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발언Ⅲ』이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 2016년 1월부터 2020년 5월까지 「한겨레」 「경향신문」 「민중의소리」 등에 김종철 선생이 썼던 글을 모은 것입니다. 이 책에는 현재 『녹색평론』 발행인 역할을 맡고 있는 김정현 씨의 머리말이 붙어 있습니다. “한국사회에 소속된 지식인으로서, 김종철은 육신의 기력이 다하는 순간까지 자신이 보기에 지금 이 땅에서 가장 절실하다고 느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계간 『기본소득』의 원고 청탁을 받고 여러 가지 글감을 생각하다가,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김종철 선생이 육신의 기력을 다하는 순간까지 ‘절실하게 말하고자 했던 것’을, 기본소득을 중심으로 따라가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김종철 선생은 지난 2020년 6월 25일 돌아가셨습니다. 선생이 돌아가신 이후에도 『녹색평론』은 계속 발행되다가 2021년 11월 창간 30주년 기념호를 발간한 뒤 안타깝게도 1년간 휴간한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격월간지 『녹색평론』은 휴간하였지만,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개정증보판』2022년 1월 25일와 앞서 말한 『발언Ⅲ』2022년 4월 11일을 이어서 출간하여, 출판사 녹색평론사의 활동은 지속되고 있음을 알렸습니다.
2
김종철 선생이 기본소득이라는 주제를 깊이 파고들어 탐구하고 이와 관련한 발언을 본격적으로 내놓은 것은 2013년~2014년 전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표적인 논의가 『녹색평론』 통권 제131호2013년 7-8월에 강남훈, 곽노완, 김종철 세 분이 「모두에게 존엄과 자유를 ― 기본소득, 왜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던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좌담회 중에 김종철 선생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1996년부터 『녹색평론』 지면을 통해서 지역통화운동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자료를 소개하는 도중에 이런저런 관련된 문제들, 예를 들어, 금융통화문제나 영국의 클리포드 더글러스가 제창한 사회신용Social Credit운동 등을 알게 되고, 그런 과정 속에서 기본소득을 발견한 셈인데요.”라고. 김종철 선생의 기본소득 탐구 연원이 꽤나 깊은 것임을 알게 됩니다.
“아무튼 기본소득이라는 것은 굉장히 혁명적인 아이디어입니다. 정치·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와 문화를 뿌리에서부터 변화시킬 수 있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소득으로 과연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고, 어떤 세상이 도래할까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공부가 될 것 같습니다.” 이 좌담회의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김종철 선생이 기본소득에 주목했던 것은 정치와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와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일 겁니다.
예를 들어 핵발전소나 유해 산업시설, 골프장 등 지역사회를 파괴하는 대규모 시설이 들어서는 것은 결국 ‘돈’ 때문인데 만약 기본소득이 실현된다면 생존의 여유가 생기니까 그런 시설이 들어서지 않게 되리라는 것, 그래서 “효과적인 반핵운동은 기본소득운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교육문제도 “대학에 가든 안 가든 인간다운 생활이 보장만 된다면” 해결할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현실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방안도 기본소득이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요셉 보이스의 “사람은 누구나 예술가이다”라는 발언을 언급하면서, “기본소득이라는 것은 개개인이 예술가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고, 그것에 잡념 없이 몰입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하니까” 인간이 지닌 저마다의 독특한 예술가적 소질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고 보았습니다.
3
「‘기본소득’이라는 희망」경향신문, 2014년 3월 6일에서는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이 이미 20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진 개념인 점을 강조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 김종철 선생은 토머스 페인의 만년 저작 『토지 분배의 정의』1797년 속에서 행한 제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페인의 ‘국민기금’ 구상이 단지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공적 부조나 자선 프로그램이 아니며, 토지라는 만인 공통재산으로 인한 이익을 사회구성원 전체가 나눠 가져야 한다는 것, 따라서 ‘국민기금’을 통해 지급되는 돈을 국가에 의한 생활지원금이 아니라 국민 각자가 응당 자신의 몫으로 지급받아야 할 ‘배당금’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기본소득’을 사회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마땅한 권리로 주어져야 할 ‘배당금’이라고 볼 때, 우리가 오랫동안 길들여져 온 전통적인 노동윤리, 즉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노동윤리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4
2019년 7월 17일수요일 김종철 선생 강연회가 책읽는사회문화재단 강당에서 열렸습니다. 이 날 강연회는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2019년 6월 20일 초판를 펴낸 뒤 녹색평론 독자 모임을 포함해서 여러 독자와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김종철 선생은 이 자리에서 ‘근대’ ‘근대화’ ‘근대문명’에 대한 비판을 주로 말씀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강연회가 끝나고 맥주 집에서 독자들과 함께 뒤풀이를 하던 모습이, 제가 김종철 선생을 뵌 마지막 모습입니다.
