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지나치게 성공한 동물의 고민
미국의 위대한 자연학자이자 사상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1817년 보스턴 근교의 콩코드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소년 소로는 시며 그리스 신화며, 손에 잡히는 책이란 책은 모조리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책벌레였다. 그런데 시인이자 범신론적 초월주의 철학자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이 같은 동네로 이사 온 걸 계기로 자연에 눈뜨기 시작했다. 특히 에머슨이 1836년에 저술한 에세이 《자연Nature》을 읽고 크게 감명받았다고 한다. 소로가 1845년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부터 2년간 월든연못Walden Pond 옆에 오두막을 짓고 살았던 얘기는 우리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하버드대에서 유학하던 시절, 나는 종종 월든연못을 찾곤 했다. 월든은 사실 연못치고는 좀 큰 편이다. 그렇다고 호수라 부르기에는 좀 과한 게 사실이다. 미국 정부는 1962년 월든연못을 포함한 인근 숲 전체를 국립유적지로 지정했다. 연간 줄잡아 60만 명의 방문객이 다녀가지만 자연 경관이 비교적 잘 보전되고 있는 곳이다. 연못을 뺑 두른 산책로로 접어들어 오른쪽으로 한 3분의 1가량 걸으면 소로가 살던 집터가 나온다. 집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버렸고, 지금은 그런 집이 있었노라 가리키는 작은 푯말만이 말없이 서 있다. 서너 평도 채 되지 않았을 단칸방 작은 집이 서 있던 자리는 이제 바람조차 아무런 걸림 없이 스쳐 지나가는 빈 공간이 되어버렸다.
충청남도 서천에 있는 국립생태원에서 원장으로 일하던 시절 나는 ‘생태학자의 길’을 만들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와 일본 교토의 ‘철학자의 길’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2014년 11월 23일 개통한 ‘제인 구달 길Jane Goodall’s Way’에 이어 그 이듬해 2014년 11월 24일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출간 기념일에는 ‘찰스 다윈 길Charles Darwin’s Way’을 열었다. ‘구달 길’ 봉헌에는 제인 구달 박사가 직접 참석해 뜻깊은 행사를 열 수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다윈 길’ 행사에 이미 죽은 다윈을 모실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내게 묘안이 떠올랐다. 다윈이 만일 부활해 우리 곁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만나고 싶어 할 사람이 누구냐고 그에게 묻는다면 서슴없이 프린스턴대 로즈메리 그랜트Rosemary Grant와 피터 그랜트Peter Grant 교수라고 답할 것이다. 이 부부 교수는 거의 반세기 동안 갈라파고스 현지에서 다윈이 관찰하고 채집했던 핀치새Darwin’s finches를 연구해온 우리 시대 최고의 진화생물학자들이다. 게다가 피터 그랜트 교수는 언뜻 다윈을 참 많이 닮았다. 나는 조심스레 그에게 다윈의 아바타 역할을 해주실 수 있느냐는 이메일을 보냈다. 그는 흔쾌히 내 요청을 수락했고 바쁜 일정 중에도 1주일이나 시간을 내 한국을 방문해줬다. 그는 내가 만난 세계적인 석학들 중에서 가장 따뜻한 분이다.
내가 국립생태원장 일을 마치고 떠난 뒤인 2018년 4월 24일 ‘소로 길Henry David Thoreau’s Way’이 열렸다. 여기에는 월든연못의 소로 유적지에도 없는 게 있다. 국립생태원 ‘소로 길’에는 바로 소로의 오두막이 재현돼 있다. 미국 소로학회The Thoreau Society의 도움으로 철저히 고증을 거쳐 지은 오두막이다. 소로의 오두막에 들어서며 몇 년 전 월든 연못을 찾았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소로의 오두막 집터에서 메추리알 크기의 동그스름한 잿빛 조약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 소로의 성품처럼 수줍은 듯하지만 곧은 결기가 한 세기 반이라는 세월을 넘어 내 손과 팔의 핏속으로 흘러드는 것 같았다. 불현 듯 소로 선생님께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미리 편지지를 준비해오지 않았기에 종이 대용으로 쓸 것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작나무 한 그루가 흰 살갗을 조금 벗어 들고 서 있었다. 소로 못지않게 자연의 싱그러움을 감칠맛 나는 언어로 빚어냈던 정비석 선생님은 자작나무를 나무 중의 왕이라 일컬었다. 나도 거무죽죽한 숲에 홀로 흰옷을 걸쳐 입은 자작나무를 특별히 좋아한다. 자작나무의 껍질을 조금 떼어 편지를 써보기로 했다. 그런데 나는 그 자작나무에서 못 볼 걸 보고 말았다. 그 나무 껍질에는 인간이라는 짐승의 앞발이 닿는 곳마다 무지함이 자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이름들이 빈틈없이 새겨져 있었다. 고백하기 부끄럽지만, 그중에는 우리 한국인의 이름도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한 세기 반 전에 이미 소로가 그토록 명확한 언어로 짚어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우린 아직도 가슴에 새기지 못했다. 그저 자연의 가슴팍에 오염의 족적을 새기기 바쁠 따름이다.
