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서 첫봄을 맞았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보랏빛 가로수 꽃길이었습니다. 벚꽃 가로수 길이 화사하고 화려하다면 이 가로수 꽃길은 신비롭고 몽환적이었죠. 한적한 주택가에서 가지가 맞닿아 아치를 이루고 있는 보랏빛 꽃 터널 속으로 들어가면 영화의 한 장면처럼 환상적이었습니다. 제가 살던 아파트의 맞은편 정원에도 이 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분수대에 물을 마시러 온 벌새들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꽃이라 무슨 나무인지 궁금했지만, 꽃이나 나무에 관심을 가진 친구가 주변에 없더군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서 나무 이름이 ‘자카란다Jacaranda’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스페인어로는 ‘하카란다’랍니다. 캘리포니아나 남미, 호주나 파키스탄처럼 열대나 아열대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라고 합니다.
LA의 자카란다 가로수. Credit: @jasonemerofficial / IG |
자카란다 가로수 길처럼 특정한 나라나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아래 그림들이 그런 것 같아요. 이런 형태의 그림은 다른 곳에서도 아주 드물게 볼 수 있지만, 주로 이탈리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더군요. 우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이런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신기했습니다. 벽화도 원래 있던 자리에서 떼어내서 액자에 넣거나 벽에 붙여 전시될 수 있다는 것을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처음 알았으니까요. 작은 조각부터 크게는 벽 전체가, 더 크게는 방 하나가 통째로 전시되고 있더군요. 박물관과 미술관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성당에서, 군데군데, 아니면 뭉텅뭉텅 그림이 떨어져 나간 이런 작품들과 마주쳤습니다. 이탈리아의 거의 모든 성당이 이런 그림의 전시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아레초Arezzo의 산 프란치스코San Francesco 성당에서는 보존 상태가 양호한 작품부터 심각하게 훼손된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이 있더군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 1415~1492의 『참 십자가의 역사The History of the True Cross』 1452~1466 연작은 보존 상태가 아주 좋은 편에 속하고, 루카 시뇨렐리Luca Signorelli, 1470~1479의 『수태고지』1470~1479도 꽤 양호한 편이었습니다. 반면에, 성모 마리아의 얼굴만 남아 있는 로렌티노 단드레아Lorentino d’Andrea, 1430~1506의 『자비의 성모Madonna della misericordia e vita di san Bernardino』1463는 무슨 그림인지 알아보기도 힘들었죠.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이탈리아어: Basilica di Santa Croce, 성 십자가 성당 역시 여러 개의 작은 부속 예배당과 벽감에 수많은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6(?)~1337의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 연작들 역시 아레초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 있는 『자비의 성모』 못지않게 훼손이 심각하더군요.
이 두 성당뿐만 아니라 여러 성당에서 심하게 훼손된 이런 그림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문화 충격이었죠. ‘아니, 왜 저 그림은 저렇게 떨어져 나간 거야? 어디에, 어떻게 그렸길래 저렇게 뭉텅이로 떨어져 나간 거지? 떨어져 나간 부분은 왜 또 저렇게 평평한 거야?’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이탈리아어: Creazione di Adamo』1508~1512나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이탈리아어: Scuola di Atene』1510~1511처럼 그림이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면 ‘아, 벽에 그린 그림이구나’라고 무심하게 그냥 지나쳤을지 모릅니다. 남아 있는 것보다 떨어져 나간 부분이 더 많은 그림을 보면서 어디에, 어떻게 그린 그림인지 오히려 더 궁금해지더군요. 아래 그림들을 보면서 어떤 기법으로 그린 그림인지, 그림의 재료는 무엇인지 한 번 추측해 보세요. 밑줄 친 부분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요?
