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말라는 금빛 찬란한 새장에 자그맣고 희귀한 새를 한 마리 기르고 있었다. 싯다르타는 이 새의 꿈을 꾼 것이었다. 그 꿈의 내용은 이러하였다. 아침만 되면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지저귀던 이 새의 소리가 웬일인지 들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불현 듯 뇌리를 스쳐서 새장 쪽으로 다가가 새장 안을 들여다보니, 그 새는 죽어 있었고, 이미 시체가 되어 바닥에 딱딱하게 굳은 채 쓰러져 있었다. 그는 새를 새장에서 끄집어내어 한 순간 손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골목 밖으로 휙 하니 던져버렸다. 바로 그 순간 그는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쓰리도록 아파왔다. 마치 그가 이 새와 함께 자기의 내면에 있는 가치 있는 모든 것과 선善을 송두리째 내던져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그의 마음은 고통으로 온통 뒤범벅이 되었다.
- 헤르만 헤세, 박병덕 옮김, <싯다르타>, 민음사, 121쪽.
아이들이 인형을 갖고 노는 데는 중요한 심리학적 동인이 있다. 아이들은 인형을 제 2의 자아로 취급하는 것이다. ‘제 2의 인격’이라는 대목은 융 심리학에서 매우 중요하다. 자신의 좌절된 꿈과 희망을 그 인형 속에 투사하여 봉인시키는 것이다. 그 인형이 무사하면 아무리 외적으로 힘든 상황이 닥쳐와도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제 2의 인격, 또는 또 다른 자아, 알터에고Alter Ego가 지닌 힘이다. 어린 시절의 융 또한 혼자만이 간직하던 인형이 있었다. 융은 필통을 인형의 침대로 만들고 문구용 자를 변형시켜 인형으로 만든 다음 아무도 올라가지 않는 비밀의 다락방에 숨겼다. 부모님의 불화, 권위적인 아버지와 융 자신의 불화, 결혼생활에 실망한 어머니의 우울, 선생님이나 친구들 앞에서 솔직한 모습을 보일 수 없는 스스로의 특별함에 대한 자각. 융은 이 모든 것과 불화했지만, 자신도 모르는 강한 힘에 이끌려 이 인형의 집을 만든 이후 융은 정서적 안정감을 얻게 된다.
이 모든 것은 나도 알지 못하는 하나의 큰 비밀이었다. 나는 인형이 들어 있는 필통을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집 꼭대기 다락방으로 몰래 가지고 가서 지붕 뼈대를 이루는 들보 위에 감추어두고 무척 흐뭇해했다. 왜냐하면 그 필통은 누구도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떤 사람도 그 필통을 거기서 발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아무도 나의 비밀을 발견하여 망가뜨릴 수 없었다. 나는 안정감을 갖게 되었고 나 자신과의 불화로 인한 괴로운 감정은 사라졌다. (…) 나는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 때만, 보통 일주일 간격으로 종종 몰래 꼭대기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 칼 구스타프 융, 조성기 옮김, <기억, 꿈, 사상>, 김영사, 210쪽.
융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 인형을 숨겨놓고 비밀스러운 편지를 써서 인형에게 전달하는 자기만의 의식을 주관했다. 어린 융이 고안해 낸 비밀문자로 쓴 편지였다. 어른들은 모르는 자기만의 이야기. 이 인형에게 이 비밀문서를 전달하면 아무도 자기 마음의 비밀을 알 수 없되 자신은 그 비밀을 무사히 보관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 은밀한 안도감이 어린 융의 불안한 마음에 기이한 평화를 가져다준다. 소년은 이 편지들이 인형에게 일종의 도서관이었다고 믿는다. 융의 ‘의식’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들을 융의 ‘무의식’에 전달해주고 싶은 본능이었을 것이다. 누구의 손에도 닿을 수 없는 무언가를 소유했다는 데서 오는 새로운 자신감과 만족감만으로도 어린 융에게는 엄청난 힘이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결코 누설되어서는 안 되는 신성불가침의 비밀이었다. 왜냐하면 나의 자신감이 그 비밀에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싯다르타의 무의식 또한 자신도 모르는 분신을 키운다. 싯다르타는 꿈속에서 작은 새를 만나고, 그것이 카밀라가 키우고 있는 아름다운 새임을 알게 된다. 꿈속에서 그 새는 어느새 죽어 있었다. 그 작고 아름다운 새가 죽어있다는 사실에, 꿈속의 싯다르타는 놀라지 않는다. 그런데꿈 속의 자신이 죽어버린 그 새를 땅바닥에 휙 내던지는 순간 그 새가 더 이상 자신 곁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제야 싯다르타는 설명할 수 없는 아픔을 느낀다. 자신의 분신처럼 소중히 다루어오던 그 무엇, 내면의 요새에 보물처럼 보관해두고 아끼고 사랑해오던 그 무엇을 잃어버린 느낌. 그것은 싯다르타가 부자가 되기 위해, 세속의 광풍에 휩쓸리던 시간동안에 미처 돌보지 못한 또 다른 자아였다.
바로 그날 밤 싯다르타는 자신의 정원을 떠났으며, 그 도시를 떠났으며, 그 후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 카말라는 싯다르타가 사라져버렸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일을 항상 기다려오지 않았던가? 그는 사문이며, 집 없는 떠돌이이며, 순례자가 아니던가? 그녀는 그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이런 사실을 가장 뼈저리게 실감하였다. 그녀는, 이 상실의 고통 한가운데서도, 자기가 그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를 정말 그토록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애정으로 자기 가슴에다 끌어안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그리고 자신을 다시 한 번 그토록 남김없이 그에게 바쳐서 자신을 온통 독차지하도록 하였으며 자신의 머릿속이 온통 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사실을 그나마 다행스럽게 여겼다.
- 헤르만 헤세, 박병덕 옮김, <싯다르타>, 민음사, 1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