김종철 선생은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냥 절망 속에 빠져 있거나 체념에 잠겨 있을 수는 없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책임에 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장에 희망이 보이든 보이지 않든,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데 전념하는 길 이외에 다른 선택의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탈성장시대, 기본소득, 은행의 공유화」라는 강연록2014년 4월 25일 계간지 『말과활』이 주최한 독자모임에서 행한 이야기를 녹취하여 정리한 강연록이 실려 있습니다. 이 강연록에서 “소득은 노동의 대가라는 생각”이 낡은 생각이라는 것을 지적합니다. “노동신성勞動神聖이라는 관념은 생산성이 낮았던 시대의 유물”이라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사람은 일을 해야 소득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자유롭게 생을 영위할 권리와 자격이 있다는 생각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 전개 과정에서 가장 많이 부딪치는 질문이 “일을 하지 않고, 일을 할 의사도 없는 사람한테까지 왜 기본소득을 주며, 부자들에게도 왜 기본소득을 줘야 하는가”라는 의문입니다. 말하자면 ‘기본소득의 무조건성’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에 대해 김종철 선생은 기본소득은 “한 사회, 한 공동체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을 ‘주주’로 간주하는 토대 위에서 시행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게 논리적으로 더 타당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알래스카영구기금’의 예처럼 알래스카에서 나오는 석유라는 자원을 주민 전체의 공유자원으로 인식하고 거기서 나오는 수입을 구성원 전원에게 배당금으로 고르게 분배해야 한다는 발상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석유자원이 있는 지역이나 국가라고 해서 모두 알래스카영구기금과 같은 제도를 만든 것은 아닙니다. 김종철 선생은 알래스카식 기본소득 모델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경제학자 칼 와이더퀴스트를 소개합니다. 칼 와이더퀴스트는 “알래스카영구기금에서 제일 중요한 포인트는 석유자원재원의 유무가 아니라 정치적 의지”라는 논리를 폈다는 것입니다. 이를 달리 생각하면 세상의 어떤 가난한 나라라 할지라도 기본소득제를 시행하지 못할 나라는 없다는 논리가 됩니다. 문제는 정치적 의지입니다.
기본소득을 시민들의 당연한 권리로서의 ‘배당금’이며 문제는 정치적 의지라고 할 때, 그 공동체의 공유자산은 무엇인가. 김종철 선생은 일본의 경제학자 우자와 히로후미宇澤弘文가 말하는 ‘사회적 공통자본’도 결국은 ‘공유지’라고 지적합니다. “공동체의 경제 · 사회적 생활을 원활히 하기 위한 인프라들도 알고 보면 전부 공유지 혹은 공유자산에 속하는 것” 즉 “철도, 도로, 항만, 공항, 가스, 전기, 통신, 의료 및 교육시설 등등”이 모두 공유지, 공유자산이라는 것입니다. “자동차 기업에 대하여 도로라는 공공 인프라를 통해서 획득한 이익의 일부라도 공공기금으로 내놓도록 설득하거나 요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김종철 선생의 공공자산에 대한 논의 중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공공자산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게 있으니 그것은 바로 ‘화폐금융제도’라고 말하는 대목입니다. 화폐라는 것이 본래 공동체의 경제생활을 원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교환수단인데 근대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사적 이익을 취득하는 수단이 돼버렸다는 것. 문제는 이자, 그것도 복리 이자입니다. 마르그리트 케네디라는 독일 학자의 논의를 보면 물가의 30~40퍼센트가 이자분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이자로 인해 소수의 부유층을 제외하고 대다수 시민, 소비자들이 자기들도 모르게 끊임없이 부를 강탈당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지금처럼 돈을 민간 사립은행이 영리 목적으로 찍어내지 않고 정부나 공공기관이 직접 발행하는 관행이 확립된다면, 어찌 될까요? 그렇게 되면 우선 이자를 비롯해서 화폐 발행으로 얻는 이익그것은 ‘시뇨리지’라고 합니다만은 전부 공익을 위해서 쓸 수 있게 됩니다.” 김종철 선생은 “해법은 금융시스템의 공공화 내지는 은행의 공유화”라고 말하면서 금융제도와 화폐라는 공공재를 다시 민중의 것, 주민의 것으로 돌리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5
스위스 국영방송 「에스에르에프』SRF는 2016년 6월 6일현지시각 기본소득 도입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 결과 찬성 23%, 반대 76.9%로 부결됐다고 전했습니다. 한국의 언론매체도 큰 관심을 가지고 여러 가지 논평과 해설 기사를 내놓았습니다.
