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vs 『1984』 ②
금지된 애착, 억압된 낭만
가정은 물질적으로 누추할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누추했다. 물질적인 관점으로 보면
그것은 토끼집과 같았다. 지독히 협소하고 밀집 생활의 마찰로 열기가 가득 차고 감정이
새어나왔다. 가족집단의 성원들 사이에는 질식시킬 것 같은 친밀감이 있었고 위험하기
짝이 없고 광적이고 추잡한 관계가 있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광적으로 애지중지했다.
(물론 자신이 낳은 자식을 말한다) 마치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를 품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어미고양이는 이야기를 할 줄 알았다.
―올더스 헉슬리, 이덕형 옮김, 『멋진 신세계』, 1998, 49쪽.
가족을 혐오하는 사람들, 사랑을 혐오하는 사람들, 우정을 혐오하는 사람들. 멋진 신세계의 구성원들은 그렇게 모든 종류의 ‘애착’을 거부한다.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것. 즉 사랑하고 아끼고 기다리고 보살피는 그 모든 ‘관계 맺음’의 행위가 금지된다. 육체적 향락은 무한 리필되지만, 정서적 만족은 지극히 제한된다. 무엇이든 몰두하거나 오래 끄는 것은 금지된다. 그것은 구성원들의 시간 감각을 오직 ‘지금 현재’에 묶어놓기 위한 전략이다. 어머니, 일부일처제, 낭만이 금지된 사회. 우리 아기, 우리 엄마, 우리 가족을 지키기 위해 집단의 안녕이 위협받는 것을 참지 못하는 이 사회에서 출산은 물론 ‘가정’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개인은 철저히 시스템의 일분자로 축소된다.
이런 사회에도 ‘변종’이 있다. 이 멋진 신세계의 골칫거리다. 유전자 변형과 각종 화학요법으로도 ‘제거’되지 않은 이 성가신 변종들. 그 중심에 ‘버나드 마르크스’가 있다. 그는 자신이 속한 높은 계급의 사람들에 비해 체구가 현저히 작다. 두뇌는 비상하지만 멋진 신세계의 구성 원리에 심각한 회의를 품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는 멋진 신세계의 육체중심적인 연애 방식에 신물이 났다. 쾌락만이 존재할 뿐 서로에 대해 아무 것도 알 수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들의 자동인형 같은 몸짓에 구토를 느낀다. 그런 그의 눈에 아름다운 여자, 레니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레니나는 얼핏 보기에 자기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 역시 이 지극히 현재중심적인 삶, 쾌락중심적인 연애에 권태를 느낀다.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쁘거나 고통이 엄습해오기 전에 ‘소마’를 마셔버리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된다. 그러나 버나드 마르크스는 멋진 신세계의 만병통치약, 소마를 걸핏하면 거부한다. 그는 소마가 약속하는 거짓 구원의 세계, 멋진 신세계가 약속하는 거짓 평화의 세계의 허점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1984』의 윈스턴도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뭔가 ‘문제’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는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에게서 이 사회의 심각한 문제점을 발견한다. 전쟁 포로로 잡혀온 병사를 교수형에 처한다는 소식을 듣고, “교수형 보고 싶어! 교수형 보고 싶어!”라고 외치는 아이들. 아이들은 어른들이 창조한 잔인한 퍼포먼스를 아무런 비판 의식 없이 ‘놀이’로 즐긴다. 아이들에게 누군가가 교수형 당하는 끔찍한 장면은 전쟁놀이나 술래잡기처럼 ‘당연한’ 놀이가 되어 있다. 윈스턴은 이 아이들이 자라서 ‘부모의 감시자’로 변모할 것을 생각하니 더욱 끔찍해진다. 아이들은 부모가 혹시나 ‘이단의 조짐’을 보이지 않는지, 부모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존재로 훈육 받게 되는 것이다. ‘빅 브라더 숭배’와 관련된 모든 행위들이 아이들에게 장난감이자 놀이의 대상이 되는 곳. 이곳이야말로 조지 오웰이 상상한 끔찍한 미래 사회의 디스토피아였다.
“아저씨는 왜 교수형 구경을 안 가요?”
사내놈이 우렁찬 목소리로 물었다.
“교수형 보고 싶어! 교수형 보고 싶어!”
계집아이는 깡충깡충 뛰어다니면서 되풀이해서 징징댔다.
전쟁 포로로 잡혀 온 유라시아 사병 몇 명이 그날 저녁 공원에서 교수형에 처해지기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윈스턴은 기억했다. 그런 일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일어나는데 인기 있는 구경거리였다. 아이들은 언제나 구경을 가자고 졸라댔다.
(……) 윈스턴은 저런 아이들을 키우느라 공포의 삶을 살아야 하는 그 여인이 한없이 가련하게 느껴졌다. 1~3년 안에 저 아이들은 이단의 조짐을 포착하기 위해 자기네 어머니의 일거수일투족을 밤낮으로 감시하게 될 것이다. 요사이 아이들은 모두 끔찍했다. 가장 경악스러운 것은 스파이단과 같은 단체를 통해 이런 아이들이 제도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꼬마 야만인들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 아이들은 당은 물로 당과 관련된 모든 것을 숭배했다. 노래, 행진, 깃발, 하이킹, 모의총 훈련, 슬로건 외치기, 빅 브라더 숭배……. 이 모든 것이 그들에게는 훌륭한 놀잇거리였다.
―조지 오웰, 이기한 옮김, 『1984』,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54~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