루카 시뇨렐리, 『수태고지』, 1470~1479년. ____________. 성 프란치스코 성당, 아레초. |
로렌티노 단드레아, 『자비의 성모』, 1463년. ___________. 성 프란치스코 성당, 아레초. |
조토 디 본도네, 『성 프란치스코의 승천』, 1325~1328년. __________, 280 × 450 cm. 산타 크로체 성당 바르디 예배당, 피렌체. |
1. 캔버스에 유화
2. 패널에 템페라
3. 바위에 채색
4. 비단에 채색
5. 종이에 채색
6. 모자이크
7. 타일
8. 프레스코
9. 벽돌에 채색
앞글, 「이 그림은 어디에 그린 거예요? ①」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쉽게 찾으셨으리라 믿습니다. 캔버스나 패널, 바위, 비단, 종이, 벽돌에 그림을 그렸다면 절대 저런 모양으로 그림이 떨어져 나가진 않았을 거예요. 모자이크나 타일이라면 저렇게 덩어리로 깨끗하게 떨어지진 않았겠죠? 가능성이 낮은 그림 재료를 차례차례 제외하고 보니 프레스코만 남았네요. 맞습니다. 위 그림은 모두 프레스코입니다. 프레스코fresco는 ‘방금 칠한 회벽이a fresco’ 마르기 전에 그 위에 재빨리 그림을 그리는 방법입니다. 안료가 젖은 회벽灰壁: 석회나 백토, 가는 모래 등을 섞어 반죽해서 벽에 바른 벽 속으로 스며들었다가 벽이 마르면 물감이 벽의 일부가 되기 때문에, 벽이 떨어지지 않는 한 채색이 유지된다고 합니다. 프레스코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부드러운 색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안료가 젖은 회벽에 흡수될 때 광택이 사라져서 프레스코에는 특유의 차분한muted 색감이 있습니다. 색감이 쨍하니 강렬하지 않고 이렇게 부드럽고 차분할 때 보통 영어에서는 ‘muted’라는 단어를 쓰더군요.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Santa Maria Novella 성당에는 직선 원근법을 사용한 최초의 작품 중 하나로 간주되는 마사초Masaccio, 1401~1428의 『삼위일체이탈리아어: Santa Trinità』1426~1428가 있습니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붉은색이 많아서 그림이 살짝 들떠 보이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전혀 아니더군요. 제가 지금까지 본 빨간색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빨간색 10위 안에 들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럽고 예쁜 빨강이었습니다.
마사초, 『삼위일체』, 1426~1428년. 프레스코, 667 × 317 cm.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피렌체. |
프레스코가 캔버스에 밀려난 지 이미 몇백 년이 지났지만 프레스코의 깊은 색감을 살려내려는 화가들이 우리나라에도 있더군요. 몇 년 전 원주의 뮤지엄 산에 갔을 때 최근에 제작된 프레스코 작품이 몇 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프레스코의 부드럽고 깊은 색감은 젖은 회벽에 천연 안료를 물에 개어 그리는 기법이나 재료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회벽에 물감이 스며들었다가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려면 긴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요. 소금물에 담가놓은 메주가 깊은 맛을 내는 간장이나 된장이 되려면 오랫동안 시간의 뜸을 들여야 하는 것처럼요. 뮤지엄 산에서 본 프레스코 작품들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시간이 스며들어 깊고 부드러운 색감을 띠게 되겠죠? 그런데 그때는 제가 이 세상에 없을 테니 확인해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BBC의 『인문학과 과학 동영상들Films for Humanities & Sciences』 중 「바탕 표면Surfaces」2003을 보다 보니 회벽을 바르는 과정이 두 단계로 이루어져 있더군요. 먼저, 조금 거친 모래에 석회를 섞어 반죽을 만든 다음 벽에 바릅니다. 이 첫 번째 회벽 층이 초지Arriccio; 밑칠입니다. 이 초지에 고기를 재우거나 생선을 굽기 전에 칼집을 내는 것처럼 미장 도구로 회벽 표면에 일부러 흠집을 내주더군요. 두 번째 바르는 석회층이 표면에 잘 발려서 떨어지지 않도록요. 두 번째 회벽은 석회와 고운 모래를 섞어서 만듭니다. 표면이 매끈해야 물감이 잘 발릴 테니까요. 이 두 번째 회벽이 화지Intonaco입니다. 회벽이 초지와 화지, 두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는 거죠. 맨 위 세 그림에서는 위에 바른 화지가 떨어져 나가고 초지만 남아 있습니다. 화지가 그렇게 두껍지는 않죠? 화지가 떨어져 나가도 초지가 남아 있기 때문에 움푹 패거나 갈라진 곳 없이 일정하게 매끈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어쨌든, 석회벽 준비가 끝나고 나면 그 위에 안료 가루를 묻힌 실을 이용해서 일정한 간격으로 눈금을 그려 준다고 합니다. 