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짧은 노래 3회
스스로 자신을 "거대한 고독"이라고 불러온 조각가 선생은 이탈리아 요리를 잘하는 사랑스러운 연인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무척 좋아하는 그에게는 정말 오랜만의 여행이었다. 좋은 차를 하나 빌려서 그들은 서부를 향해 떠났다. 미국의 서부 중에서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애리조나와 뉴멕시코 주였다. 광활한 서부의 땅을 빼곡하게 메우며 서 있는 거대한 선인장들에 반해 그는 숨이 막혔다. 대자연 속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돌과 바위와 식물들은 그 자체로 위대한 조각이었다. 그는 미국 서부를 여행하고 나서 그림 그리기를 그만두었다는 선배의 말이 이해가 갔다. 그는 예술보다 위대한 자연의 힘을 그곳에서 절감했다. 예술 따위는 하지 않아도 그저 그 풍경의 일부만 되어도 족할 것 같았다.
뉴멕시코 주의 알바쿠키 근교에 있는, 거대한 절벽을 깎아질러 만든 인디언 보호구역 '아코마 빌리지'에 도착한 그들은 달 표면에 착륙한 기분이 들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다. 영원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말일까? 영원 따위 없어도 아무 상관없었다.
그저 그 순간이 영원이었다. 절벽 꼭대기에 천국처럼 존재하는 하얀 마을, '아코마 빌리지'에 사는 인디언들 중 젊은이들은 다 큰 도시로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있었다. 그 노인들처럼 늙어 그 평화롭고 적막하고 아름다운 그곳에서 그냥 살아도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들은 뉴멕시코 전역을 꿈처럼 헤매며 돌아다녔다. 행복한 두 사람은 미국 서부의 위대한 자연을 가슴에 품고 돌아오는 길에 하이웨이에서 다가오는 커다란 트럭과 부딪쳐 대형 사고를 만나게 된다. 그가 병원의 하얀 침대 위에서 눈을 떴을 때, 마침 그를 간호하던 한국계 젊은 간호사가 괜찮으시냐고 물었다. 사랑하는 그의 요리사 연인은 세상을 이미 떠난 뒤였다. 그는 그녀의 부재를 견딜 수 없었다. 도저히 치유될 수 없었던 시간들이 가고, 그 자리에 그를 간호하던 한국계 간호사 아가씨가 하얗게 눈처럼 쌓인 그의 고독을 뚫고 들어왔다. 그가 웬만큼 회복되어 뉴욕으로 돌아온 뒤 그들은 수없는 이메일과 전화를 주고받았다. 간호사 아가씨는 어느 날 커다란 빨간 색 트렁크 하나를 들고 영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나오는 '줄리엣 비노슈'처럼 그가 사는 뉴욕 아파트 문 앞에서 외출 중인 그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그녀는 뉴욕에 일자리를 구한 뒤 그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어쨌든 그는 또다시 혼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틈이 날 때마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이란 레스토랑은 다 뒤지고 돌아다녔다. 왠지 죽은 그의 요리사 연인이 어딘가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을 것 같은 환영에 시달렸기 때문이었다. 헌신적이고 현실적인 간호사 아가씨는 그의 그런 몽유병자 같은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작품이 가끔 팔리기는 했지만 넉넉한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간호사 아가씨의 수입에 의존해야 했다.
그는 여전히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가엾은 손자, 나는 왕이로소이다.'와 같은 존재였다. 희극과 비극의 감성을 한 몸에 지닌 천재적 조각가, 하지만 돈 많은 미국인 아내와의 결별 후 현실적으로 어려운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한국말을 잘하지 못하는 한국계 간호사 아가씨는 틈만 나면 그에게 영어로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요."라고 말하곤 했다.
그는 그 말을 들으며 헤어진 첫 번째 아내가 떠올랐다. 한국말과 영어의 차이일 뿐이지 그들은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날 때부터 거대한 고독을 이고 지고 산다지만, 왜 나는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와 함께 살고 있을까? 왜 죄 없는 그들에게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외로운 마음을 심어주는 걸까? 그는 그렇게 자신을 자책했지만. 그렇다고 더 나아질 것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헤어졌고, 간호사 아가씨는 짐을 꾸려 가족들이 있는 서부의 집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요리사 연인을 잊지 못하는 그는 그 뒤에도 한참 동안 맨해튼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뒤지고 다녔다. 덕분에 그는 이탈리아 음식을 질리도록 먹었다. 한참을 헤맨 뒤 아무 데도 없는 그녀를 가슴에 묻은 그는 더 이상 뉴욕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뉴욕의 추운 겨울 날씨와 결별하고, 날씨 좋은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사 온 지 며칠 되지 않아 점심을 먹으러 샌드위치를 전문으로 파는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가 우리의 주인공인 회계사 "그녀"를 마주치게 된 것이다. 한국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들은 모르는 척 몇 번을 그냥 스쳐 지나갔다.
그 뒤에도 그들은 여기저기에서 우연히 부딪쳤다. 다시 그 샌드위치를 파는 식당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그녀가 같이 앉아서 점심을 먹자고 먼저 말을 걸어왔던 것이다. 이미 많은 상처를 껴안은 그들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