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는 라틴어 ‘임페리움imperium’에서 파생되었다. ‘임페리움’은 원래 항상 법적으로 다소 정확하게 규정된 개념이며, 이와 더불어 다양한 비非법적인 의미들도 부가되었다. 여기에서 특히 중요한 점은, 반은 요구이기도 반은 비난이기도 하지만, 세계를 지배하려는 데까지 이르는 세력 확장의 경향이다. 이러한 의미들은 제국주의 개념과 함께 법적으로 규정된 제국 개념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주의ism를 형성하는 것은 말하자면 권력 요소들이 법으로부터 독립성을 띠게 되었음을 의미했으며, 이것은 다시금 불법성이나 또는 적어도 부당성이라는 날선 비난이 제기될 수밖에 없도록 했다. 그리하여 이 개념은 특히 이데올로기를 만들거나 파당적으로 사용되는 취약성을 가졌다. 그런데 이미 제국 개념의 경우에도 로마 공화정 시기부터 황제 시대, 중세 그리고 근세 초기를 거쳐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법적인 종속성은 점점 더 약화되었다.
로마
‘임페리움imperium’은 동사 ‘imperare’(명령하다)에서 파생되었다. 이 단어는 이미 로마 공화정 초기부터 국법에 관해 사용된 전문용어terminus technicus였다. 그것은 최고의 공무원의 공권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원래 군軍 통수권에 제한되었으나, 나중에는 포괄적인,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무제한적인 공권력을 일컫는 총괄 개념이 되었다.
‘임페리움’은 적어도 공화정 말기 이후로는 ‘로마 인민의 지배imperium populi Romani’라는 뜻으로서 타민족에 대한 로마 민족의 힘을 의미하는 데도 사용되었다. 법적으로 엄밀하게 규명하기는 어렵지만 처음에는 사람에 대한 명령권의 의미로 사용되다가 나중에는 해당 지역에 대한 명령권을, 그리고 마침내 지배하는 지역 자체를 표현하는 말이 되었다. 즉 명령이 통용되는 영역이 ‘로마 제국imperium Romanum’(살루스티우스Sallustius 이래로 증명 가능)이 된 것이다.
‘임페리움’은 ‘레그눔regunum(왕국)’보다 우월한 지위를 가진다. 종종 여러 개의 레그눔이 하나의 임페리움을 구성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중세
a-임페리움과 레그눔(왕국)
서로마 제국의 몰락 후 서방에서 ‘임페리움’은 카를 대제의 대관식(800)과 오토 대제의 대관식(962)을 계기로 다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임페리움과 더불어 왕의 영토, 즉 ‘레그나’가 생겨났다. ‘임페리움’과 ‘레그나’의 관계는 분명하지 않았다. 임페리움은 국법상 황제에게 귀속되지 않는 영역엣는 결코 현실적인 지배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b-임페리움과 사케로도티움(교권주의)
교황권은 우월성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에서 마침내 승리했고, 그리하여 ‘임페리움’을 다른 제국들 가운데 하나의 제국으로 지속적으로 축소하는 데 기여했다. 제국에서 로마적 요소는 점점 더 그 중요성을 상실해갔으며, 독일적 요소는 더욱 중요해졌다. 그러나 교황의 우선권은 교회의 권위를 넘어 통치권을 인정받지는 못했다.
c-다수의 임페리움들
1453년까지 비잔틴 제국은 여전히 로마 제국이라는 권리를 주장하면서 존속했다. 9세기와 10세기에 서쪽 제국은 비잔틴과 더불어 로마 제국의 후계자로서 이해되었다. 11세기 이후 서쪽 제국은 이제 임페리움 로마눔의 유일한 후계자로 간주되었다. 임페리움 로마눔은 800년에는 “동로마 제국에서 프랑크 왕국으로 제국의 승계”를 통해 프랑크 왕국으로, 962년에는 그에 이어진 승계를 통해 독일로 옮아왔다.
고대에서처럼 중세에서도 ‘임페리움’이라는 표현이 전적으로 임페리움 로마눔의 의미로만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임페리움의 의미를 깎아내리려는 방어적 전략과 아울러, ‘레그나’로서는 스스로를 ‘임페리움’이라고 미화함으로써 공격의 가능성도 제공되었다.
근대
이제 다른 임페리움들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고려되면서 상대화가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독일 제국에는 어떤 우선권이 부여되었다. 물론 그것은 더 이상 권력이 아니라 단지 연공年功과 명망에 의거한 것이었다. 한 예로 1775년에 발간된 백과사전은 임페리움을 다음과 같이 매우 간략하게 정의하고 있다. “제국. 황제라는 지위를 가진 통치자에 복종하는 국가들에 우리가 부여하는 이름이다.” 이에 대한 사례로 러시아와 무굴 제국을 들고 있다.
하지만 ‘임페리움’은 특히 적에 대해서는 팽창적인, 즉 공격적인 의미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의미는 ‘임페리움’을 세계 패권을 향한 노력과 연관시켰으며, 근대 초기에는 보편 왕국을 추구하는 노력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전통적 개념에서 근대적 개념으로
‘제국주의’라는 개념은 이제 근대적인 의미에서 - 즉 1880년대 - 전적으로 식민지 관계를 둘러싼 영국의 논쟁들에서 여러 당파 중의 한 당파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