밑그림을 회벽에 옮겨 그리기 쉽게 모눈을 이용하는 거죠. 젖은 회벽에 그림을 신속하게 그리는 또 다른 방법은 벽 크기와 비슷한 보드 지에 밑그림을 그린 다음 송곳으로 윤곽선을 따라 구멍을 뚫는 겁니다. 구멍 뚫린 보드 지를 회벽에 대고 숯가루를 헝겊에 싸서 두드려 주면 회벽에 검은 점들이 생겨나는 거죠. 이 점들을 이어 주면 밑그림의 윤곽선이 완성된다고 합니다. 이런 방법을 사용하면 회벽이 마르기 전에 채색 작업을 빨리 끝낼 수 있는 거죠. 간혹 프레스코에 이런 검은 점과 윤곽선이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래 첫 사진은 피에로 델라 프렌체스카의 『참 십자가』1452~1466 연작 중 『수태고지』의 전체 모습이고, 두 번째 사진은 성모 마리아의 얼굴 부분을 확대한 겁니다. 성모 마리아의 입술 윤곽선과 얼굴 윤곽선에 검은 점들이 보이죠?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수태고지』, 1452~1466년. 프레스코. 성 프란치스코 성당, 아레초. |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수태고지』 중 성모 마리아의 얼굴 부분.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iero_della_Francesca_-_10._Annunciation_%28detail%29_-_WGA17583.jpg 제공. |
회벽이 마르기 전에 재빨리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해서 저는 한 벽면에 회벽을 가득 칠해 놓은 다음 하루 만에 그림을 그려 넣어야 하는 줄 알았어요. 실제로는 열두 시간 정도면 회벽이 마른다고 하네요. 그래서 프레스코를 볼 때마다 ‘저 그림을 하루 만에 그리다니! 저게 가능하다고? 수정도 못 할 텐데. 와, 대단한 화가들!’이라며 감탄하곤 했는데 실제로 프레스코 제작과정이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뚝딱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더군요. 하루에 작업할 수 있는 분량만큼만 회벽을 발라놓거나, 밑그림을 먼저 그려 놓고 윤곽선에 맞춰 작업을 끝낸 다음 채색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의 회벽을 약간 경사지게 긁어낸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윤곽선에 맞춰 다시 회벽을 발라서 작업을 이어 나가는 거죠. 전날 그린 그림에 다시 채색하기도 하고요. 하루에 채색 작업을 다 끝마쳐야 하는 건 아니었다 해도 작업 속도가 느린 화가들에게는 프레스코를 그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가 그런 화가 중 한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벽에 석회 반죽을 바르고 그린 그림은 모두 프레스코일까요? 이집트의 왕묘 벽화들도, 폼페이 유적지의 벽화들도, 로마의 빌라 방들에 그려진 벽화들도, 고구려 고분 벽화들도,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1886~1957의 현대적인 벽화, 『알라메다 공원의 일요일 오후의 꿈 스페인어: Sueño de una tarde dominical en la Alameda Central』1946~1947 모두 일반적으로 프레스코라고 불립니다. 그런데 미술관을 발로 뛰어다니다 보니 우리가 흔히 프레스코라고 알고 있던 벽화들이 엄밀한 의미에서 프레스코가 아닌 경우도 있더군요. 프레스코로 알고 있던 작품이 프레스코가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된 첫 번째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최후의 만찬이탈리아어: L’Ultima Cena』1495~1498입니다.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이탈리아어: Chiesa di Santa Maria delle Grazie의 홈페이지에서 『최후의 만찬』 관람 예약을 할 때까지만 해도 저는 『최후의 만찬』이 교회의 식당 벽에 걸려 있는 액자 그림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이나 인터넷에서 봤던 『최후의 만찬』은 식당 문 때문에 잘려 나간 식탁 아랫부분을 안 보이게 처리해 놓은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교회에 들어가서 그림을 보니 예수님의 발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떡하니 문이 자리 잡고 있더군요.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폭격으로 식당 벽이 무너졌지만 『최후의 만찬』과 맞은편 벽에 그려진 조반니 도나토 몬토르파노Giovanni Donato Montorfano, 1460~1502의 프레스코 작품, 『십자가에 못 박힘이탈리아어: Crocifissione』1497은 무사할 수 있었다는 교회 안내 직원의 설명을 들으니 궁금해지더군요.
