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 아파트 13층에 사는 프루스트 씨를 기다리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냈다.
언제나 자는 중이거나 산책 중이거나 여행 중인, 이름을 물으면 ‘프루스트’라고, 직업이 뭐냐면 그냥 시간을 연구하며 노는 사람이라고,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농구공을 슬며시 건네면 정중하게 받으며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 자기는 필요 없다며 묵직한 돼지저금통을 선물로 준 사람. 나는 그 저금통이 나를 지켜주는 신성한 돼지동상이라고 생각하며 매일 아침을 맞는다. 아파트 지하 차고에서 우연히 만난 돼지들이 프루스트 씨를 만나러 왔대서 누구냐 물으니 ‘시간’이라 말했다는 사실과, 그들이 경비아저씨의 신고로 급습한 경찰들에게 사살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하지 못해 늘 안타까웠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고 한 백 년은 지난 듯한 한여름에 프루스트 씨네 집에 새로운 사람이 이사를 왔다. 그 집 도우미 아줌마에게 물으니 프루스트 씨의 조카라 했다. 얼굴이 새하얗고 팔다리가 긴 청년이 떡을 들고 우리 집 문을 두드렸을 때 나는 선하고 창백한 그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농구장에 같이 가자 해도 선선히 들어줄 것만 같았다.
그날부터 나는 만날 수도 볼 수도 없는, 꿈속에서도 나타나지 않는 프루스트 씨 대신 길쭉 하얀 청년을 기다렸다. 며칠 뒤 아침, 농구장을 가려고 나서는데 길쭉 하얀 청년을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났다. “농구 좋아해요?” 엉뚱하게 내뱉는 내 질문에 그는 “영화 좋아하는데요.” 하고 답했다. 나는 한 번도 극장에 가본 적이 없다. “극장은 텔레비전보다 좋은 건가요?” 했더니 그는 말을 더듬으며 “좋은지 안 좋은지 같이 가볼래요?” 했다.
그리하여 나는 길쭉 하얀 청년을 따라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극장에 갔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하루」라는 영화였다, 마르셀은 모르겠지만 프루스트는 낯익은 이름이다. 내용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시간에 관련된 영화라는 정도는 알 것 같았다. 하여튼 농구장보다 더 좋은 데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바로 극장이다. 게다가 매일 다른 영화를 상영해주는 극장이 있는 것이다. 예술영화들이라 하는데, 예술은 뭐고 예술영화는 뭔지 모르겠지만 나는 풍경이 좋은 영화를 보는 걸 좋아한다. 여행을 못해봤기 때문인지, 극장은 여행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다른 영화를 보는 일은 마치 매일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기분이다.
이후 나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농구장 대신 극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길쭉 하얀 청년과 나는 서로 다른 시간대에 영화를 보는 탓에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나는 아침에, 그는 저녁에 극장에 가는 모양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나 극장에 같이 갔던 날, 그에게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물었더니 영화를 보는 사람이라고 했다. 영화를 보면서 프루스트 씨처럼 시간을 연구하는 모양이다. 내게 농구보다 더 큰 행복을 주는 게 영화라는 걸 알려 준 길쭉 하얀 청년을 고맙게 생각한다. 나는 거의 매일 혼자 극장에 간다. 아마 그도 그럴 것이다.
내가 영화를 고르는 기준은 제목이다. 내가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인지는 모른다. 어쩌면 남들이 이해 못하는 걸 내가 이해할지도 모른다. 내 맘대로 생각하고 해석하는 게 너무 재밌고 행복하다. 나는 「쉘부르의 우산」 「로마의 휴일」 「리스본 특급열차」 「인도로 가는 길」 「바그다드 카페」 「마션」 같은 제목의 영화를 좋아한다. 모르는 나라의 풍경이 배경으로 나오는 영화를 보면서 나는 저 먼 달나라에 가기도 한다. 영화를 보면서 살짝살짝 졸기도 하는 반수면 상태를 즐긴다. 영화라는 꿈과 시간이라는 꿈이 뒤섞여 낯설고 신기한 별로 가는 거다.
꾸벅꾸벅 졸다가 보면 영화가 끝이 나기도 한다. 그럴 때는 주제가 음악을 들으며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외계인의 글씨처럼 빽빽이 나타나다가 드디어 암흑 속으로 사라지며 끝이 나는 장면을 즐긴다. 나 말고도 화면이 까맣게 사라질 때까지 객석에서 마지막을 지키는 사람들이 몇 사람은 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길쭉 하얀 청년일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한 건물에 살면서도 자주 볼 수 없는 길쭉 하얀 청년의 안부가 늘 궁금하다. 어제는 영화 시작 시간에 좀 늦게 도착해 캄캄한 극장 속을 불안한 마음으로 들어가 겨우 자리를 찾아 앉았다. 문득 길쭉 하얀 청년이 옆자리에 앉아있는 걸 알았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눈인사를 나눴다. 영화가 끝나고 어색한 기분으로 같이 걸어 나오는데 누군가 그에게 인사를 건넨다.
“오랜만이네. 뱀파이어.”
그때 프루스트 말고 외국 이름은 처음 들었다. 문득 ‘프루스트’와 ‘뱀파이어’가 모습만 다를 뿐 같은 사람인지도 모른다고 맘대로 생각한다.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돼지들이 전하라는 말을 ‘뱀파이어’에게 전해도 좋을 것 같다.
시간이 찾아왔었다는 말,
언젠가 먼 미래에
어쩌면 우리가 영원이라고 부를 만큼 긴 시간 뒤에
그러나 어김없이
태양도 지구도
막막한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고.
캄캄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극장의 마지막 화면처럼.
우리의 잃어버린 시간들과
인류의 모든 흔적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