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짧은 노래 1회
그녀는 우리가 흔히 하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 속의 주인공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우선 그녀에게는 질투라든지 미련이라든지 애증 같은 끈적끈적한 감성의 유전자가 거의 없었다. 그녀는 일찌감치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알베르 카뮈의 이런 구절을 삶의 좌우명으로 적어놓았다. “우리의 운명이 우리의 본성과 일치할 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사랑할 수 있다.” 그녀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일어나는 모든 사랑의 해프닝들을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대학교 일 학년 때 같은 과 남자 친구와 결혼했다. 어느 추운 겨울 그녀의 결혼식 날, 뱃속에는 이미 석 달 된 아이가 있었다. 그 뒤 그녀는 유학을 떠나 십 년을 같이 살던 남편에게 이혼해달라고 말한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착한 남편은 울면서 순순히 헤어져 주었다. 그즈음 그녀는 회계사 시험에 합격해서 잘나가는 미국회사에서 일하는 커리어 우먼이었다. 십 년을 하루같이 학교만 다니던 무능하기 짝이 없는 첫 번째 남편과 헤어진 뒤, 그녀는 부동산업을 하는 현실적이고 유능한 새 애인과 결혼했다.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은 그녀에게 많은 돈을 벌게 해주었다.
그녀의 두 번째 결혼 생활은 첫 번째 결혼보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었지만, 그렇게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남편의 마음과 머릿속은 언제나 돈과 관련된 수식어들로만 가득해서, 그녀가 정서적으로 쉴 곳이 없었다. 그들 사이에는 서서히 욕망이라는 즐겁고도 고통스러운 관계의 끈이 녹슬기 시작했다. 어느 날 그녀는 사랑니를 빼러 치과에 갔다가 치과 의사와 사랑에 빠졌다. 어쩌면 첫 번째, 두 번째 남편 둘 다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착하지만 지루한 남자들이었다면, 그녀의 세 번째 남자는 욕망이 그저 자연스러운 날씨 같다는 걸 처음으로 가르쳐준 사람이었다. 그들은 틈만 나면 한참 사랑에 빠진 다른 연인들처럼 아무 데서나 부둥켜안았다. 그녀는 두 번째 남편과 이혼하고 세 번째 연인과 같이 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같이 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그 매력적인 남자와 매일 싸우기 시작했다. 너무 많이 싸워서, 우직하고 지루했던 두 번째 남편과의 평화로움이 그리워질 무렵, 그날도 그녀는 아침을 먹고 난 뒤 연인과 죽일 듯 대들며 싸웠다. 그녀가 출근하러 집에서 떠난 뒤 10분 후 그는 제 성질에 못 이겨 심장 발작으로 급사했다.
어느 날 그녀는 거울을 보다가 나이보다 일찍 나오기 시작한 흰 머리들을 뽑았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그런 자책감에 빠져 있는데, 헤어진 지 오랜 첫 번째 남편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아마도 그녀의 탓은 아니었을 것이다.
직업을 가져본 적도 없고 돈을 벌어본 적도 없는, 게다가 섬약하기 짝이 없는 그는 우울증이 심했다. 첫 번째 남편의 장례식에서 그녀는 오랜만에, 예전에는 꽤 친하게 지내던 남편의 학교 동창인 일본인 펀드 매니저를 만났다. 그들은 그렇게 데이트를 시작했다.
그 역시 착하고 온순하고 조용한 성품을 지닌 사람이었다. 정열적이고 사교적이며 불 같은 성격을 지닌 그녀는 늘 자신과 반대되는 성격을 지닌 사람과 인연이 있었다. 그녀와 싸우다가 화가 나서 심장발작을 일으켜 죽어버린 세 번째 연인을 제외하고는 큰소리 한 번도 들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머지않아 그녀는 첫 남편의 친구인 일본인 펀드매니저와 결혼했다. 평화로운 나날들 사이로 첫 번째 남편이 데리고 있던 딸 아이리스가 그녀의 삶 속으로 들어왔다. 아이리스는 거침이 없고 직선적이고 생각을 곧 행동으로 옮기는 무모함까지 엄마를 닮았다. 그들 세 식구는 아무 문제 없는 행복한 가족을 이루었다. 남편은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했으며 친구의 딸이자 아내의 딸인 아이리스를 진심으로 딸처럼 여겼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돈을 무지하게 잘 버는 데 비해 그가 지나치게 절약하는 사람이라는 거였다. 안경다리가 부러지면 고치고 고치다가 실로 매어서 다시 썼다. 손님이라도 오면 화장실의 크리넥스 화장지는 치워졌고 그 자리엔 덩그러니 두루마리 화장지만 매달려 있곤 했다.
하이스쿨에 다니는 아이리스의 학교에 의무적으로 내게 되어 있는 얼마 안 되는 자선 기부금을 내는 대신, 그는 한 달에 한 번 자진해서 학교 수위 일을 했다. 그녀 역시 돈을 잘 벌었기 때문에, 그렇게 커다란 문제는 아니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들 모녀를 지켜주고 안락한 가정의 충실한 집사 노릇을 하는 남편에게 그녀는 깊은 신뢰감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하다못해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다든지, 규칙적인 섹스라든지, 뭔가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취미나 게임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던 날들 사이로 그녀는 또 새 애인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