 한국 군대가 성전환 군인의 복무를 거부했다는 기사를 보게 된다. 기사를 본 두 사람은 한국행을 감행한다.
그런데 소설의 형식이 조금 특이하다. 독자를 향해 구어체로 말을 거는 큰 틀 안에 시간차를 두고 액자형식으로 구성된 두 이야기가 존재한다. 일제 강점기, ‘안나’라는 여성이 초점 인물인 한 축의 이야기와 안나의 이야기를 트랜스젠더 메리에게 전해주는 현재 시점의 선영이 엮어내는 다른 한 축의 이야기가 공존한다. 한 세기를 넘는 시간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이야기는 묘하게 겹쳐 있다. ‘에로·그로·난센스’의 일제 강점기 성 풍속과 ‘섹스·스크린·스포츠’의 현대 문화 풍속도가 겹치며, 일제 강점기의 통치 담론 ‘과학’과 ‘위생’은 현재의 ‘과학 소년’ 담론에 포개어진다. 1920년대의 초점 인물 안나의 역할 역시 현재 시점의 선영의 역할과 겹쳐 있다. 마치 민화처럼, 원근 없이 하나의 화폭에 모든 소재를 병렬해 놓은 산만한 방식의 소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의외로 명확하다. 복잡한 민화의 주제가 단순하듯.
일제 강점기의 대중잡지, 신문기사, 학술서적의 기록들, 현대의 유행가, 만화영화 「마징가 Z」의 아수라 백작 등의 소재를 다양하게 차용하고 동원하면서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이다.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 여기서 우리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소설 속 과거 인물과 현재 인물, 그리고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존재할 사람들, 그들은 트랜스젠더·게이·레즈비언 등으로 분류되는 성소수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소원은 왜 하필 ‘과학 소년’일까?
백년 전에도 지금도 과학/비과학, 위생/비위생, 소년/비소년, 정상/비정상의 날 선 경계 짓기, 수많은 ‘비-’ 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지속적이고 집요하며 폭력적이다. 의사/산파혹은 무당, 남자/비남자트랜스젠더 들, 정당하게 이름이 부여되어 인정받고 존중받는 존재인 과학 소년/이름조차 떳떳이 알려지지 않거나 아예 삭제되어버린 퀴어들. 한정현이 주목하는 것은 이 ‘비-’ 존재이며 이들에 대한 사랑과 응원의 메시지가 소설의 주제이다.
우선 일제 강점기의 초점 인물 안나를 주목해 보자. 안나의 호적상 이름은 서화련, 세브란스 의사 서윤식의 수양딸이다. 소설 속 인물 가운데 유일하게 서술되어 있는 안나의 모계 계보는 안나의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 다시 어머니의 어머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여인들은 하나같이 이름조차 없는 미혼모들. 그녀들은 조선시대 왕의 의녀였거나 전염병으로 죽은 여자들의 넋을 달래는 무당, 단돈 사원에 팔려 민며느리로 살다 도망쳐 천기가 된, 길 위의 비천한 존재들이었다. 미혼모가 낳은 딸, 그 딸이 다시 미혼모 상태로 낳은 딸, 그 딸의 딸이 안나인 셈인데, 여기서 미혼의 불가촉천민이 어떤 연유로 잉태를 하게 되고 아기를 낳게 되는지 그 폭력과 수치의 역사는 삭제되어 있다.
안나의 어머니는 안나를 낳자마자 과다출혈로 사망하게 되는데, 남긴 말은 이것이었다.
“이 아이에게 이름을 주세요. 이름을 불러주세요.”
‘이름’을 주고 이름을 ‘불러’ 달라는 당부는 다시는 자신과 선대여성들이 겪었던 폭력과 수모를,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한 벌거벗은 생명의 삶을 대물림하지 말기를 소망하는 간절한 바램의 소산일 것이다.
다행히 안나는 의사의 수양딸로 신교육과 근대 의료과학교육의 수혜를 입은 신여성이자 페미니스트이다. 그녀는 제중원濟衆院의 초대 간호사 안나 제이콥슨의 정신을 받들고자 스스로를 안나로 호명, 무지하고 가난하며 소외된 여성과 제국의 이상, 위생과 과학 담론의 경계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보듬는다. 일본제국이 통치기술로 내세운 위생 담론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 지었다. 제국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수행하고 헌신할 수 있는 건전하고 건장한 남성, 그런 남성을 낳고 교육시키는 데 손색이 없을 만큼의 교육을 받은 가임 여성은 정상성 범주에 들어가는 제국의 국민이다. 위생과 과학이라는 통치담론에 의해 제거되거나 청소의 대상이 되는 존재들은 트랜스젠더와 동성애자 등이며 이들은 ‘변태성욕자’로 분류된다.
