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세 또 일주일이 지나갔다. 내 인생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어린 날 소풍 길에 보았던 외로운 산딸기, 중2병의 선구자였던 내가 사랑한 수학 선생님…….
이제 생각하면 그녀는 매사에 다른 아이들보다 좀 떨어지는 나를 늘 응원해준 것 같다. 나는 늘 수학 시험지를 받으면 눈앞이 캄캄해졌다. 언젠가는 백지로 낸 시험지를 보고 선생님은 나를 따로 불러 말씀하셨다. “난 네게 장애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언젠가 네가 쓴 시가 교내 문예지에 실린 걸 보고 놀란 적이 있단다. 수학도 시야. 그렇게 생각하면 쉬워지지. 다른 아이들은 시가 더 어려울지도 모르지.” 왜 선생님은 나처럼 수학 점수가 낮은 학생을 편애하셨을까? 수학이란 무엇인가? 살면서 계산을 잘하라고 배우는 것이다. 나는 늘 계산을 못했다. 어른이 되어서는 마음의 계산까지도 젬병이었다. “나는 네가 수학을 못 해서 좋단다. 내가 뭐 하나라도 가르칠게 있잖아.” 이런 논리를 나는 지금은 조금쯤 알 것도 같다. 내가 너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 좋은 방향으로. 나를 알아주는 너를 사랑하는 마음, 서로를 알아주는 그런 사랑스러운 마음.
선생님은 어느 봄날 저녁 클래식 음악 연주회에 나를 데리고 갔다. 음악회가 진행되는 그 시간 동안 내가 음악을 들었는지 아닌지 하는 것은 불분명하다. 선생님이 긴 머리를 간헐적으로 쓸어 올릴 때마다 장미향이 났다. 머릿속에서 계속 회오리가 일었고, 숨이 가빠져 내 숨소리가 선생님께 들릴까 봐 한동안 숨을 참곤 했다. 음악회가 끝나고 선생님과 나는 생전 처음 들어가 보는 카페에서 맥주를 마셨다. “괜찮아. 마셔봐.” 하면서 선생님은 거품이 이는 생맥주 두 잔을 시켜 한 잔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처음 마셔보는 맥주의 맛은 쓰디썼지만 어른이 된 것 같은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카페를 나와 좁은 골목길을 한참 걷는데, 우리 반 아이와 마주쳤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소문의 주인공이 되었다. 소문의 주인공이 된다는 건 얼마나 외로운 일인가? 동시에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설상가상으로 며칠 뒤 아버지가 집을 나가 여류화가와 함께 세상에서 사라져버렸다. 어머니는 아마 달나라로 간 모양이라고 했다. 학교에 가면 아이들도 교사들도 나를 두고 자기들끼리 수군댔다. 아버지가 집을 나간 지 한 달 뒤쯤 경찰이 찾아와 아버지의 죽음을 알려주었다. 아버지와 여류화가는 안나푸르나 산행을 떠나 아버지는 실족사했고, 여류화가는 멀쩡히 돌아왔다. 아버지가 집을 나가기 전 어머니는 악을 쓰며 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도대체 그 여자가 당신한테 무슨 여우짓을 한 거예요?” 아버지는 조용히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미안해 여보. 요즘 집에 있으면 난 숨이 막혀 죽어버릴 것만 같아. 그 여자는 나를 쉬게 해.” 쉰다는 게 무슨 뜻인지 나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출생 이후 나는 한순간도 쉰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니 늘 쉬기만 했는지도. 그즈음 아버지의 사업은 많이 어려워졌고, 매 순간 절벽에 서 있는 것처럼 위태롭게 보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세월이 갈수록 무책임한 아버지 생각은 별로 나지 않았지만 가끔 여류화가의 독특한 분위기와 아무것도 무서울 게 없는 것 같은 당당한 아우라가 떠오르곤 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부임한 수학 선생님은 나보다 열 살 정도 많았고, 마른 몸매에 어깨가 넓은 그녀와 함께 걸으면 보호받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그녀는 내 인생에 절대 잊을 수 없을 그 여류화가를 닮았는지도 모른다. 