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프롤레타리아
‘고전’은 영어로는 ‘클래식classic’인데, 그 밖의 유럽 언어도 대부분 맨 첫 글자나 맨 마지막 글자만 다를 뿐 발음은 모두 ‘클래식’이다. ‘클래식’은 라틴 어 ‘클라시쿠스classicus’에서 유래했는데 이 말은 형용사이며 처음부터 ‘고전적’이라는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니다. ‘클라시쿠스’는 사실 ‘함대艦隊’라는 의미를 가진 ‘클라시스classis’라는 명사에서 파생된 형용사이다. ‘함대’라는 말은 군함이 적어도 두세 척 이상은 있다는 뜻이다. ‘클라시스’는 ‘군함의 집합체’라는 의미였다. ‘클라시쿠스’라는 형용사는 로마가 국가적 위기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국가를 위해 군함을, 그것도 한 척이 아니라 함대(클라시스)를 기부할 수 있는 부호를 뜻하는 말로, 국가에 도움을 주는 사람을 가리켰다.(로마에는 징세 제도가 있었지만, 군함은 세금이 아니라 기부를 모아 만들었다.)
덧붙여 국가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자기 자식-자식은 ‘프롤레스proles’라고 한다-밖에는 내놓을 게 없는 사람, 국가에 헌상할 것이라곤 프롤레스뿐인 사람을 ‘프롤레타리우스proletarius’라고 불렀다. 따라서 ‘클라시쿠스’가 재산이 있어서 국가를 위해 함대를 기부할 수 있는 부유층을 가리킨 데 반해, ‘프롤레타리우스’는 오직 자기 자식을 내놓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을 의미했다. 바로 이 라틴 어 ‘프롤레타리우스’에서 빈곤한 노동계급을 의미하는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독일어가 생겼고, 그 후 유럽 전역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 ‘클라시쿠스’는 ‘고전적’, ‘프롤레타리아’는 ‘노동계급’을 의미하는 말이 되어 이 두 단어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옛 로마 문화에서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진 단어였으며, 생각해 보면 ‘프롤레타리우스’라는 형용사는 서글픔이 깃든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국가적 위기에 함대를 기부할 수 있는 상황을 인간의 심리적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인간은 언제든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러한 인생의 위기에 당면했을 때, 정신적인 힘을 주는 책이나 작품을 가리켜 ‘클래식’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는 중세의 비교적 이른 시대, 즉 교부시대부터 그러한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따라서 무엇보다 먼저 밝혀 두어야 할 것은 ‘클라시스’는 원래 ‘함대’라는 의미였으며 ‘클라시쿠스’는 국가에 함대를 기부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애국자이기도 하고 재산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것이 변화하여 인간의 심리적 위기에 진정한 정신적 힘을 부여해 주는 책을 일컬어 ‘클래식’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비단 책뿐만 아니라, 회화든 음악이든 연극이든 정신에 위대한 힘을 주는 예술을 일반적으로 ‘클래식’이라 부르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클라시스’에서 유래한 ‘클래식’을 ‘고전’이라 번역한다. 이는 오래전부터 소중하게 여겨온 서적[典], 요컨대 고전이 그러한 교화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클래식’의 번역어로 선택된 것이다. ‘典’은 상형문자인데, 다리가 달린 책상 위에 옛 책의 형태인 두루마리를 소중히 올려놓은 것을 의미한다. 책상 위에 올려 둔다는 것은 ‘읽지 않고 쌓아 두기만 한다’는 뜻이 아니라, 소중히 여기고 늘 열심히 읽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고전’은 ‘클래식’의 번역어로서는 참으로 적절한 말이라 여겨진다.
휴머니즘
‘휴먼’은 라틴 어로 ‘후마누스humanus’이며 ‘후마누스’는 물질인 물이나 동물인 개와는 달리 인간에게 고유한 것, 즉 ‘인간적’이라는 뜻이다…‘인간적’이라는 말은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만의 특징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바로 ‘언어’를 이해하고, 언어를 사용하고, 언어로써 살아간다‘는 것이다.
