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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 한국의
불행한 한국인
한국 정부의 성적표
2021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을 선진 32개국에 포함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선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한다. 2021년 기준 한국의 국내 총생산GDP은 세계 10위이고 1인당 국민 총소득GNI은 3만 5000달러를 돌파했다. 2021년 6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영국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 회담에 초청받아 국격을 높였다는 찬사를 받았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전 세계가 한국의 성공적인 방역에 주목했다. 팬데믹 이전부터 심각한 불평등과 취약한 공공 의료로 인해 몸살을 앓던 미국, 브라질, 인도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참사를 겪었고 복지 선진국으로 알려진 유럽의 영국, 독일, 스웨덴도 큰 혼란을 피하지 못했다. 반면 한국 정부는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방역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는 사이 『눈 떠보니 선진국』박태웅, 한빛비즈, 2021이라는 제목의 책도 나왔다. 젊은 세대의 지식인들은 한국의 놀라운 발전을 직시하자면서 “우리는 선진국 ‘추격’을 끝내고 ‘추월’하는 단계에 와 있다”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기성 민주화운동 세대는 한국을 너무 비판적으로만 본다고 질타한다. 실제로 2020년 구매력 기준 1인당 GDP로는 한국이 일본을 추월했다. 과거의 식민지 국가가 식민 종주국과 비등한 경제력을 갖게 된 세계 유일의 사례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오스카상을 휩쓸고, 그룹 BTS가 전 세계 청년들의 사랑을 받는 등 여러 영역에서 ‘한국 모델K-model’이 거론될 정도로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출간된 『성공한 나라 불안한 시민』이태수 외, 헤이북스, 2022에서는 복지 및 정책 전문가들이 나서서 나라는 부유해졌는데 반대로 시민의 삶은 팍팍해진 현실을 폭로한다. 이 책의 필자들은 경제는 발전했으나 국민 행복 지수는 후퇴했고, 2016~17년 촛불시위를 거친 뒤 민주화 이후 세 번째 민주정부인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지만 삶의 질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으며, 청년을 비롯한 대다수 한국인은 삶이 더욱 힘들어졌다고 말한다. 임금 소득만으로는 잘살기 어렵다고 생각한 청년들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주식과 비트코인을 긁어모았다. 그러다 금리 인상의 여파로 이자가 오르고 원금 상환 부담이 커지자 벼랑 끝으로 몰리고 말았다.
한국은 어느새 고령화 사회 초입에 들어섰지만, 65세 이상의 취업자 비율은 34퍼센트로 주요 선진국 중 압도적 1위이다. 노인이 되어서도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나라라는 이야기다.
그뿐이랴. 청년, 빈곤층, 노동자, 여성, 노인의 일상생활과 사회경제적 권리는 참담한 수준이다. 2021년 「세계행복보고서」에서 한국은 2020년에 비해 11계단 상승한 50위를 기록했다1위는 4년째 핀란드이다. 이 순위는 1인당 GDP, 사회적 지원, 건강 기대 수명, 삶에 대한 선택의 자유, 관용, 부정부패 등 여섯 개 항목에 대한 평가를 기초로 매겨지는데, 한국은 건강 기대 수명과 1인당 GDP 등 두 개 항목은 비교적 상위권에 속해 있으나, 사회적 지원과 삶에 대한 선택의 자유는 거의 최하위권이다. 특히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 삶에 대한 선택의 자유는 148개 국가 중 128위였다. 즉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웃이나 친구 중에서 도와줄 사람이 있는가”와 “당신이 선택한 삶에 만족하는가”라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변한 비율이 매우 낮다. 여러 가지 사회적 부정의와 불평등으로 인해 사람들이 얻는 기회가 저마다 다르고 다수가 삶의 기회를 제대로 얻을 수 없다면, 그곳은 개인이 자신의 역량을 발전시킬 수 없는 사회이다. 핀란드나 덴마크가 언제나 「세계행복보고서」 상위에 위치하는 이유 역시 평등, 복지, 반부패, 안전, 신뢰 등의 측면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낫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노동자, 빈곤층, 노인, 여성 등 사회적 약자의 삶은 과거에 비해 개선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OECD 국가 중 최하 수준이다. 