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 1
저는 ‘첼로를 켜는 여자’를 좋아했어요. 피아노나 바이올린도 아니고 왜 하필 첼로냐고요?
하긴 문화적으로 좀 겉멋 든 남자들이 첼로 켜는 여자를 좋아하곤 하지요.
제 경우는 별로 예쁘지도 않던, 고등학교 때 음악선생님이 첼로 켜는 모습을 처음 본 뒤, 그녀가 제 첫사랑이 되었답니다. 연주할 때 첼로를 껴안고 있는 선생님을 볼 때마다 제가 그 첼로였으면 하는 꿈을 꾸곤 했죠. 가끔 눈이 마주칠 때면 제 착각인지는 모르지만 선생님의 풍만한 가슴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어요. 어느 날은 꿈을 꾸었는데, 선생님과 저와 선생님의 첼로 셋이 섹스를 하는 꿈이었어요. 그 꿈이 얼마나 섹슈얼했는지 지금도 잊히지 않네요. 그 꿈을 꾼 지 며칠 후 놀랍게도 저는 독감에 걸려 학교에 못 나오시는 선생님 댁으로 첼로를 가져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어요. 그 무거운 첼로를 들고 학교에서 멀지 않은 선생님 댁에 도착했을 때, 제 가슴은 쿵쾅거리기 시작했죠. 선생님은 고맙다고 하시며 저를 살포시 끌어안았어요. 그건 아주 따스하고 귀여운 제스처였을 뿐인데 그만 저는 선생님을 확 끌어당겨 제 품에 꼭 끌어안아 버렸어요. 꿈인지 생신지 선생님은 가쁜 숨을 내쉬며 그 뜨거운 가슴으로 제 가슴을 압박해왔어요. 고등학생이라지만 이미 저는 선생님보다 훨씬 키도 크고 몸집도 당당했어요. 심장은 터질 것 같았고, 집에는 우리 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제 첫 경험은 갑작스럽게 그리고 황홀하게 시작되어 갑자기 그리고 비참하게 끝이 났지요. 선생님은 다시는 저를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내 품 안에서 그렇게 뜨겁게 타오르던 여자가 어떻게 저렇게 차가운 얼음으로 변할 수가 있는 건지 어리둥절할 뿐이었죠. 그러더니 어느 날 갑자기 결혼해서 미국으로 가버렸고, 저는 비참하게 버려진 기분으로 청소년기를 살아냈어요. 그래도 집중력은 있는 편이라 성적이 나쁘지 않아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웬만한 학교를 졸업했지요. 여자라면 무섭다는 생각과 아울러 첼로를 켜는 여자라면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어요. 나의 청소년기를 무참히 짓밟은 여자, 선생님 당신은 그런지 알기나 하시는지요? 음악 선생님처럼 주근깨가 많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대학 들어가 했던 첫 미팅에서였어요. 그날도 아무 기대 없이 친구 놈이 하도 성화를 대는 바람에 미팅 장소에 나갔던 거죠. 설마 그렇게 질긴 운명의 상대를 만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게다가 그녀는 첼로 전공의 음대생이었어요. 그녀 역시 결코 미인은 아니었지만, 매력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좀 묘한 느낌의 여자였어요. 처음엔 그녀에게 별생각이 없었어요. 주근깨 때문에 아련한 옛사랑을 일깨우긴 했지만, 워낙 여자한테 질린 터라 대충 차나 한잔하고 집에 가서 밀린 잠이나 자리라고 생각했죠. 그날은 정말 아무 일도 없이, 다시 만날 약속도 하지 않고 헤어졌어요. 5월 어느 날, 집이 부산이라 학교 앞에 원룸을 빌려 혼자 살고 있는 제게 전화가 걸려왔어요. 그녀였죠. 학교 축제에 파트너로 같이 가달라고 말하는 그녀의 낮으면서도 경쾌한 목소리는 왠지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었어요. 얼떨결에 같이 가자고 허락을 하고 나서 저는 잠시 마음이 떨려왔어요. 주근깨가 많은데도 밉지 않았다는 것 말고는 생각이 잘 나지 않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계속 제 귓가를 맴돌았어요. 목소리에 반하는, 혹시 그런 기분 아세요? 목소리는 첫 음에 반하게 하지는 않지만 묘한 중독성이 있는 법이죠. 한 번 두 번 듣다가 깊은 정이 들어버리는 목소리, 그래서 전화의 발견은 연애의 역사를 바꿔놓았다고 생각해요. 드디어 나도 모르게 기다리던 축제의 날이 다가왔고, 그녀는 아름다웠어요. 검은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유난히 가는 허리와 풍만한 가슴을 지니고 있었어요. 저는 그녀 외엔 딴 곳을 바라볼 틈이 없었죠. 첫 미팅 때 왜 첫눈에 반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여운이 길게 남는 목소리 말고도 그녀는 아주 섹시한 몸매를 지니고 있었죠. 게다가 그녀의 매력은 자신이 그렇게 아름답다는 걸 모른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더욱 자연스러운 매력을 지닌 그녀와 저는 사랑에 빠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