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시평은 오늘의 세상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목소리입니다. 서울대 학생들이 글쓰기 강의시간(지도강사 : 차익종)에 쓴 시평을 <나비>에 게재합니다. 최근 청년들의 책읽기나 비판적 사고가 종말을 고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는데, 이 시평들을 통해 아직 무르익지는 않았지만 현실을 살피는 청년들의 참신한 시선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편집자 주)
이 그림을 한 번 유심히 살펴보자. 흰 사람은 혼자 힘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는 구덩이에 빠져 있고, 검은 사람은 그런 흰 사람을 구하려 하고 있다. 언뜻 보면 제법 훈훈한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검은 사람은 바로 옆의 사다리를 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 도와주는 척만 하는 것이다. 이 그림의 제목은 ‘현대인의 속마음’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좀처럼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진솔한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그저 속으로만 끙끙 앓을 뿐이다. 함부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가 그 사람이 위 그림 속의 검은 사람처럼 아군인 척하는 적이거나, 위선으로 가득 찬 사람이기라도 하면 매우 낭패다. 오히려 그러한 이유로 스스로 더 깊은 구덩이를 판 후 도움조차 청하지 않는 것이 현대인들에게는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그 못된 습관은 우울증과 소통의 단절 등의 사회 문제로 이어졌고, 사람들은 답답함을 참지 못해 어떻게든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껏 털어놓을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즈음, SNS에 ‘대나무 숲’이라는 것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대나무 숲’이란 익명의 힘을 빌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거나, 자신이 쓴 작품을 보여주거나, 솔직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페이지의 한 종류로, 이러한 특징들 덕분에 대나무 숲은 곧 우후죽순 생겨났다. 대나무 숲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문학적 솜씨를 뽐내고, 남에게 말하기 힘든 고민을 나누고, 숨겨오던 감정을 전달했으며, 토론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하지 못했던 말들을 대나무 숲을 통해 마음껏 쏟아냈고, 대나무 숲은 서로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공감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되었다.
또한 대나무 숲이 공감대를 형성하기 좋은 공간이라는 점 역시 대나무 숲을 더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대나무 숲은 특정한 작은 집단의 구성원들이 뭉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어떤 고민에 대해 더 깊고, 진실하고, 전문적인 위로와 답변을 기대할 수 있다. 공감의 깊이 역시 매우 깊어 어떤 고민에 대한 목소리가 하소연에서 그치지 않고 누군가의 실질적인 도움과 조언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나는 대나무 숲에서 위로와 도움을 받고, 속 시원히 고민을 말하며, 자신의 솔직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마음이 따뜻해지곤 한다. 먼 옛날 한 이발사가 대나무 숲에서 꽁꽁 숨겨왔던 고민을 내뱉었던 것처럼 우리도 한 번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쳐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