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움직임을 나타내는 현대적 의미의 ‘진보’라는 표현에는 일군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1) ‘진보’는 스스로 역사의 주체가 된 보편적 인류와 관련된 개념이 되었다. 역사철학의 보편적 개념이 된 것이다.
2) 하지만 ‘진보’ 개념은 종종 개별적인 영역 혹은 구체적 행위 일체와 관련되었다. 이때 이들은 시간적으로 앞서고 뒤처지는 긴장 관계에 있었다. 옛것은 언제나 뒤처짐을 의미했고 따라서 뒤좇고 만회하여 추월할 것이 요구되었다. ‘진보’는 당파적, 집단적 행동이라는 개념이 되었다.
3) ‘진보’ 자체가 주체적 개념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역사적 운동이 스스로를 진보의 주체로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될 때 진보 개념은 이념화될수 있다. 또한 이데올로기 비판의 대상이 된다.
4) ‘진보’는 가끔 더 나빠지는 것을 표현할 때도 있지만 보통 개선을 향한 움직임을 의미한다. ‘진보’는 거의 종교적 색채를 띤 희망의 개념이 된다.
5) ‘진보’는 반복성을 전제로 하는 고대의 연속성 모델과는 달리 비순환적인 진행을 가리킨다. 용어상으로 ‘후퇴’는 ‘진보’의 반대 개념이다. 하지만 현대의 진보 이론에서 후퇴는 항상 진보보다 짧게 지속된다. 이때 ‘진보’는 단절을 허용하긴 해도 언제나 직선적 방향 개념이다.
6) ‘진보’의 목표는 유한한 범위 내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것은 도달할 수 없다)과 그 목표를 무한하게 연기하는 것 사이에서 동요한다. 왜냐하면 후자의 경우 진보가 달성해야 하는 목적 자체가 항상 새롭게 제시되기 때문이다. ‘진보’는 임시적인 관점의 개념이 되며 좀 더 좁은 의미에서는 계획의 개념이 된다.
7) ‘진보’는 종종 가속화Beschleunigung를 가리킨다. 이때 물리적 가속과 다른 점은 그것이 역사적 동력에 의해 촉발되거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동력이 ‘발전적progressiv’이라고 정의되면 ‘진보’는 역사적 정당화를 위한 개념이 된다.
-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 진보』, 황선애 옮김, 푸른역사, 2010, 14~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