내 기억 속 여류화가는 옛날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의 흑백 사진처럼 가늘고 긴 눈썹에 마르고 길쭉한 얼굴, 그리고 넓은 어깨를 하고 있었다. 모과차의 향기와 장미향이 섞여 떠돌던 그 집의 냄새…. 이후로도 나는 어깨가 넓은 여자를 보면 마음이 설렜다. 음악회의 밤 이후 수학선생님은 내 시야에서 사라져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학교에 사표를 낸 날 저녁, 나를 데리고 음악회에 갔다 돌아오는 길의 카페에서 맥주를 권유했던 그녀를 다시는 볼 수 없었지만 그날 이후 오랫동안 그녀의 이미지는 기억 속의 여류화가와 어릴 적 텔레비전에서 상영해주던 주말의 명화 속 옛날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와 세상의 당당한 여자들의 이미지가 뒤섞여 내 이상형의 전형으로 남았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에 스며있던 장미향과 여류화가의 집에서 나던 모과차 향기가 섞인 냄새가 내 후각을 인지하는 세포 속에 저장되어, 어디선가 비슷한 향내가 나면 가슴이 두근거리곤 했다. 냄새란 얼마나 힘이 센가? 스쳐 지나가는 낯선 사람의 향수 냄새, 세상의 모든 꽃들의 냄새, 비 냄새, 술 냄새, 맛있는 냄새, 때로 우리는 입 냄새로 사람을 기억하기도 한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치명적인 입 냄새로 기억되는 누군가를 떠올리면 혹시 그때 충치가 있었거나 몸의 내부에 문제가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내를 미팅에서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중학교 시절의 수학 선생님이 돌아온 것 같은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마른 몸매에 넓은 어깨, 그리고 왠지 보호받는 기분이 들게 하는 편안함까지. 역시 수학을 전공한 그녀는 클래식 음악회에 가는 걸 좋아했다. 결혼을 한 뒤에도 우리는 한동안 클래식 음악회에 가곤 했다. 언제부턴가 음악회에 가지 않으면서부터 우리는 각방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슬슬 아내가 세상의 모든 물건들을 가지고 들어와 쌓아놓아도 나는 괜찮았다. 아내가 주워온 ‘멘디니’의 짝퉁 프루스트 의자에 앉아 있으면 아이디어들이 마구 떠오르기 시작했고, 프루스트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소설을 쓰는 일은 수를 놓는 일과 닮았다. 내게 좋은 소설은 촘촘히 놓아진 수를 천천히 감정이입하며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의 집이다. 생각의 수를 놓는 일. 잘 짜여진, 그 섬세하고 정교한 문장들은 대부분의 독자들에겐 그저 쓱 훑어보는 아까운 글자들일 뿐이지만.
어린 시절 나는 아이큐 테스트에서 80이 안 되는 점수가 나오기 일쑤였다. 아이큐 70에서 85 사이를 요새는 ‘경계선 지능’ 혹은 ‘느린 학습자’라 부른다. 나는 문자 그대로 ‘느린 학습자’였다. 지금도 그렇다. 그리고 나는 그 단어를 좋아한다. 뭐든지 느린 걸 좋아한다. 느리게, 느리게, 적당히 느리게.
아내는 물건을 주워 쌓아놓는 일에 주춤하다 싶더니 하루 종일 틀어박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책을 읽는 치매에 관해 본 생각이 났다. 설마 했지만 아무래도 아내의 책읽기는 심상치 않았다. 그것도 요즘은 아무도 읽지 않는 고전을 주로 읽었다. 아내의 방은 헌책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스피노자의 『윤리학』,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 다윈의 『종의 기원』, 괴테의 『파우스트』,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G.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등 어렵고 위대하고 긴 책만 읽던 아내는 드디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첫 장을 펼쳤다. 어쩌면 이해는 하나도 못 하면서, 하긴 무엇을 이해한단 말인가? 밑도 끝도 없이 위대하고 두꺼운 책이라면 성경과 불경, 코란 등을 따라갈 수 없으리라.
