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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법」 제34조제1항은 ‘공립 공공도서관의 관장은 사서직으로 임명한다’다. 왜 법은 공립 공공도서관 관장은 사서직으로 임명하도록 했을까? 현 조항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1990년 문화부 독립 신설로 도서관정책을 문교부에서 문화부로 이관하면서 새롭게 제정된 「도서관진흥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전 법을 폐기하고 새롭게 도서관 기본법으로 제정된 이 법은 문화 부문으로 자리매김한 도서관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혁신적 조치를 반영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서직 중심의 도서관 운영을 보장하기 위한 것들이다.
“오늘날 고도의 지식·정보화사회의 도래에 따라 도서관의 기능이 전문화되고 그 영역이 크게 확장되었기 때문에 도서관을 운영하는 전문인력의 확보가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전에는 국·공립도서관에 전문사서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였고 이들에 대한 대우가 미흡하여 우수인력을 끌어들이지 못한 실정이었다. 특히 도서관장을 비롯한 관리직은 거의 모두 비전문 행정관료들이 차지함으로써 도서관 운영의 비효율성은 물론 전문사서들의 사기 저하를 초래하였다. 도서관진흥법에서는 이와 같은 점을 감안하여 국·공립공공도서관의 관장은 사서직으로 보직하도록 강제 규정을 둠으로써 도서관학계를 비롯한 관련 단체의 숙원을 입법에 반영하였다. 다만, 당장은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의 관장 직급에 상당하는 사서직원의 현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종전처럼 행정직으로도 보할 수 있도록 융통성을 부여하였다제24조제1항 및 부칙 제4조.”(조정찬, 도서관진흥법 해설)
여기서 이야기한 ‘당분간’은 1996년 12월 31일까지였고, 따라서 1997년 1월 1일자로 전면 시행되어야 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사서직 관장을 보임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자 행정부문에서는 법을 실행하기보다는 이를 저지하거나 무력화하기 위해 도서관의 명칭을 변경하거나 조직 개편, 조례에서의 의도적 회피 등으로 맞섰다.
이렇게 1994년부터 공립 공공도서관 관장의 사서직 임명 조항이 생기고 지금까지 무려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렇다면 과연 모든 공립 공공도서관 관장은 사서직으로 임명해서 지역 주민을 위한 전문적인 공공도서관 서비스를 도서관전문가인 사서들이 책임지게 되었을까? 문제는 전혀 그러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안타깝다.
도서관과 관련해서 많은 현안과 이슈가 있음에도 이번에 사서직 관장 문제를 꺼내 든 것은 최근 「경인일보」의 관련 보도 때문이다. 2023년 9월 19일, 김성호 기자는 “도서관장 10명 중 7명 ‘무자격’... 인천 사서직 비율 ;전국 꼴찌”라는 기사를 통해 인천지역 공공도서관 사서직 관장의 70%가 사서자격증이 없는, 즉 법에 따른 사서직이 아닌 ’무자격‘ 관장이라는 것을 지적했다. 국가도서관통계시스템에서 전국 17개 시·도 공립 공공도서관의 사서직 관장 임명 여부를 확인하니 전국 평균은 62.3%다. 1997년 시행 당시보다야 배치 비율이 높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공립 공공도서관의 37.7%는 사서직이 아닌 관장이 임명되어 있다는 사실은 문제다. 더 큰 문제는 17개 시·도간 배치율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가장 비율이 높은 대전광역시는 96.0%인 반면 인천광역시는 겨우 28.8%다. 기초자치단체로까지 확대해서 살펴보면 지역 간 격차는 더욱 클 것이라 짐작된다.
물론 이전에도 잊을만하면 이 이슈에 대한 기사가 이곳저곳에서 보도되기는 했다. 그럼에도 대부분, 특히 도서관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어 법 조항을 잘 알고 시행해야 하는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여러 지자체는 늘 관장에 보임할 사서직원이 없다거나 공무원 구조상 소수직렬인 사서직을 기관장으로 임명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등의 이유를 대고 있지만, 앞서 본 바와 같이 배치율이 90%를 넘고 있는 지자체도 여럿이다. 그렇다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설마 배치하기 싫은 것은 아닌가?
공공도서관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서비스 수준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관장을 임명하는 일에 있어, 같은 세금을 사용해서 공무원을 임명하는 것이라면 행정직원보다는 도서관전문가인 사서직원을 임명하는 것이 시민 입장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러니 이 일을 더 미룰 핑계를 대지 말고 적극 실천해 시민들에게 더 나은 도서관 서비스를 제공하는 책무를 사서직 관장이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도서관정책과 관련한 각 부문들의 강력한 대응과 조치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도서관 행정을 담당하고 있는 최일선 지자체장과 담당자들의 인식 전환과 법 준수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미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도서관 현장에 사서직원도 많아졌고, 매년 국가자격으로서의 사서자격증을 부여받는 사서가 수천 명씩 배출되고 있는 지금, 더이상 사서직 관장을 미룰 이유가 없다. 행정가라면 법을 준수하고자 하는 노력부터 해야 하지 않겠는가.
국회도 적극 행동에 나서야 한다. 30년 전 국회에서 만든 「도서관진흥법」의 이 조항을 여러 차례 개정하고 새로 「도서관법」이 제정하는 동안에도 그대로 유지한 것은 그 의미와 중요성이 계속 확인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국회는 법의 의도와 내용이 제대로 시행되는지 여부를 철저히 챙겨보길 바란다. 왜 법 조항대로 시행되지 않는지 꼼꼼하게 알아보고 시행을 위해 어떤 추가적인 법적 또는 행정적 조치가 필요한지 검토해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마침 곧 행정감사가 시작된다. 이 내용을 심각하게 논의해 주길 기대한다.
도서관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는 더 적극 나서야 한다. 「경인일보」 기사에 따르면 「도서관법」이 “처벌법이 아니다 보니 어려움이 있다. 해당 사안을 인지하고 있고, 지속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올해부터 도서관법을 준수하지 않는 경우 각종 포상이나 공모사업에 제약을 줄 예정이다. 무엇보다 스스로 바꿔나가겠다는 지자체 의자가 중요하다”고 관계자가 말했다고 한다. 물론 지자체 의지도 중요하지만 정책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의지는 더 중요하지 않을까? 문화체육관광부가 이제라도 구체적이고 실효적 조치를 시행한다고 하니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번에는 꼭 실행해 확실하게 책무 수행 의지를 보여주길 바란다. 5년 단위 ‘도서관발전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하면서 매년 각 지자체의 당해연도 실행계획과 결과를 보고받는 국가도서관위원회도 사서직 관장의 문제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다만 지금 위원회 구성이 1년도 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서 걱정이다.
끝으로 도서관 현장과 도서관계도 강력한 대응을 해야 한다. 현장 사서직 중 관장으로 임명될 자격을 갖춘 사서직원도 충분히 있으리라 믿는다. 그들 스스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시대적, 직업적 소명을 분명하게 주장할 필요가 있다. 도서관계도 관장의 역할을 수행할 사서직원이나 사서자격증 소지자를 대상으로 관장직에 필요한 역량을 충실히 갖추도록 교육 등의 활동을 통해 사서직 관장으로 임명할 자원이 충분히 있음을 알려야 한다. 그저 법대로 하라고 하는 외침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행동하는 도서관계가 되길 바란다.
이번 기회에 이 사서직 관장 임명과 관련해서 그동안의 과정에서의 현황과 논의 등을 살펴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일을 누가 할까?
★「한국독서교육신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