인간 이외의 다른 동물에게도 언어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동물에게는 음성기호가 있을 뿐이며 엄밀한 의미의 언어는 없다. 분명 동물들도 명확한 의미를 가진 음성기호를 사용해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인간도 그 동물의 음성기호를 알면 이를 이용해 동물과 어느 정도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 또한 동물들에게는 듣기 능력이 있어서 단순한 명령을 음성적으로 듣고 음성기호를 파악해 그대로 행동한다….
그러나 음성기호와 언어는 엄연히 다르다. 일본원숭이 연구가에 의하면, 일본원숭이는 식별 가능한 26가지 음성기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새끼를 밴 암컷 원숭이 한 마리를 무리에서 떼어 내 격리시키고, 그 암컷 원숭이가 갓 낳은 새끼원숭이와 어미원숭이의 관계를 관찰해 본 결과, 위에서 말한 26가지 음성기호의 교환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한 동물의 음성기호는 본능적인 것이며 그 음성기호를 어떤 상황에 낼 것인가는 경험을 통해 배워 가겠지만, 필요한 음성기호 자체는 본능적으로 지니고 있다….
인간도 그러한 음성기호를 가지고 있다. 젖먹이를 떠올려 보면, 태어날 때 모태 안에서 갑자기 공기 중으로 나오면 충격에 놀라 울음을 터뜨린다. 기저귀가 젖었을 때 내는 울음소리, 배가 고플 때 내는 울음소리, 기분이 좋을 때 내는 소리, 통증으로 인해 불에 덴 듯 우는 소리, 몸이 약해졌을 때 힘없이 우는 소리 등 다양한 소리를 내는데, 이는 모두 음성기호이며 각각 다른 소리를 각각의 상황에 맞게 본능적으로 낸다. 이처럼 음성기호는 인간을 포함해 모든 동물이 가지고 있다.
그에 반해 인간의 언어는 일생 동안 배우고 터득해 가는 것이다. 사전이 없는 인간의 일생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또한 사색이 깊어지면 사전에는 없는 새로운 술어를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평생에 걸쳐 언어를 습득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언어적’이라는 것이 가장 인간적인 것이다. 따라서 ‘휴머니즘’의 첫 번째 의미는 다름 아닌 ‘인문주의’, ‘고전주의’라고 할 수 있다.
‘휴머니즘’은 비교적 새로운 말이며 그 기원은 ‘후마니스무스Humanismus’라는 독일어이고, 1809년에 프리드리히 니트함머Friedrich Niethammer라는 사람이 처음 만든 말이다. 이 단어는 ‘인간애’를 의미하는 ‘필란트로피스무스Philanthropismus’와 대립되는 단어였다. 어찐된 영문일까. 예를 들어 추운 날 돌계단 위에 잠든 사람에게 뭔가 따뜻한 먹을거리라도 건네는 행위는 필란트로피스무스(인간애)이다. 그에 대하여 ‘후마니스무스’, ‘휴머니즘’이란 ‘고전 연구를 통해 언어를 익히고 숙달해 가는 것’이 본래 의미이다. ‘언어를 익히고 숙달해 가는 것’이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에’ 걸맞도록 살아가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까지도 포함한 말이다. 따라서 ‘휴머니즘’은 고전 연구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는 이번에 단테를 공부함으로써 서양의 대표적인 고전을 배우고, 또한 휴머니즘의 인간, 바로 휴머니스트가 되는 것이다. 단테 직후에 이탈리아에서는 ‘우마니스타Umanista’라 불리는 고전 연구 인문주의자 그룹이 나타났는데, 그들의 운동이 바로 19세기 이래의 휴머니즘을 선도했다.
