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아프지 마라
주변 사람들을 살피면 하나같이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다. 어딘가 한군데는 몸이 아프든지 시시때때로 마음이 아프든지 그렇다. 정말로 아프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어른들만 그런 게 아니라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모든 인간은 문제점을 그 가슴에 그 몸에 안고 살아간다는 얘기다.
일단 인간은 아프다. 안 아픈 인간은 없다. 오히려 아프기 때문에 인간이다. 여기에 방점을 찍고 합의해보자. 그럴 때 우리의 마음은 한결 여유로워지고 타인에게로 열린 보다 넓고 부드러운 눈을 얻는다. 나만 아픈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 나아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프다고 할 때 스스로의 마음을 다독이게 된다.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그래. 함께해야지.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도 함께 부축하면서 가야지. 그러면 조금씩 좋아질 거야. 소망을 갖게도 된다. 그렇다. 나 혼자만 아프고 힘든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렇다는 데에서 우리는 수월찮은 위로를 얻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기도 한다. 결코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사실!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 「멀리서 빈다」 전문
이 작품은 2009년도에 쓰인 작품으로 내가 죽을병에 걸려 신음하다가 겨우 풀려나 세상으로 돌아온 뒤 2년 만에 쓴 작품이다. 크게 앓고 나서 생각이 대폭 바뀌었다. 처음엔 나만 아프고 나만 억울하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안 아픈 사람이 없고 억울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은 나름대로 하나의 작은 깨침 같은 것이었다.
그렇구나. 나만 아픈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아픈 거구나. 그로부터 나의 눈길은 좀 더 부드러워지고 나의 마음은 보다 넓어지고 편안해졌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나처럼 아픈 사람들을 위해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기도하고 걱정하고 염려하고 함께하는 길밖엔 없다. 상호 부추기고 축복할 방법밖에는 없다.
우아일체. 우주와 내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생각. 피아일체. 저쪽과 이쪽, 너와 내가 다시 하나라는 사실. 이런 말들은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새로운 희망을 주고 새로운 길을 허락한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만 해도 표면으로는 인간이 아픈 것이지만 그 실은 지구가 아픈 것이다. 지구가 힘들어 진저리를 치는 것이고 신음을 한 결과다.
그렇다면 어찌할 건가? 인간의 입장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지구의 입장도 좀 생각해주어야 한다. 지구 할아버지, 많이 아프셔요? 부디 아프지 마셔요. 지구 할아버지가 건강하셔야 우리 인간도 살 수 있어요. 오냐. 내가 좀 아프다. 아파서 못 견딜 지경이다. 그러니 너희들이 좀 얌전히 살고 조금씩 욕심을 줄이면서 살아다오.
어쩌면 그런 대화, 그런 답변이 올지도 모른다. 위의 시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문장은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이다. 이런 것은 어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아이들한테도 그렇다. 미리 일러주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어 있다. 하나의 언어가 가진 영력이다. 그만큼 인간은 영혼적인 존재이고 영혼에 의해 큰 지배를 받는다.
이제 어쩌는 도리가 없다. 서로 기도하고 염려하고 응원하고 위로하면서 살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그 안에 작으나마 평안이 깃들고 행복이 있겠지 싶다. 우리 서로에게 말해보자. 많이 힘드시지요? 나도 힘들답니다. 이 힘든 고비를 조금만 참고 넘겨보시지요. 그러면 분명 좋은 날, 밝은 날이 올 것입니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이것은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이지만 나 스스로에게도 하는 말이다. 우리 부디 아프지 맙시다. 아프더라도 조금씩 줄여가면서 아픕시다. 당신에게 축복을 보내고 나에게 또한 그만큼의 축복을 남깁니다. 좋은 날 우리 부디, 웃는 얼굴로 기쁘게 다시 만납시다.
(본문 중 일부)
#문학나눔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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