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동품점 ‘메리 포핀스’ 1
참 알 수 없는 게 우리네 인생이지요. 제가 골동품 가게를 하리라고는 예전엔 상상도 할 수가 없었어요.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저는 어릴 적부터 수녀가 되는 게 꿈이었답니다.
우리 집안엔 고고한 순교자의 피가 흐른다고 말씀하시던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떠오르네요. 우리 가게에 와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정말 없는 거 빼곤 다 있답니다. 오래돼 소리가 나지 않는 기타, 아무리 달래보아도 침묵을 지키는 첼로, 옛날 옛적 어느 먼 나라의 황실에 있었을법한 고색창연한 라디오, 물론 소리는 나지 않는답니다.
이상한 건 우리 가게에 있는 물건은 고장 난 것일수록 기품이 있다는 겁니다. 소리 나지 않는 첼로만 해도 예전엔 엄청난 가격에 팔리던 몇백 년 묵은 것이라 해요. 모습은 멀쩡한데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물건들은 인테리어 소품으로 팔려나가기도 하죠. 십 년 전 여행을 왔다가 우연히 골동품가게에 들린 프랑스인과 결혼해서 파리로 떠난 친구로부터 제 딴에는 꽤 큰 액수의 돈을 주고 이 가게를 맡았어요. ‘메리 포핀스’는 친구가 운영하기 훨씬 전 원래부터 이 골동품 가게의 이름이었어요. 신기하게도 짧은 시간이지만 수녀 생활을 잠시 했던 제 별명이 ‘메리 포핀스’였답니다. 그래서 이 가게를 맡는 걸 주저하지 않았는지도 모르죠. 지팡이를 휘두르기만 해도 발아래 신비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마술사, 하긴 제 꿈도 마술사였어요. 이 가문 세상에 비를 고루고루 내리게 해서 배고픈 사람도 아픈 사람도 없는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게 제 오랜 꿈이었죠. 수녀가 되어서 그런 세상을 만드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까 했는데, 어림도 없는 일이었어요.
수녀복을 벗고 바람 불고 비 오는 세상으로 나오니 갈 곳이 없더군요. 피붙이라고는 딸랑 오빠 하나밖에 없는데 그 집에 가기가 망설여졌어요. 왜냐면 오빠는 제가 수녀 되는 걸 누구보다도 말리던 사람이었거든요. 일단 바다를 보고 싶던 저는 동해안으로 가는 기차를 탔어요. 그때 제 옆자리에 앉아있던 그 사람이 바로 훗날 제 남편이 된 사람이랍니다. 그는 대기업에 근무하던 건실한 회사원이었어요. 제 옆자리에 앉은 그는 제가 내미는 캔커피를 받아들며 머뭇거리는 목소리로 자신이 이 지구 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며 집 나간 아내를 찾으러 휴직계를 내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중이라고 말했어요. 별일 없다면 동행해주면 정말 감사하겠다고 말한 건 그가 아니라 제 안의 목소리였어요. 그렇게 우린 한 달 남짓 전국을 여행하며 쏘다녔어요. 아무리 다녀도 그 사람의 아내는 찾을 수 없었어요. 우리는 해가 뜨면 그 사람의 아내를 찾으러 다녔고 그 핑계로 이 땅의 풍광 좋다는 산과 강과 계곡과 바다들을 죄다 돌아다녔어요. 제 생애 가장 좋은 날들이었죠.
밤이 되면 찜질방에 고단한 몸을 뉘었어요. 그 사람과 저는 누가 볼 새라 멀찌감치 떨어져 누워 있곤 했어요. 대한민국의 찜질방처럼 신기한 공간이 또 있을까요? 남녀 구분 없이 다 함께 따뜻하고 커다란 공간에 드러누워 휴식을 취하는 곳, 찜질방은 오갈 곳 없는 외로운 사람들의 값싼 은신처가 되어주기도 하지요. 밤이 깊어갈수록 점점 커져가는 코 고는 소리들의 합창은 여름의 막바지에 귀가 떨어지도록 시끄럽게 울며 죽어가는 매미들의 합창 같아요. 가끔은 새벽에 새로운 사람이 손님처럼 들어오기도 하죠. 주위를 둘러보고는 불안한 몸짓으로 자기 자리를 찾아 몸을 뉘는 사람에게 너는 누구냐고 묻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요. 발가벗고 있어도 당신은 누구냐고 묻지 않는 목욕탕이나 수영장처럼 정말 만인이 평등한 곳, 그곳 또한 찜질방이에요. 머리가 긴 여자들이 잠이 오지 않는지 가운을 입고 넓은 방안을 이리저리 서성이는 모습을 보면 마치 연옥을 닮았어요. 제대로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귀신들이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누워서 바라보는 일은 슬퍼요. 마치 저 자신도 그들 중의 하나라는 생각에 이르니까요. 황토방, 수정방, 산소방 등등 신기한 이름의 방들은 뜨끈뜨끈한 게 마치 저승세계의 퓨전 같아요. 대청마루는 바닥은 뜨거운데 위풍이 너무 세서 잠이 오지 않아 저도 귀신처럼 흐느적거리며 따뜻한 수정방으로 들어갔어요. 말똥말똥 눈을 뜨고 아줌마들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누워있자니 쪄 죽을 것 같았어요. 이런 제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때 저와 동행한 지금의 남편은 위풍이 센 대청마루 구석에 몸을 구부리고 누워 인기척도 없더라고요. 찜질방에서 지낸 그때 불면의 기억들은 제게 이런 결론을 내리게 해주었죠. “우리네 삶은 누구에게나 한대가 아니면 열대이다. 우리 맘에 딱 맞는 쾌적한 온도의 삶은 없다”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