“지금 이 두 벽에는 아무 그림도 없는데, 폭격 전에는 여기에도 『최후의 만찬』 같은 프레스코가 그려져 있었나요?”
“『최후의 만찬』을 프레스코라고 부르면 안 돼요. 『최후의 만찬』은 프레스코가 아니에요.”
“네? 『최후의 만찬』이 프레스코가 아니라고요?”
“『최후의 만찬』은 젖은 회벽에 그린 ‘부온 프레스코buon fresco: 진짜 프레스코’가 아니라 마른 회벽에 그린 ‘세코secco’입니다.”
『최후의 만찬』과의 만남은 제 무지와 대면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최후의 만찬』이 프레스코라고 배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최후의 만찬』이 프레스코가 아니라 세코랍니다. 간혹 안내 직원의 설명이 틀릴 때도 있기 때문에 집에 돌아와서 열심히 프레스코에 대한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예전에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Stratford upon Avon에 있는 셰익스피어의 생가에 가서 그곳 안내 직원을 따라 이층에 있는 셰익스피어의 부모 침실로 들어갔을 때였습니다. 안내 직원이 다음과 같이 설명해주더군요.
“여기는 셰익스피어의 부모가 썼던 침실입니다. 저기 침대 보이죠? 셰익스피어는 일곱 살 정도까지 저 침대 밑에서 잤답니다. 영어 표현 중에 ‘Sleep tight잘 자라!’가 있습니다. 어원이 뭔지 아세요? 영국에서는 아이가 어릴 때는 부모의 침대 밑에 재웠답니다. 점점 자라면서 몸이 커지면 침대에 꼭 끼어 자게 되는 거죠. 그래서 ‘잘 자라!’는 인사가 ‘Sleep tight!’가 된 겁니다.”
직원의 설명이 재미있고 그럴듯해서 주변 사람들한테 이 이야기를 전해줬습니다. 그런데 한 선배가 이의를 제기하더군요. “그건 아닌 것 같아. 내가 알기로는 예전에는 침대 매트리스가 끈으로 묶여 있었거든. 그래서 자기 전에 이 끈을 팽팽하게 꽉 조여서 잠자리를 평평하게 만들었는데 자다 보면 끈이 느슨해지는 거지. 끈이 ‘타이트’해야 편하게 잘 수 있으니까 ‘Sleep tight!’가 ‘잘 자라!’는 말이 된 거야.” 나중에 사생활의 역사를 다룬 『하우스 스캔들If Walls Could Talk: An Intimate History of the Home』2012이라는 책을 읽다 보니 선배가 해준 설명이 그대로 나와 있더군요. 셰익스피어의 생가를 다시 방문하게 되면 그 안내 직원을 찾아서 이 사실을 알려주려고 합니다. 파란색 안료에 관한 앞글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이탈리아어: Basilica Papale di San Pietro in Vaticano에는 습도 때문에 그림이 아니라 모자이크를 설치했다고 말씀드렸죠? 투어 가이드는 촛불 그을음 때문이라고 조금 다른 이유를 말해주더군요. 집에 돌아와 자료를 찾아보니 『최후의 만찬』이 프레스코가 아니라는 안내 직원의 말이 맞았습니다. 사실, 프레스코를 벽에 그린 그림으로 단순화해서 머릿속에 입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미술 초보에게 젖은 회벽에 그린 그림과 마른 회벽에 그린 그림을 구분하라는 교회 직원의 요구는 무리 아니었을까요?
