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vs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④
개츠비 vs 블랑시: 우리의 환상은 당신의 현실보다 아름답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스탠리가 내 사형집행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나를 파멸시킬 거예요.”
―테네시 윌리엄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중에서
사람의 일생은 천천히 무너져 내리는 과정이다. (……) 우리가 어떻게 손써볼 수 있는 시간이 지나버릴 때까지, 혹은 자신이 어떤 면에서는 다시는 예전만큼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으리라는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스콧 피츠제럴드, 「무너져 내리다」 중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블랑시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낙원이라는 이상향으로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실제로 허락된 여행은 ‘철 지난 낭만’의 전차를 탄 채 ‘섬뜩한 현실’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끝없이 이어지는 고통스런 여행이었다. 가족들의 연이은 질병과 죽음으로 전재산을 탕진한 블랑시는 마지막 남은 희망의 별빛, 여동생 스텔라를 향해 구원의 손길을 요청하러 온 것이다. 그러나 스텔라는 ‘벨 리브’로 상징되는 낭만적 순수의 세계에서, ‘스탠리’로 상징되는 세속적이고 속물적인 세계로 옮겨간 뒤였다. 스텔라는 우아하고 고고한 ‘벨 리브’의 전통적 분위기보다 근육질의 마초성과 육체적 흥분으로 가득한 ‘스탠리’의 말초적 욕망의 세계에 매혹된다.
이미 스탠리와의 행복한 결혼생활에 푹 빠진 스텔라에게 블랑시의 갑작스런 방문은 결코 달갑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블랑시가 대저택 ‘벨 리브’를 잃어버렸다는 소식을 듣자 스텔라는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스텔라보다 더욱 실망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남편 스탠리였다. 스탠리는 마치 ‘벨 리브’라는 거대한 재산을 처형 블랑시에게 잠시 위탁해두기라도 한 것처럼, 졸렬한 탐욕의 시선을 감추지 못한다. “루이지애나주에는 나폴레옹 법전이라는 게 있는데, 여기에 따르면 마누라 소유는 남편 소유이기도 하다 이거야.” 그는 처형의 재산이 마치 원래부터 자신의 재산이었던 양, 자신의 부동산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행패를 부린다. 그는 블랑시의 소지품까지 하나하나 뒤져가며 값나가는 물건이라도 남아 있을까 전전긍긍한다.
얼마 전 임신한 스텔라의 비좁은 방에 얹혀살게 된 블랑시는 빨리 누군가와 결혼하여 스탠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자신의 유일한 탈출구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남편의 죽음을 둘러싼 끔찍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블랑시는 극심한 신경쇠약에 시달리며 ‘벨 리브’에서의 아름다운 시절에 집착한다. 병적으로 목욕을 즐기는 블랑시. 그녀는 아무리 씻어내도 없어지지 않는 죽음의 냄새를 지워내기 위해, 욕조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 모든 악몽의 기억을 날려 보내기 위해, 목욕에 집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자신에게 정말로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는 현실을 믿을 수 없는 블랑시. 스텔라라는 마지막 희망의 별빛조차 스러지자 그녀는 정말 ‘벨 리브’로 상징되는 환상적 노스탤지어에 더욱 매달린다. 잃어버린 과거를 향한 시대착오적 노스탤지어만이 그녀를 지탱하는 연약한 정체성이 된 것이다. 아름답고 순수한 블랑시의 진면목을 찾기 위해서라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낙원으로 갈 것이 아니라, 노스탤지어라는 기차를 타고 이제는 사라져버린 벨 리브에 가야 할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무형의 재산’이 이토록 많은데 자신이 이제 그저 ‘가난한 여자’로 불려 야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
“세련되고 지성과 교양을 갖춘 여자는 남자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줄 수 있죠. 나는 그런 것들을 제공할 수 있어요. 그런 것들은 사라지는 게 아니예요. 육체적 아름다움은 사라지죠. 순간적이죠. 하지만 마음의 아름다움과 영혼의 풍요로움 그리고 가슴속 부드러움은(……) 나는 그런 것들을 다 가지고 있어요. 그런 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더 증폭되죠! (……) 내가 가난한 여자라고 불려야만 하다니 정말 이상하죠! 내 가슴속에 이런 보물들이 간직되어 있는데요.”
블랑시의 마음속에 간직된 온갖 세련된 교양과 아름다운 예술의 컬렉션을 펼쳐 보여도 그녀의 주변에는 아무도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주는 이가 없다. 개츠비 또한 마찬가지다. 그의 마음속에 간직된 아름다움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추억의 공유자였던 데이지조차도 야만적 마초성을 자랑하는 남편 톰이 제공하는 안락한 물질적 세계에 만족한다. 다행히 개츠비에게는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친구, 닉이 있다. 하지만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나고 자라난 원조 모범생 닉의 눈에는 개츠비가 난해한 상형문자처럼 해독하기 어려운 신비다.
개츠비는 ‘돈’만 있다면 데이지와의 추억을 완전히 복원할 수 있다고, 데이지를 찾을 수도 있다고 믿었다. 개츠비는 자신이 완전히 재현할 수 있다고 믿었던, 잃어버린 아름다움이 창조되는 순간을 닉에게 묘사해준다. 데이지와 개츠비의 첫 키스는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간직된 ‘잃어버린 시간’을 상기시킨다. 개츠비의 회상과 닉의 편집과 피츠제럴드의 묘사를 거쳐 우리에게 전달되는 아름다움은 원천적으로 복원 불가능한, 오직 개츠비의 마음속에서만 유효한 아름다움이다.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은 모든 아름다운 찰나의 순간이 지닌 비극의 숙명이기도 하다. 사라져야만 비로소 아름답다는 것, 사라져야만 비로소 기억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미래와 화해할 수 없다는 것. 우리 생의 가장 아름다운 한순간들은 소중하지만, 그 추억에 사로잡힌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잃어버려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추억의 비극적 아름다움을 개츠비는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데이지의 하얀 얼굴이 그의 얼굴로 다가오자 그의 심장이 더 빨리 뛰었다. 이 아가씨에게 키스하고 곧 사라져갈 그녀의 숨결에 자신의 형언할 수 없는 상상을 영원히 맺어줄 때, 그의 마음은 신의 마음처럼 결코 다시 뛰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잠시 동안 별에 부딪혀 나는 소리굽쇠의 소리를 좀더 들으며 기다렸다. 그런 다음 그녀에게 키스했다. 그의 입술이 닿자 그녀가 그를 위해서 꽃처럼 피어올랐으며 상상이 실현되었다. 그의 모든 이야기 속에서, 그의 지독한 감상주의에서조차, 무언가 오래전에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파악하기 어려운 리듬, 잃어버린 말들의 파편이 생각났다.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펭귄클래식 코리아, 204~2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