잡지며 신문이며 모든 곳에서 저주처럼 그런 글들이 쏟아졌다. 변태성욕자. 서로 사랑을 나누는 여성과 남성을, 남성의 옷을 입은 여성을, 여성의 옷을 입은 남성을 변태성욕자라고 했다. 아내의 몸에 칼로 문신을 새기고 머리채를 잡아 기찻길로 미는 남성들에게나 붙는 말, 여자를 던져 죽이지 않고서는 절대 들을 일 없는 그 말은 그러나 안나와 경준과 수성과 같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자주 달라붙었다.(338쪽)
강점기 일제의 위생경찰은 ‘위생’이라는 이름으로 개개인의 삶과 행복권마저 간섭하고 통제했다. 사랑의 행위와 키스마저 검열과 단속의 대상이 되던 시절, 안나의 의무이자 사명은 비위생, 즉 비정상 범주로 몰려난 사람들을 보듬고 사랑하며 친애하는 것. 남장을 하고 남자되기를 꿈꾸었던 소설가 경준경아라는 호적상의 이름이 있다, 여자로 살고 싶은 여장남자 수성 등 소위 변태성욕자로 분류되어 쓰레기 취급을 받거나 폭행당하거나 하대당하거나 강제추행 당하는 성 소수자들이 안나가 사랑하고 친애하는, 가족과도 같은 존재였다. 물론 안나는 의붓아버지의 강요로 강제결혼 당하여 동경에서 죽은 듯이 살면서 몰래 경준을 사랑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경준은 여자임이 발각돼 머리를 깎인 채 성폭행 당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고, 경준이 낳은 아이는 수성이 맡아 기르게 되며 경준과 안나는 미국행 배를 타게 된다.
수성은 안나의 얼굴을 쓸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의 이름을 지어줄게. 그리고 기억할게.”
그러니까 우리는,
“낙관하자.”(339쪽)
안나의 어머니가 죽어가면서 한 말을 수성이 그대로 복기하는 이 장면을 통해 작가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가부장제가, 근대 위생과 과학 담론이 무엇을 추구하고 어떤 것을 배제하든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 우리, 즉 비정상 범주에 내몰린 존재들이 계속 태어나고 다시 태어나 스스로 이름을 지니고 삶을 지속해 나간다면, 낙관한다면 절망을 벗어날 것이라는 전언.
이 분명한 목적의식은 과도한 혁명적 낭만주의의 성격을 띠고 있어 의구심을 자아낸다. 나만 불편한 것일까? 작가가 지어낸 평면적 인물 안나와 선영의 분명한 합치 지점과 계몽성이, 터무니없는 낙관성이, 피 흘리며 죽어가는 수많은 비체abject, 鼻涕, 非體들의 간난신고에 관한 과감한 삭제가 나를 불편하게 한다. 마치 사탕의 달콤함에 젖어 그 사탕 껍질을 일일이 포장하느라 손가락이 뒤틀려버린 노동자의 수고를 망각하고 마는 것처럼, 소설은 ‘사랑’ 하나로 점철된 과도한 낭만성으로 성적 소수자의 실제 삶의 고통과 고독과 생존의 위험을, 그 외로움과 두려움을 싸악 지워버리고 만 꼴이 된 듯하여, 의도는 좋지만 과도한 목적성과 계몽성이 소재주의로 흐르고 만 것이 아닌가 하는 껄끄러움이 독서의 속도를 지연시키고 훼방 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내가 이 작품의 서평을 쓰는 이유는, 과거에도 존재했고 미래에도 존재할 그(녀)들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다시 기억합니다. 오늘 살아 숨쉬기를 바라는 우리를 기억합니다. 무탈한 밤을 기원하며 서로의 곁이 되어주고 싶은 우리를 기억합니다. 우리가 함께 살기 위해 행동해야 함을 기억합니다. 그 마음으로 변희수 하사의 명복을 빕니다.
평등한 세계를 향한 그와 우리의 꿈, 함께 기억합시다.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추도문 「故 변희수 하사를 추모하며」의 일부
‘과학 소년’,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인정하는 평등한 세상이 전개되기를 간절히 비는 작가의 의지와 마음을 읽을 수 있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