작품 완성에 오랜 시간이 걸렸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게는 프레스코 기법으로 『최후의 만찬』을 그리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모나리자』만 해도 공식적으로는 1503~1506년에 완성됐다고 알려졌지만, 1517년까지 계속 수정이 이루어졌다고 하니까요. 작업이 느리다는 이유 외에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프레스코를 포기하고 회벽이 마른 다음 채색하는 세코 기법을 선택한 것은 라피스 라줄리Lapis Lazuli나 남동석Azurite으로 만든 파란색 안료가 물에 잘 용해되지 않는다는 기술적인 문제도 있었다고 합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생각해 낸 해결 방법은 회벽이 마른 상태에서, 안료를 물로 개는 대신 화지에 안료가 잘 접착하도록 안료에 달걀노른자를 섞는 템페라tempera 기법을 사용하고, 그림의 일부분에서는 오일을 쓰는 것이었답니다. 그런데 프레스코 기법은 안료가 회벽에 스며들어서 회벽과 함께 굳기 때문에 오랜 시간 변색하지 않고 잘 견디는 반면, 세코 기법을 사용하게 되면 안료가 회벽 안에 깊이 스며들지 못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안료가 벗겨지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것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 생전에요. 물론 위 세 작품처럼 프레스코 그림도 화지가 떨어져 나가서 심각하게 훼손이 일어나기도 하죠. 다만 『최후의 만찬』처럼 안료가 떨어져 나가지는 않는 겁니다. 훼손의 양태가 다른 거죠.
사실, 미술 전문가가 아닌 저 같은 미술 초보에게는 어떤 벽화가 프레스코인지, 세코인지 구분하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냥 똑같이 회벽에 그린 그림으로 보일 뿐이죠. 미술 전문가들은 사전 지식 없이도 회벽화를 육안으로 보자마자 프레스코인지, 세코인지 구분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다음 경우에는 미술 전문가도 구분해내기 어렵지 않을까요? 화가가 한 벽화에 두 가지 기법을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있답니다. 그러니까 프레스코로 전체 벽화를 그린 다음 특정 부분은 세코로 그림을 그리는 거죠. 예를 들어, 조토Giotto di Bondone, 1266/67 혹은 1276~1337가 그린 파도바Padova의 스크로베니 예배당Cappella degli Scrovegni 벽화 중 『동방박사의 경배Adoration of the Magi』는 부온 프레스코지만 파란 하늘과 성모 마리아의 망토는 세코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세코 기법의 단점은 안료가 쉽게 벗겨진다는 거죠. 아래 사진에서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망토를 자세히 봐주세요. 군데군데 파란색이 남아 있죠? 세코로 그려진 배경 하늘에는 그나마 라피스 라줄리가 상당히 많이 남아 있지만, 성모 마리아의 망토와 말 뒤쪽의 옷자락에서는 파란색이 거의 다 벗겨지고 눈곱만큼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안료가 벗겨지는 것을 박락剝落이라고 표현하더군요.
고구려 고분벽화 중 무용총의 『가무배송도歌舞陪送圖』고구려, 4세기 말~5세기 초 역시 젖은 상태의 회벽에 그림을 그리는 프레스코 기법과 다 마른 상태에서 아교를 섞어 그림을 그리는 세코 기법이 병행됐다고 합니다. KBS 『역사스페셜』, 「영상복원-무용총 고구려가 살아난다」2006에서 여러 학자들이 이렇게 주장하더군요. 그런데 고구려 벽화는 프레스코나 세코가 아닌 ‘고구려식 프레스코’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학자들은 고구려 벽화를 회벽화灰壁畫와 석벽화石壁畫로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더군요. 회벽화는 회벽에 채색한 벽화로, 진파리고분의 『사신도四神圖』6세기와 덕흥리고분의 『거가행진도車駕行進圖』408 등이 포함됩니다. 평평하게 깎은 판석 위에 채색한 석벽화에는 강서대묘의 『사신도四神圖』7세기와 안악 3호분의 『행렬도』357 등이 있고요.