소로 선생님, 몇 년 전 저의 스승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 교수가 바로 이 자리에서 선생님께 써보낸 편지를 기억하십니까? 윌슨 교수는 저서 《생명의 미래The Future of Life》의 서문으로 실린 그 편지에서 한 세기 반 전 선생님께서 그토록 예찬했던 이 지구의 생명들이 얼마나 심각한 절멸의 위기에 놓였는지 조목조목 알려드렸습니다.
“제3의 밀레니엄을 맞는 이 지구에 아마겟돈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언자들의 말처럼 우주의 소용돌이가 우리 인류를 화염에 몰아넣는 게 아닙니다. 지나치게 풍요롭고 독창적인 우리 인간의 본성이 이 행성을 파멸시키고 있습니다.”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우리는 우리 자신을 현명한 인류라는 뜻의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똑똑하고 독창적일지는 몰라도 결코 현명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독창적이고 똑똑한 과학과 기술이 우리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음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현명한’ 과학과 기술이 우리를 아마겟돈의 위기에서 구원해야 합니다.
선생님, 저는 지금 선생님께서 지내시던 그 통나무집 터에 와 서 있습니다. 저는 일찍이 《월든Walden》과 《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에 실린 글을 통해 자연과 사회를 향한 선생님의 의지를 읽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저는 우리 인류가 ‘호모 사피엔스’의 자만에서 깨어나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 공생인’로 거듭나야 한다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자연 속에 함께 어우러져 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배하려는 우리의 오만한 사고방식, 경제성장 제일주의의 근시안적 정책, 나만 살고 보자 식의 이기주의적 도덕관 들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지구의 미래는 그야말로 불 보듯 뻔합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의식의 대전환이 절실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집터를 떠나려던 참에 개미 한 마리가 동료의 시체를 나르는 걸 보았습니다. 우리에게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생명은 늘 우리를 떠나지만, 또 한편에서는 더 큰 숨을 몰아쉽니다. 선생님의 뒤를 이어 저도 끊임없이 생명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렵니다. 월든숲 위로 예전에 선생님께서도 늘 보셨던 그 태양이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소로 선생님.
2019년 겨울에 발생해 팬데믹pandemic, 즉 세계적 유행병으로 번진 코로나19COVID-19 사태의 한복판에서 나는 소로 선생님께 또다시 펜을 들었다. 우리 인간의 오만방자한 태도와 경제 제일 정책이 불러온 대재앙에 대해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았다.
소로 선생님, 지난번 편지의 말미에 편히 쉬시라 말씀드렸지만 다시 한번 잠드신 선생님을 깨우고 말았습니다. 2019년 겨울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세계는 지금 전례 없는 경제 위기와 더불어 엄청난 인명 피해를 감내하고 있습니다. 발생한 지 10개월 만에 대한민국 인구에 맞먹는 5000만 명이 감염돼 무려 1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선생님의 가르침을 일찌감치 생활 속에 적용하고 실천했더라면 이런 일이 애당초 벌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이미 한 세기 반여 전에 우리 현대인이 실천해야 할 자연철학을 깨닫고 가르치셨습니다.
사실 선생님은 혼자가 아닙니다. 선생님의 지적 유산은 다양한 분야의 많은 후학들을 통해 우리들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우선 “이니스프리로 갈 거야 / 조그마한 오두막을 거기에 지을 거야 / 진흙과 나뭇가지로 / 콩을 아홉 이랑 심고 / 꿀벌도 한 통 칠 거야 / 그리고 벌 소리 잉잉대는 숲에서 홀로 살 거야”라고 노래한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가 떠오릅니다. 마르셀 프루스트, 싱클레어 루이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같은 소설가는 물론,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같은 건축가도 선생님의 영향을 깊게 받은 걸로 압니다. 보다 직접적으로 가르침받은 사람들은 선생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자연을 관찰하고 거기서 얻은 깨달음을 글로 표현한 존 버로스, 존 뮤어, 알도 레오폴드, 레이철 카슨, 로렌 아이슬리, 에드워드 폴 애비 같은 자연주의자들입니다. 에드워드 윌슨, 제인 구달, 베른트 하인리히 등은 지금도 열심히 선생님의 위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도 나름 노력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과 선생님의 사도들이 이처럼 끊임없이 부르짖었건만 대재앙은 끝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자연계에서, 그리고 지구 생명의 역사에서 아마도 가장 탁월한 두뇌를 지니게 된, 그래서 스스로 ‘현명한 인간, 호모 사피엔스’라 부르는 인간은 도대체 왜 자신의 삶의 터전을 이토록 망가뜨리며 사는 걸까요? 걷잡을 수 없는 기후변화와 생물 다양성의 고갈은 우리 인류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로지 풍요와 편리만 추구하는 우리 삶의 향방을 되돌릴 수 있을까요? 그 옛날 월든연못 가에서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귓가에 맴돕니다.
“대부분의 사치품들과 우리 삶을 안락하게 해준다는 것들은 꼭 필요한 것도 아니며 인류의 승격에 명백한 방해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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