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vs 『1984』 ①
과학의 유토피아, 욕망의 디스토피아
“계급이 낮으면 낮을수록 산소를 조금 공급하는 것입니다” 하고 포스터 군이 말했다. 그렇게 되면
제일 먼저 침범당하는 기관은 두뇌였다. 다음에는 골격이다. 통상 산소 공급량의 70퍼센트만
공급하면 난쟁이가 된다. 70퍼센트 이하로 만들면 눈이 없는 괴물이 된다. (……) 엡실론 계급의
지능은 10세에 성숙되지만 그 육체는 18세까지 활동에 적합하지 않다. 그동안의 기간은
쓸데없는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육체적 성장이, 이를테면 암소의 성장처럼
속성화될 수 있다면 사회에 얼마나 막대한 절약이 될 것인가.
-올더스 헉슬리, 이덕형 옮김, 『멋진 신세계』, 문예출판사, 1998, 21~22쪽.
이곳에서는 모든 종류의 ‘성가심’이 제거된다.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모든 감정, 의무, 관계들로부터 자유로운 곳. 오직 지금, 현재의 ‘만족’만이 중요하다. 고통스러운 출산도 없고, 부모와 자식 간의 끈끈한 집착도 없으며, 사랑한다는 이유로 서로 간섭하고 신경 쓰는 일도 없다.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모든 요소들을 과학적으로 제거한 이곳.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바로 과학이 모든 가치를 압도한 세계, 효율성이 모든 가치를 제압한 미래 사회를 그려낸다. 이 세계에서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고통이 다가오려는 기미가 보일 때마다 ‘소마’를 마신다. 소마를 들이키면 모든 걱정, 질투, 우울, 분노, 절망이 사라진다. 오직 지금, 여기, 살아있음의 순간적 만족이 의식을 지배한다. 그렇다. 이 세계에는 ‘과거’가 없다. 역사도 없다. 그리하여 문학도, 예술도, 철학도 존재하지 않는다.
포드 기원 632년. ‘포드주의’가 유일신처럼 숭배되는 이 ‘멋진 신세계’에서 삭제되는 것은 바로 인간의 개별성이다. 포드주의적 대량생산의 원칙이 마침내 생물학에 응용되어, 수백만의 일란성 쌍생아를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곳의 지배자들이 가장 혐오하는 것은 바로 ‘우연’이나 ‘자율성’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개개인의 차이와 다양한 욕망의 가능성이 철저히 통제되는 곳. 이곳에서는 기계나 상품의 품질을 평가하는 것처럼 인간의 능력을 평가한다. 엄마와 아빠의 사랑으로 태어난 자식은 ‘야만’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지극히 예외적인 ‘야만인 보호구역’에서만 그런 ‘원시적’ 형태를 볼 수 있을 뿐이다. 이곳은 유전자 등급에 따라 계급이 철저히 구분되는 곳이다. 계급에 따라 산소 공급을 조절하여, 계급이 낮으면 ‘하등의 신체’를 갖게 되는 것이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도 지배자들이 가장 꺼려하는 것은 피지배자들의 ‘연대’다. 지배자들은 모든 종류의 ‘네트워크’를 혐오하기 때문에, 언어조차 화자의 머릿속에 최소한의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신어(Newspeak)로 대체된다. 신어는 창조적인 사유, 이단적인 사유 자체를 가로막는 매우 단순하고 생략적인 언어다. 『멋진 신세계』에서 자유로운 성행위는 권장되고 한 사람과의 지속적인 성관계가 금지되는 반면, 『1984』에서는 아예 성적 충동 자체가 심각한 위협이 된다. 『1984』에서는 아예 오르가슴 자체를 없애려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될 정도다. 언어의 다양성뿐 아니라 성적 다양성이 철저히 억압되는 사회. 이런 철저한 통제 시스템은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부정하고, 궁극적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따스한 ‘연대를 가로막기 위한 것이다.
아무리 조용한 속삭임일지라도 윈스턴이 내는 모든 소리는 텔레스크린에 의해 여지없이 포착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윈스턴이 텔레스크린의 시계(視界) 안에 들어와 있는 한 그의 모든 행동이 그들의 감시 대상이 되었다. 물론 감시를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느 순간에 감시를 당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사상경찰이 누구를, 얼마나 자주 감시하는지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들이 늘 모든 사람을 감시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찌 되었든 그들은 텔레스크린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언제든지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언제든지 도청당할 수 있고 언제든지 감시당할 수 있다고 간주하며 살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조지 오웰, 이기한 옮김, 『1984』,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