무용총 『가무배송도』, 고구려, 4세기 말~5세기 초. 지안시, 지린성. 한국학 중앙 연구원 제공. |
회벽에 그려진 벽화들을 보면서 프레스코인지, 세코인지 구분하는 법을 실습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1층 고구려관에는 디지털 실감 영상관이 있어서 여러 고구려 고분벽화를 디지털로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벽화를 보면서 어느 부분이 프레스코이고, 어느 부분이 세코인지 한 번 구분해 보세요. 저는 회벽화와 석벽화는 간신히 구분할 수 있었지만, 어느 부분이 프레스코이고, 어느 부분이 세코인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더군요. 벽화를 자주 보다 보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잘 구분할 수 있겠죠? 젖은 회벽에 그린 ‘진짜 프레스코buon fresco’인지, 마른 회벽에 그린 ‘프레스코 세코fresco secco 혹은 드라이 프레스코dry fresco’인지 구분하는 것은 미술 전문가들에게 맡겨두고 우리 미술 초보들은 그저 ‘회벽에 그린 벽화’ 정도만 알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어떤 벽화가 ‘부온 프레스코’이고 어떤 벽화가 ‘세코’인지 알고 싶은 분을 위해 연습 문제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다음 중 ‘부온 프레스코’는 어느 것일까요? 답은 두 개입니다. 정답을 맞히신 분은 미술 전문가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조용히 하산하셔도 됩니다.
1. 라스코Lascaux 동굴 벽화
라스코 동굴 벽화. 17,000년 전. 몽티냑, 프랑스.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Lascaux_painting.jpg#/media/File:Lascaux_painting.jpg 제공. |
2. 이집트 고분벽화, 투탕카멘기원전 1334~1325 재위의 왕묘 벽화
3. 인도 아잔타 동굴 벽화, 『파드마파니 보살Bodhisattva Padmapani: 연꽃을 들고 있는 보살』
『파드마파니 보살(연화수 보살)』, 450~500년. 아잔타 석굴 1번 벽화, 마하라쉬트라, 인도.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janta_Padmapani.jpg#/media/File:Ajanta_Padmapani.jpg 제공. |
4. 로마 시대, 폼페이 미스터리 빌라이탈리아어: Villa dei Misteri 벽화
미스터리 빌라의 벽화, 기원전 60년. 폼페이.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Roman_fresco_Villa_dei_Misteri_Pompeii_001.jpg#/media/File:Roman_fresco_Villa_dei_Misteri_Pompeii_001.jpg 제공. |
5. 라벤나 산비탈레 성당Basilica di San Vitale 벽화
산비탈레 성당, 548년. 산비탈레 성당, 라벤나. |
6. 고구려 무용총의 『수렵도』
무용총 『수렵도』, 고구려, 4세기 말~5세기 초. 지안시, 지린성. http://www.dili360.com/cng/article/p5350c3da90df379.htm 제공. |
7. 둔황 막고굴 벽화
막고굴 253호의 실내, 4세기~6세기 북위北魏 시대.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Dunhuang_Mogao_mural_repainted.jpg#/media/File:Dunhuang_Mogao_mural_repainted.jpg 제공. |
8. 바티칸의 라파엘로의 방 벽화, 『아테네 학당』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1509~1511년. 500 × 770 cm. 바티칸 사도궁, 바티칸 시국. |
9. 베르사유궁 내 헤라클레스의 방 천장화
10. 파리 국제 대학 캠퍼스Cité Internationale Universitaire de Paris 내 스위스 학생회관의 로비 벽화
르 코르뷔지에, 『침묵의 그림』, 1948년. 스위스 학생회관, 파리. http://www.fondationsuisse.fr/en/architecture-space/a-living-sculpture/ 제공. |
11. 디에고 리베라, 『알라메다 공원의 일요일 오후의 꿈』 벽화
12. 뱅크시의 그래피티 벽화
뱅크시, 폭격당한 건물 벽에 그린 그래피티, 2022년. 이르핀, 우크라이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Banksy_in_Irpin.jpg#/media/File:Banksy_in_Irpin.jpg 제공. |
프레스코에 대해 살펴보면서 벽화의 종류와 발달 과정도 곁들여 이야기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회벽에 그린 벽화가 아닌 작품들도 포함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문항이 열두 개나 됩니다. 이 중 젖은 회벽에 그린 진짜 프레스코는 4번로마 시대, 폼페이 미스터리 빌라과 8번바티칸의 라파엘로의 방 벽화, 『아테네 학당』뿐입니다. 1번, 5번, 9번, 10번, 12번 벽화는 사실 부온 프레스코도, 세코도 아닙니다. 이 벽화들은 회벽화의 범주에 들 수 없는 거죠. 1번라스코 동굴 벽화은 다 아시는 것처럼 바위 위에 그린 그림이고, 5번산비탈레 성당 벽화은 모자이크입니다. 9번베르사유궁 천장화은 캔버스에 그린 그림이고요. 10번르 코르뷔지에 벽화은 패널 그림이고, 12번뱅크시의 그래피티 벽화은 시멘트벽과 벽돌벽에 그린 그림입니다.