김대중 정부 이후 4대 보험 체계를 갖추는 등 사회복지 시스템이 발전했지만 가입률은 낮고, 특히 퇴직급여를 연금으로 받는 비율은 매우 낮다. 세 번째 민주정부인 문재인 정부 시기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2015년 세계경제포럼WEF의 보고에 의하면 한국은 소득 불평등과 노동자 해고 관련 정책이 선진 30개국 중 최악이었다. 임금 불평등도 심각하지만 조세, 복지 등을 통한 재분배 효과도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고, 대기업 등이 지대rent를 뜯어가는 형태의 부패가 매우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한국보다 상황이 낫긴 하지만, 사회적 지표가 경제 발전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나라로 이웃 일본이 있다. 1980년대에 일본은 미국을 위협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풍요로운 사회’가 되었다는 찬양 아래에서 보통 시민의 생활은 전혀 풍요롭지 못했다. 이때 일본의 노동자들은 극도의 경쟁 속에서 과로사로 쓰러졌는데,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의 한국이 그 모습을 그대로 답습했다. 일본이 가지고 있는 ‘자살률 1위’를 물려받은 한국은 그 자리를 20년째 지키고 있다.
저출생, 자살, 그리고 산업재해
전쟁을 제외한다면, 국가나 사회의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건강을 가장 심각하게 위협하는 현상은 저출생과 자살이다. 특히 출생은 국가 및 사회 재생산의 가늠자이다. 한국은 현재 전 세계에서 아이를 가장 적게 낳고2021년 합계 출산율 0.81명 자살률은 가장 높은2021년 인구 10만 명당 26명 나라이다. 그 밖에도 산재 사망자의 수, 임시직 고용 비중, 연평균 노동 시간, 성별 간 임금 격차, 노인 빈곤율 등의 지표에서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OECD 국가 중 바닥권이다. 2020년에는 외환위기 이후 가장 많은 수인 345명이 영양실조로 사망하기도 했다. 이런 지표를 보면 한국 사회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굴러가는 게 이상할 정도다. 과연 앞으로 한국이 지탱될지, 지금 태어난 아이들이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표1〉에서 볼 수 있듯이 1990년대 이후 저출생이 악화일로이다. 2020년대에 들어서는 한 해에 태어나는 아기의 수가 30만 명 이하로 줄어들었고, 합계 출산율은 0.8명까지 오게 되었다. 출산율은 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 미미하게 증가했지만 추세를 뒤집지는 못했다.
모든 생물은 생태학적 여건에 따라서 번식 여부를 결정한다. 살기 좋은 환경에서는 낳지 말라고 해도 많이 낳고, 척박한 환경에서는 아무리 낳으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현재 한국인들, 특히 여성은 사회 재생산을 기피·사보타주sabotage 혹은 파업 중이다. 가족사회학자 장경섭이 말하듯 일종의 ‘자기 부과적 구조조정’에 들어간 것이다. 서울대 국제대학원의 김현철 교수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인구절벽’에 기인한 것이며, 이제 한국이 그 뒤를 밟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대학교, 술집, 노래방, 커피숍이 문을 닫고 산부인과, 유치원, 예식장, 학원이 폐업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골목 상권이 무너지고, 지방 도시는 황량해지며, 지방 대학 캠퍼스는 폐허로 변하는 국가 대재앙의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한국은 이미 1979년을 기점으로 시장에 노동력이 무한정 공급되던 시기가 끝났다. 그런데도 정부는 1995년까지 산아 정책을 그대로 유지했다. 복지부 장관을 역임한 서상목은 당시의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국은 가족 계획에 성공한 나머지 방향 전환이 늦었다. 한국이 인구 대체율현 상태의 인구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 출산율 2.1명에 도달한 것은 1983년이다. 10년이 지난 1993년 『인구 정책 30년사』 발간 때도 600페이지 전부를 출산율 떨어뜨린 것을 자랑하는 내용으로 채웠다. 어디에도 출산율이 떨어져 문제가 될 것이라는 언급이 없다. 1995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유엔세계인구회의가 열렸는데 여기에 갔다 온 자문단이 “출산율이 너무 빨리 떨어진다. 가족 계획을 중단해야 할 것 같다”라고 제안하더라. 당시 내가 복지부 장관이었는데, 6개월간 인구 심의회를 거친 뒤 가족 계획 사업을 중단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1983년에 바로 저출산 대책을 세웠어도 늦었다.
