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이란 무엇인가
한 편의 글로 종교적 이단에 관한 설명을 다루다니, 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내가 알기로는 역사상 단 한 번 그러나 방대한 작업이 하나의 저작을 통해 다루어진 적이 있다. 그 책은 1699년 루터파 경건주의자인 고트프리트 아르놀트Gottfried Arnod가 출간한 《교회와 이단에 관한 공정한 역사 Impartial History of the Church and Heretics》였다. 그 책에 대한 반응은 그리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2단 2절판으로 분량이 2,300쪽에 달하는 아르놀트의 두 권짜리 저서는 향후 한 세대 동안이나 지속될 폭풍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동시대인들로부터 파렴치한 역사의 왜곡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루터파 역사학자들 가운데 가장 분별 있는 인물마저 그를 일컬어, 교회의 평화를 깨트리는 무지하고 주제넘은 교란자라고 묘사했다. 한 비평가는 그가 “그리스도 탄생 이후 가장 사악한 책”을 썼다고 선언했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아르놀트가 대체로 이단자들의 편을 들었으리라는 점은 쉽사리 추론해볼 수 있다.
그러나 괴테(그 누가 괴테와 같은 편이 되기를 원치 않겠는가?)의 생각은 달랐다. 아르놀트의 책이 수중에 들어오자 그는 그 책에 매료되었다. 그는 그 책이 자신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썼다. 이제 그는 역사상의 이단자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모든 사람이 종국에는 자신의 종교를 갖게 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나의 종교를 고안해내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 일을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했다.”
자신의 종교를 고안해내는 것, 사실 이것이야말로 이단이다. 이것이 이단이란 말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이다. 이단은 개인적 선택이며, 정통 - 그것은 선택된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부여되고 받아들여진 것이다 - 의 반대이다. 이런 이유로 이단과 분파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분파란 반드시 선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설령 선택이라 하더라도 개인적 선택은 아니기 때문이다. 분파 교회는 통째로 떨어져 나간 교회를 말한다. 동방 교회가 중세 서유럽 교회로부터 분리되고,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종교개혁 시대에 가톨릭 교회로부터 분리된 것과 같은 경우이다. 정통이 이단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그리스도교는 유대교 이단에서 출발했다), 분파 역시 이단으로부터 시작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영국 국교회를 분파로 간주하지, 이단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그리고 분파 교회는 즉각 자신의 정통을 수립하며, 그 자체의 이단을 박해하기 시작한다. 순수한 이단이란 국가 교회 또는 정통 교리를 만들지 않으며, 그 구성원은 개인적 선택에 의해 자신의 종교를 갖는다.
정통과 이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백 가지의 이단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2,000년 역사를 거치면서 그리스도 교회는 매 세대마다 이단들을 산출했으며, 그들의 난해한 교리는 끊임없이 정통의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이교도들의 대두를 유발했다. 어떤 세기든지 임의로 정해놓고 조사를 해보라. 마치 잘 가꿔진 정원 한복판에 서 있는 바위 하나를 들어내는 것 같다. 위에서 보면 정원의 모든 것이 평탄하고 조용하기만 하다. 그러나 파헤쳐진 바위 밑으로는 쥐며느리나 지내 같은 벌레들이 마구 땅을 헤집으며 분주히 달려가고 있다. 정통파는 불쾌한 나머지 코를 찡그리지만, 대자연의 풍요로운 다양성을 즐기는 사람들은 누구나 기뻐한다. 3세기에는 에비온파, 바실레이데스파, 발렌티누스파, 마르키온파 등의 이단이 등장했다. 4세기에는 도나투스파 - 그들 가운데 가장 극단적인 집단은 할례파였다 - 가나타나 아프리카와 유럽을 분리시켰다. 한편 아리우스파는 동유럽과 서유럽을 분리시켰다. 5세기에는 네스토리우스파, 유티케스파, 아폴리나리우스파, 단성론자들이 형이상학적 사변을 무기로 비잔티움 제국을 뒤흔들었다. 이단 목록을 적성하자면 끝이 없다. 목록을 완성시키려면, 우리는 연속성 있는 일정한 원칙을 선택하거나 찾아내어 무수히 많은 종류의 이단들을 몇 개의 이해 가능한 군집으로 축소시켜야만 한다.
이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이단의 역사는 전반적으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부분은 격분한 정통 옹호자들에 의해 쓰여졌다. 그들은 그것들을 이해하기보다는 비난하는 데 더 열심이었다. 이단자들이 쓴 저작들은 파괴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자료를 검토한다면, 정통파의 분노로 말미암아 불분명해진 그 특징들을 복원해낼 수 있을 것이며, 수많은 다양한 이름들 아래 잠복해 있는 이단들의 연속성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실제로 치밀하게 고찰해보면, 우리는 모든 이단들을 그 관점에 따라 몇 개의 군집으로 분류할 수 있음을 곧 알게 된다. 위대한 이단 사상들은 할 일 없는 수도사들이 지어낸 기발하 관념이 아니다. 다른 이단보다 더 독창적이거나 부조리한 것으로 보이도록 안달하는, 그러한 관념이 아니다. 그것들은 지속적으로 정통이라는 단단한 각질을 뚫고 나오는 일련의 반복적 사상들이다. 이단 사상들은 한 가지 중대한 진실 또는 억누를 수 없는 인간적 열망을 포함하고 있다. 그것들은 어느 한 종교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리스도교 출현 이전에 나왔던 사상들이 그리스도교 이단의 모습으로 갑자기 등장하기도 하고, 이슬람교 출현 이전에 나왔던 사상들이 이슬람교 이단의 모습으로 갑자기 등장하기도 했으며, 몇몇 그리스도교 이단 및 이슬람 이단은 사상적으로 상호 교환되기도 했다. 일부 이단들은 적어도 일정 기간 동안은 정통으로 흡수되었다. 정통으로부터 영구히 배제된 이단은 거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