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동품점 ‘메리 포핀스’ 2
온 세상을 다 돌아다녀도 그 사람의 아내는 찾을 수가 없었어요. 우리는 기차를 타고 처음에 그렇게 만났듯이 캔 커피를 마시며 서울로 돌아와 기약도 없이 헤어졌어요. 그렇게 세월이 흘러 저는 뜻밖의 골동품가게 메리 포핀스를 운영하게 되었답니다. 생각처럼 골동품가게를 운영하는 건 쉽지 않았어요. 하루 종일 앉아있어도 손님이 한 명도 안 오는 날도 있기 마련이거든요. 사십 평 남짓한 공간에 많을 때는 하루에 한 스무 명도 들어오곤 하지요.
들어와서는 이것저것 묻고는 그냥 가버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요. 실은 단골손님들 몇이 제 생계를 도와주는 격이죠. 골동품가게에 하루 종일 앉아있는 건 도를 닦는 거 하고도 많이 비슷해요. 하긴 그렇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하루 종일 오래된 물건들 사이에 앉아있다 보면 저 자신이 그들 중 하나가 된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어요.
처음 이 가게를 시작했을 때, 별의별 물건들이 다 있는 가운데 저는 우선 이 물건들의 존재를 다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치 별을 헤거나 양의 숫자를 세는 것처럼 물건은 많았지요. 그중에는 중국이나 네팔, 티베트 등지에서 들여온 부처상들도 많았어요. 예수나 마리아상만 훌륭한 줄 알았는데 부처상들도 들여다볼수록 아름답더라고요. 저는 종교 역시 인연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집안이 가톨릭을 믿지 않았더라면 저는 스님이 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듯 부부의 연도 이루지 못한 연인들의 인연도 그저 하룻밤을 스쳐 지나간 손님과 몸 파는 여인과의 인연도 다 인연이지요. 어쩌면 이 세상 모든 인연들을 우리는 소중하게 가꿔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이 순간의 짧은 찰나라 할지라도 인연 닿은 상대방에게 최선을 다하기, 그게 바로 제 만남의 법칙이지요.
수녀복을 벗고 세상으로 나와 기차 안에서 처음 만난 그 사람과의 만남이 바로 그랬어요. 최선을 다해 그 사람의 아내를 찾아다녔고, 남녀를 떠나 같은 인간의 종으로서 우리는 거의 99% 소통이 가능했어요. 어쩌면 그게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한참 뒤에 들더군요. 하지만 그 사람의 전화번호 하나 받지 않았다는 생각이 저를 슬프게 했어요.
정말 기적처럼 우리가 다시 만난 건 기차역에서 헤어지고 난 삼 년 후였어요. 유난히 가게에 손님이 많이 들어오던 어느 봄날, 그 사람이 커다란 첼로를 들고 우리 가게 안에 들어섰어요. 저는 그 순간 제 눈을 의심했어요. 다신 만나지 못할 줄 알았거든요. 그 사람은 수줍은 얼굴로 저를 바라보며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한 번쯤 꼭 만나고 싶었다고 말했어요. 들고 온 첼로는 사연이 깊은 물건인데 이제는 악기가 아니라 소리가 나지 않는 그저 골동품이라 미련을 버리고 싶은 마음에 팔아버리러 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그 첼로는 우리 가게의 제일 좋은 자리에 놓이게 되었던 거죠. 첼로를 놓고 간 뒤 그 사람은 종종 가게에 들려 이런저런 물건들을 사곤 했어요. 오래된 중국산 램프, 이런저런 모양들의 골동 의자, 손바닥에 놓일 만큼 조그만 부처상들, 그에게는 누군가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모은 물건들 중 그리 비싸지 않고 아름다운 물건들을 고르는 심미안이 있었어요. 저는 그 사람의 그 심미안을 사랑했지요. 제 생애 가장 좋은 때, 그때가 제 인생의 화양연화였어요.
어느 비 오는 날 그 사람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와 조그만 부처상을 하나 사더니 그걸 제게 선물로 주더라고요. 당신이 수녀였다는 걸 잘 알지만 이 세상에는 강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인연이 따로 있으니 그게 바로 당신과 나의 인연인 것 같다며, 아무리 찾아도 없는 아내는 이미 자신과 빗겨간 인연이라 말하더군요. 봄비가 보슬보슬 내리던 그날, 그 사람은 제게 장미꽃 한 송이도 없이 손바닥에도 놓이는 조그만 부처상을 제 손에 쥐여 주며 ‘결혼하자’ 하고 말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