그러고도 10년이 더 지난 2005년에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설치되어 정부 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처하기 시작했다. 왜 정부가 이미 저출생이 예상되던 1980년대 초, 심지어 1990년대까지 기존의 산아 제한 정책을 유지했는지 의문이다. 냉전 시대의 경제 발전의 틀에 안주했던 한국에서는 독재 정권, 정치 엘리트들과 관료 집단이 국가의 정책을 주도했다. 그러면서 김영삼 정부 이후 심지어 김대중, 노무현 정부 초기까지도 저출생에 대한 원인 분석이나 체계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2021년 한국금융연구원은 「향후 우리나라의 잠재 성장률 경로 추정」 보고서에서 출생 감소 추세가 지속될 경우 2030년 잠재 성장률이 최저 0.86퍼센트, 최고 0.92퍼센트까지 추락한다고 전망했다.
정부는 2006년부터 3차에 걸쳐 5개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2020년까지 15년 동안 거의 380조 원의 예산을 출산 정책에 쏟았다. 이 돈은 신혼부부 출발 지원, 자녀 양육 가정의 경제적·사회적 부담 경감, 양질의 다양한 육아 지원 인프라 확충, 임신·출산 지원 확대, 일과 가정의 양립, 가족 친화적 사회 문화 조성, 모성 보호 강화, 가족 친화적 징장 문화 조성, 학교·사회에서의 교육 강화 및 가족 문화 조성 등 100여 개의 사업에 지출되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저출생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기존의 생각과 정책을 넘어서자”라고 촉구했다. 제3차 ‘기본계획’은 저출생 대응 패러다임의 전환을 선언하고, 이에 따라 새로운 사회 구조적 대책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일·생활 균형, 평등하고 안정적인 여성 일자리, 그 밖에 고용·주거·교육 등 다양한 정책을 펼쳤음에도 합계 출산율은 더 가파르게 떨어졌다. 결국 노무현 정부 이후 역대 정부의 모든 정책은 격화소양隔靴搔癢하는 미봉책에 불과했다는 점이 드러났다. 여러 분야의 정책을 종합적으로 추진하지 않았고, 생애 과정의 격차 누적 같은 이유를 고려하지 않았다.
한국이 저출생합계 출산율 2.1명 미만 사회를 넘어 초저출생합계 출산율 1.3명 미만 사회로 돌입하게 된 원인은 매우 복합적이고 다양하다. 1930년대 스웨덴에서 저출생 문제가 본격화되었을 때 경제학자 군나르 뮈르달이 지적했듯이 그것은 단지 인구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정책의 종합판이자 정치적인 문제였다. 사회학자 박경숙도 “저출산은 단순히 인구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모두가 겪고 있는 고통의 결과물”이라고 지적한다. 인구 감소를 경고하는 신문 기사에 “저출산으로 망하는 게 아니라, 망할 세상이라 저출산이다”라고 달린 댓글에 답이 있다. 사회학자 조은주 역시 한국 사회에서 ‘인구’ 문제가 국가권력이 근대적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부상했음을 증명하며 “한국의 출산율은 문제 그 자체가 아니라 문제를 드러내는 증상이자 징후”라고 강조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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