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짧은 노래 2회
그녀의 새 애인은 같은 동네에 새로 이사 온 남자였다. 그들은 쇼핑 몰에서, 자동차 기름을 넣는 가스 스테이션에서, 은행에서, 가끔 그녀 혼자 점심을 먹는 샌드위치 집에서 수시로 부딪쳤다. 초록색 구두를 신고 날개를 단 듯 사뿐히 걸어가는 남다른 그의 존재감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자주 부딪치는, 그것도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를 핑계 삼아 점심을 한자리에 앉아 먹은 이후, 그들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는 그녀가 세상에 태어나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유형의 인간이었고, 동시에 그녀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만나본 예술가였다. 그녀가 아주 오래전에 텔레비전에서 인상 깊게 본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남자 주인공처럼 그는 그녀의 머리를 감겨주었다. 훗날 그와 헤어진 이후로도 그녀는 그 장면을 가끔 떠올렸다. 그는 수많은 변주로 물결 치는 남다른 예술적 감성으로 그녀의 심심한 영혼을 사로잡았다. 사실 그즈음 그는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동거 생활을 끝내고, 어딘가 다른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고픈 기분으로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온 상태였다.
몸과 마음이 다 많이 지쳐 있었고, 누군가를 또 만나 쉽게 사랑에 빠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분명 미남은 아니었지만, 어디선가 한 번쯤 본 듯한 낯익은 외모와 어눌하면서도 인상적인 말투와 몸짓은 어딘가 사람의 마음을 끄는 구석이 있었다. 어쩌면 여자들은 만일 그가 돈이 한 푼도 없는 거지만 아니라면, 멋지면 멋진 대로, 추하면 추한 대로 예술가를 좋아한다. 예술가란 그의 감성이 여자의 섬세함을 닮은 종족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는 늘 여자들로부터 도망치며 살아왔다. 그가 여자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항목들 중의 하나는 "당신 나 사랑해?"하고 묻는 장면이었다. 그 '끈끈이주걱'처럼 들러붙는 여자의 촉수로부터 그는 늘 도망치고 싶었다. 정말 그는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있었을까? 하긴 말로는 수백 번도 더 사랑한다고 말했을 것이었다.
어릴 적 어머니 얼굴도 보지 못한 채 할머니 품 안에서 자란 그는 어릴 적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 그림을 그려서 상을 탄 날이면 할머니는 커다란 눈송이 같은 동그란 밀알이 동동 뜨는 팥죽을 끓여주셨다. 그가 이 세상에서 제일 그리워하는 음식이 바로 그 팥죽이었다. 당연히 할머니는 그에게 할미를 사랑하느냐고 단 한 번도 물은 적이 없었다. 무조건의 사랑을 그에게 심어주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그는 늘 할머니를 닮은 여자를 만나고 싶었다.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에 관해서 그 아무도 말을 해준 적이 없었지만, 그는 늘 비련의 여주인공을 상상하곤 했다. 어쩌면 어머니는 화류계에 몸담고 있던 직업여성인지도 몰랐다. 어떤 부잣집 도련님에게 실연을 당해서 강물에 뛰어들어 죽어버렸을까? 우리 아버지는 그 부잣집 도련님일까? 아무리 물어봐도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네 어미는 아파서 죽은 거라는 똑같은 대답만 되풀이했다. 화가로 크게 성공을 해서 할머니를 호강시켜주겠다는 오래된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어느 추운 겨울날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그 때 이후 그는 자신을 스스로 '거대한 고독'이라고 불렀다. 남들이 무어라든 그는 고독한 베토벤처럼 위대했고, 베토벤처럼 비참했다. 대학에 들어가 그는 화가의 꿈을 접고 조각에 입문했다.
평면이 아닌 조각의 입체감이 그에게는 훨씬 매력이 있었다. 소묘를 가르치며 대학 학비를 벌던 화실에서 그를 좋다고 매달리던 수많은 소녀들 중의 한 여자와 그는 몇 년 뒤 얼떨결에 결혼을 했다. 아이가 생겨서이기도 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사무치는 외로움이 그를 거대한 안개처럼 휘감았기 때문이었다. 결혼 이후 심심하면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던 아내의 말투가 그는 견디기 힘들었다. 누가 누구를 꼭 사랑해야만 우리는 같이 살 수 있는 것일까? 그냥 아무라도 더 많이 사랑하면 안 되는 일일까? 첫 번째 아내와 이혼한 뒤 그는 두 딸을 아내에게 맡기고 혼자 미국으로 떠났다. 갈 때 수중에 지닌 돈은 단돈 백 불이었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선배의 작업실에 기거하며, 먹고살기 위해 페인트칠을 하기도 하고 식당 웨이터 일을 하기도 했다. 사실 달마다 생활비를 벌어다 주어야 하는 일도 그가 여자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들 중의 하나였다. 웨이터 일을 맡아 하던 한국 식당에서 그는 자신보다 열 살 많은 돈 많은 미국 여자를 만나게 된다. 한국 음식을 좋아하던 그녀는 사업상 한국과 인연이 있었던 남편과 이혼한 뒤 막대한 위자료를 받아 혼자 살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특히 뉴욕에서는 이혼법이 여자에게 많이 유리하게 작용하는 탓에, 이혼한 여자는 부자가 되고 두 번쯤 이혼한 남자는 파산 지경에 이르는 게 드문 일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평생 예술을 하다가 예술가로 죽을 수 있는 사람이란 얼마나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들일까? 그는 그 대목을 스스로 인정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타고난 멋쟁이였다. 돈 한 푼 없던 가난한 미술학도 시절에도 물감이 잔뜩 묻은 누더기를 걸쳐도 폼이 났다. 그의 조각은 유머러스하고 심오했다. 돈 많은 그의 두 번째 아내는 볼수록 웃음이 나면서도 묘한 슬픔이 깃든 그의 조각과 왠지 사람을 끌어당기는 그의 표정에 홀딱 반했다. 그는 나이 많은 두 번째 아내 덕에 예술가로서의 상업적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그는 늘 아내에게 고마운 생각을 지니고 살았다. 문제는 그들이 결혼한 지 몇 년 되지 않아. 작품을 하는 것에 관해서도 작품을 파는 것에 관해서도 아내의 간섭이 너무 심해져서, 그는 자신의 작품 공장에서 노예로 일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숨 막히는 하루하루를 살면서 가난했던 날들의 자유가 그리워질 무렵, 그는 화가가 되려고 뉴욕에 그림공부를 하러 온 부잣집 딸내미와 사랑에 빠졌다. 그러는 사이 아내에게 들켜서 그는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맨몸으로 쫓겨났다. 다시 가난해진 그는 이제야말로 베토벤이 된 기분이었다.
그와 사랑에 빠진 부잣집 딸내미는 그 덕분에 집으로부터의 학비 원조가 끊겼다. 그들은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꾸몄다. 그녀는 학교를 그만두고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꽤 괜찮은 식당에 부주방장이 될 만큼 그녀의 요리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훌륭해졌다. 그는 자신이 이탈리아 요리를 잘하는 꾸밈없고 순수한 연인을 지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하지만 그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