아내는 식사 시간에 끊임없이 자신의 독서에 관해 이야기했다. 우리가 얼굴을 마주하는 유일한 시간이 식사 시간이기도 했다. 아내가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책을 읽기 시작한 이후 우리의 식사는 대부분 배달음식으로 이루어졌다. 때로 그녀가 말하는 내용은 읽은 책과 무관하기 일쑤였다. 뭔가가 잘못되기 시작한 게 틀림없었다. 1871년에 태어나 1922년에 세상을 떠난 프루스트가 1632년에 태어나 1677년에 세상을 떠난 스피노자보다 옛날에 태어난 사람이라고 우기는 식이었다. 어머니가 물려준 작은 상가 건물에서 나오는 월세와 약간의 인세, 아내의 절약으로 그동안 우리는 살아가는 데 별문제가 없었다. 먹는 걸 제외한 물건들은 사실 그녀가 어디선가 주워오는 걸로 대부분 대체되었다. 넓지 않은 우리들의 공간은 낡은 책들로 가득 차 숨을 쉴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그녀는 끊임없이 읽고 또 읽어댔다. 가끔은 맞는 말도 하기는 했다.
“당신은 스피노자를 읽어야 해. 신이란 철학적 언어적으로만 존재할 뿐, ‘나는 야훼를 부정한다’고 말하며 유일신이란 따로 존재하지 않고 모든 사물에 신성이 깃들어있다는 그의 범신론은 지금 이 시대 우리를 구해줄 유일한 종교적인 이론이야. ‘모든 고귀한 길은 어렵고도 드물다.’ 『윤리학』의 마지막 문장이지. 오랫동안 저주받고 배척당한 그의 이론은 당대에는 영향력을 갖지 못했지만 그의 사후에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지. 그는 먹고 살기 위해 렌즈 수공사로 일했어. 어릴 적부터 빛에 심취한 그에게 빛은 소중한 장난감이었지. 그는 늘 렌즈를 깎으며 놀았대. 당신이 글을 쓰며 놀듯이. 몇 세기를 앞서간 스피노자는 어쩌면 외계인이었을지 몰라. 태평양 대왕 문어를 본 적 있어? 피가 푸른색이고, 심장이 세 개, 다리가 여덟 개인 거대 두족류 문어는 가장 영리한 생물이지. 문어는 일생 단 한 번의 짝짓기를 하지. 오직 후세를 남기기 위한 생물의 슬픈 역사야. 가장 외계인을 많이 닮은 문어처럼 스피노자도 외계인이었을지 몰라. 앞으로 백년 이백년 뒤의 인류가 외계인이듯이.”
매일 반복되는 이렇게 두서없는 아내의 말은 드디어 나를 질리게 하고 말았다.
“당신도 외계인이 틀림없어. 당신이 외계인이 아니라면 이토록 나를 외롭게 할 수는 없을 테니까. 과거는 완벽한 허상이고 삶은 지금뿐이지. 도대체 이런 인생을 예측한 적 있어? 얼마 전부터 내게 미래가 보이기 시작해. 이게 미래인지 꿈인지 알 수 없지만, 너무 생생하게 느낌이 와. 당신은 다음 시대에 프루스트만큼이나 위대한 작가가 될 거야. 그러니까 지금 시대와 힘들게 경쟁할 필요 없어. 하지만 최고의 마술사가 되기 위해서는 마술을 믿어야만 해. 지금 시대가 당신을 알아보기엔 당신은 너무 앞서 있어. 그래봤자 언젠가 먼 미래에 지구가 사라진다는 건 팩트야. 다 사라지기 전에 우리 둘이 행복하면 그만인데, 여보 나는 사실 당신 옆에서 너무 불행해. 어떡하면 좋을까? 당신이 하루 종일 앉아서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는 글을 쓰는 프루스트 의자나 좀 빌려줘 봐, 거기 앉으면 꿈속에서 본 바하마의 햇빛 아래 앉아있는 기분이면 좋겠다. 우리 참 사랑했는데 우리 사이에 남은 건 멘디니가 만든 프루스트 의자, 그것도 짝퉁 의자 하나인 것 같아. 여보, 우리 여기서 그만하자.”
내가 답한다. “뭘? 우리가 뭘 했다고 뭘 그만둬?” 나는 아내가 주워온 짝퉁 프루스트 의자를 그녀에게 주고, 집을 나왔다. 내 것이라고는 그 의자 하나밖에 없는 것 같았지만, 그조차 그녀가 주어다 준 것이었다.
집을 나와 무작정 걸었다.
길은 어디에고 이어져 있었다.
잃어버린 시간에게로.
저 언덕 위에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 갔던
하얀 양옥집, 여류화가의 집, 닫힌 방문을 열고 들어서면
멘디니의 진짜 프루스트 의자가 놓여있는 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