1. 라스코Lascaux 동굴 벽화 - 암석
5. 라벤나 산비탈레 성당Basilica di San Vitale 벽화 - 모자이크
9. 베르사유궁 내 헤라클레스의 방 천장화 – 캔버스
10. 파리 국제 대학 캠퍼스Cité Internationale Universitaire de Paris 내 스위스 학생회관의 로비 벽화 - 패널
12. 뱅크시의 그래피티 벽화 – 시멘트벽과 벽돌벽
다섯 점의 벽화를 제외하고 남은 일곱 점이 회벽에 그린 벽화입니다. 이 중 젖은 회벽에 그린 진짜 프레스코, 4번로마 시대, 폼페이 미스터리 빌라과 8번바티칸의 라파엘로의 방 벽화, 『아테네 학당』을 제외하고 나머지 다섯 벽화는 세코입니다.
2. 이집트 고분벽화, 투탕카멘기원전 1334~1325 재위의 왕묘 벽화 – 세코
3. 인도 아잔타 동굴 벽화, 『파드마파니 보살Bodhisattva Padmapani: 연꽃을 들고 있는 보살』 - 세코
4. 로마 시대, 폼페이 미스터리 빌라이탈리아어: Villa dei Misteri 벽화 – 부온 프레스코
6. 고구려 무용총의 『수렵도』 - 세코
7. 둔황 막고굴 벽화 – 세코
8. 바티칸의 라파엘로의 방 벽화, 『아테네 학당』 - 부온 프레스코
11. 디에고 리베라, 『알라메다 공원의 일요일 오후의 꿈』 벽화 - 세코
9번 베르사유궁의 천장화에 대한 설명을 듣고 ‘벽화를 캔버스에 그린다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벽화를 캔버스에 그린 다음 벽에 부착하는 이런 기법을 마루플라지marouflage라고 부릅니다. 이 마루플라지 기법에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먼저, 프레스코보다는 훼손 가능성이 줄어들죠. 베니스가 바다 위에 건설된 도시다 보니 습기가 많은 데다 바닷물에 침수되는 경우가 많아서 베니스에서는 프레스코 벽화가 쉽게 훼손됐답니다. 이런 프레스코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캔버스에 유화를 그린 다음 벽에 부착하는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베르사유궁에는 벽과 천장에 벽화들이 가득합니다. “벽화mural는 글자 그대로는 ‘벽에 그린 그림’을 가리키지만, 실질적으로는 벽, 천장, 기둥 등 커다란 표면에 직접 인공적으로 그린 예술 작품”「위키백과」을 가리키기 때문에 천장 그림도 벽화인 거죠. 베르사유궁에서 가장 큰 천장화 중 하나가 프랑수아 르무아느François Lemoyne, 1688~1737가 그린 『헤라클레스의 신격화L’apothéose d’Hercule』1731~1736입니다. 여러 개의 캔버스를 바느질로 연결하면 이렇게 큰 캔버스를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베니스 총독궁의 본당에 있는 틴토레토Tintoretto, 1518~1594의 캔버스 벽화, 『천국이탈리아어: Il Paradiso』1588~1594은 높이가 9m에 폭이 22m나 된다고 합니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이탈리아어: Cappella Sistina의 천장에 『천지창조』1508~1512를 그리다 등이 굽고 목디스크에 걸렸다는 일화는 다 알고 계시죠? 아무리 큰 그림이라도 캔버스에 그리면 완성 후 천장에 부착하기 때문에 굳이 고개를 젖히며 고생할 필요가 없는 거죠. 이것이 캔버스 벽화의 또 다른 장점입니다. 그런데 미켈란젤로보다 육체적으로는 덜 힘들었겠지만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르무아느는 이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 일 년 후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캔버스의 세 번째 장점으로는 그림을 여러 번 수정하기가 쉽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만 프레스코의 독특한 색감은 포기해야겠죠?