서양문화
단테는 중세 말기에 이탈리아에 태어난 사람이므로 우리는 단테를 통해 서양문화 형성기 중에서 제2차 완성기에 해당하는 중세 후기 시대-제1차 완성기는 고전古典·고대古代 완성기이다-의 문화를 배우는 것이다. 게다가 단테는 르네상스 시기와도 겹치므로 서양문화의 한 시점의 완성 상태와 새롭게 변해 가는 역동성 양 측면을 모두 배울 수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서양문화라고 하면 자칫 서양문명에 가까운 것들만을 대상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은 문학 속에 서양문화의 정수, 즉 본질이 내포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서양문화를 지탱하는 서양적 지성의 본질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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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
우리는 이와 같이 단테를 배워나갈 예정인데, 오늘은 먼저 서론으로 호메로스를 공부하겠다. 단테를 읽는데 왜 호메로스가 먼저 나올까. 그 까닭은 호메로스가 ‘서양문화의 원류源流와 관련이 있다는 데 있다.
서양문화 원류의 하나는 그리스도교이다. 그런데 단테는 그리스·로마 고전문화의 전통과 그리스도교 전통 양쪽을 통합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테 연구를 통해 그리스·로마 고전문화와 그리스도교 문화 두 가지를 겸해서 공부하는 셈이다. 이 말은 또한 각각에 관한 일정 수준의 기본 지식이 없으면 단테를 공부하기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한 이유로 단테 텍스트로 들어가는 것은 당분간 미루고, 우선 그리스 고전문화의 대표시인인 호메로스에 관해 중점적으로 생각해 보는 일부터 시작하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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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의 고전문화가 왜 서양문화의 원류인지 그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 실제로는 그리스·로마보다도 더 오래전 문화가 서양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집트 문화, 히타이트 문화, 메소포타미아 문화가 있고, 그리고 같은 그리스의 미케네 문화도 있다. 그러한 다양한 오랜 문화가 있는데 어째서 그리스·로마의 고전문화를 서양문화의 근원으로 보는가.
그것은 동물을 조상으로 모시는 것에서 탈피하는 것이 그리스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일종의 토테미즘으로, 우리 선조가 동물이었으며 인간은 그 동물에 미치지 못하므로 동물을 신으로 숭배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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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동물 모습이었다는 사실은 인간에게는 동물 이하의 존재라는 자각밖에 없었음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고가 완전히 뒤바뀌어 그리스의 고전시대에는 신들을 인간의 모습으로 조각했다. 그런데 이들 신의 형상을 인간과 비교해 보면 세 가지 차이점이 나타난다. 첫째로 인간보다 크다. 둘째로 인간보다 아름답다. 그리고 셋째로 인간보다 지적인 얼굴, 혹은 인간보다 아름답다. 그리고 셋째로 인간보다 지적인 얼굴, 혹은 인간보다 강한 형상이다. 이는 그리스 인들이 신을 인간화했다기보다 신을 인간 이상의 존재로 여기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인간은 차츰 지혜를 이용해 동물을 정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여전히 자신들보다 한결 뛰어난 인간 이상의 존재가 있다고 여겼고, 그런 까닭에 신을 인간보다 뛰어난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로마 고전문화를 경계로 인간은 동물신을 신앙하던 조야한 시대에서 인간 이상의 지성과 힘을 가진 신들을 존경하는 사고로 변해 간 것이다. 그리스·로마 고전문화는 인간의 생물학적 우위를 자각한 시대, 그 시초라는 점에서 서양문화의 기원이 된다. 동양에서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중국이나 인도에서 인간 우위에 대한 자각이 처음 이루어지긴 했지만, 이 강의에서는 서양문화에 한해서만 살펴보기로 하겠다.
그리스도교에서도 인간은 이마고 데이imago Dei라는 사고를 가진다. ‘이마고 데이’는 ‘신의 형상’이라는 뜻이다. 인간은 신이 아니지만 신의 형상을 본떠 만들어졌으며, 신의 지성이나 언어를 작은 규모로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다.(구약성서 <창세기> 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