김종철 선생은 「기본소득이라는 출구」라는 칼럼경향신문 2016년 6월 9일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0년 전쯤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이 아이디어가 이토록 급속히 확산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기본소득이 실현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일찍이 미국 클린턴 정부의 노동부 장관을 역임한 로버트 라이시, 혹은 그리스 시리자 정부의 전 재무장관 야니스 바루파키스 등은 최근까지도 기본소득과는 무관한 경제학자들이었다. 그런 그들도 지금은 ‘자본주의의 안정화와 인간화’를 위해서도 기본소득의 신속한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아무리 봐도 이것 말고는 출구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일 것이다.”
6
「코로나 사태, 활로는 무엇인가」라는 글은 ‘코로나 사태’가 한창이던 때인 2020년 5월 6일 발표한 글로 돌아가시기 약 한 달여 전에 발표한 글입니다.
김종철 선생은 이 글에서 ‘코로나 사태’가 제임스 쿤슬러라는 미국의 작가가 말한 ‘장기 비상상황’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는 인간의 역사에서 전혀 낯선 종류의 경험이 아니다. 고대, 중세의 역병과 다른 게 있다면 감염 속도가 대단히 빠르고, 그 범위가 전지구적이라는 점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는 자본주의의 폭주, 과잉 산업발전과 소비주의의 소산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단순히 코로나 이전의 생활로의 복귀를 바랄 것이 아니라, 코로나 사태가 무엇을 말하는지 좀 더 근원적인 깨달음을 얻을 필요가 있다.” “코로나 사태의 원인은 기후변화의 원인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는 출발해야 한다.”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원인인 화석연료 의존적 경제에서 벗어나 재생에너지와 자원의 순환적인 활용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로 신속히 전환”해야 한다.
김종철 선생은 코로나 사태라는 비상상황을 통해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기본소득이나 노동시간 단축과 같은 공생의 윤리가 새로운 상식으로 발전할 수 있는 단초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가 이 기회를 통해서 하나의 사회적 상식으로 떠올랐다는 것, 그리고 노동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되더라고 생존에 필수적인 진짜 경제는 거의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점이 명확해졌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수확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7
코로나 사태가 끝나기도 전에 김종철 선생은 돌아가셨습니다. 만약 김종철 선생이 살아계신다면, 20대 대통령 선거라는 정치일정을 우리 사회의 근원적인 ‘전환’轉換의 계기로 삼으면서, 더 나아가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의 실현 가능성을 타진하던 분들에게는 어떤 말씀을 해 주실까요?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의 서문은 이런 대목으로 글을 마치고 있습니다. “죽은 것처럼 보이는 나무일망정 우리가 인내심을 가지고 일념으로 물을 길어 붓기를 계속한다면 언젠가는 그 마른 나뭇가지에 푸른 싹이 돋아나는 기적을 보는 행운이 우리에게도 찾아올지 누가 알겠는가.” 이 어줍지 않은 글이 ‘죽은 것처럼 보이는 나무에 물을 길어 붓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2022년 5월 10일)
★ 계간 『기본소득』 제12호(2022.여름)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