시멘트벽이나 벽돌벽은 어떨까요? 요즘에는 동네 담벼락에 예쁜 벽화를 그려 놓은 곳이 많더군요. 제가 사는 동네 학교에도 학생들이 담벼락에 예쁜 그림을 그려 놓았습니다. 벽돌담에는 물감으로 그림 그리기가 쉽지 않겠지만 시멘트벽에 페인트로 그려 놓은 그림은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물감 대신 에어로졸 스프레이를 사용하면 시멘트벽이나 벽돌담, 심지어는 쇠 벽에도 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더군요. 유럽이나 미국의 대도시에서는 지하철역이나 선로 주변, 건물 외벽, 골목길 담벼락 같은 곳에 그려 놓은 그림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그림들을 그래피티graffiti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래피티와 벽화mural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더군요. 벽화는 작가가 건물주의 허락을 받고 대가를 받으며 그린 합법적인 그림인 반면, 그래피티는 건물주의 허락 없이 그린 불법 벽화 그림이랍니다. 얼굴 없는 그래피티 화가로 유명한 뱅크시Banksy, 1974~ 는 빠른 시간 안에 작업을 끝내야 하기 때문에 도안대로 오려낸 필름을 붙인 후 물감을 바르는 스텐실 기법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이 글을 쓰던 중에 문경의 대승사大乘寺를 다녀왔는데, 경내를 관람하며 대웅전을 한 바퀴 돌다가 그동안 놓쳤던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만 회벽화가 있는 줄 알았는데 제 생각이 완전히 틀렸더군요. 이탈리아의 성당에서 회벽화인 ‘프레스코’를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 사찰에서도 회벽화가 일상적인 벽화 양식이더군요. 사찰마다 전각 외벽에 부처의 일생이나 보살의 모습, 조사祖師 스님의 일화나 심우도尋牛圖 등이 그려져 있으니까요. ‘프레스코’라는 외국어 용어에 매몰돼 있다 보니 다른 나라에 가서 프레스코 작품을 찾으면서 정작 가까운 곳에 있는 회벽화를 보지 못하는 엄청난 우를 범한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먼저 나무를 엮어 벽 심을 만든 다음, 진흙을 발라 벽면을 구성한다고 합니다. 다음에는 그 위에 백토나 회를 칠해 초지를 만들고요. 초지 위에 다시 회나 황토 등을 바른 다음 채색하면 되는 거죠. 프레스코의 제작과정과 비슷하죠? 물론 사찰 벽화는 마른 회벽 위에 그린 ‘드라이 프레스코’입니다. 혹시 ‘프레스코’나 ‘세코’라는 외국어 용어가 싫으시면 그냥 ‘회벽화’ 정도로 부르면 되지 않을까요?
대승사 대웅전 벽의 『심우도』 중 한 장면, 문경. |
벽화는 암석 위에 그린 동굴 벽화에서 출발해서 고대 로마 시대의 프레스코 벽화를 거쳐 비잔틴 시대의 모자이크 벽화로 이어집니다. 비잔틴 시대를 지나 르네상스 시대에는 프레스코가 부활하죠. 16세기 이후에는 벽화의 재질이 다양해집니다. 드라이 프레스코를 비롯해서 캔버스와 패널, 시멘트벽이나 벽돌벽 등 다양한 재질이 벽화에 이용되는 거죠. 이렇게 벽화의 발전과정을 간단하게 요약하다 보니 르네상스에 이르러 고대 로마 시대의 프레스코가 부활한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프레스코의 부활 역시 르네상스의 한 측면으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요? 르네상스14세기~16세기가 “문화, 예술 전반에 걸친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의 재인식과 재수용을 의미”「위키백과」하니까요. 고대 로마 시대의 미술 기법인 프레스코가 되살아나서 르네상스 시대의 주된 회화 양식으로 확산한 것도 르네상스의 한 흐름이었던 거죠. 물론 이것은 검증 안 된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지금까지 프레스코뿐만 아니라 프레스코와 연관된 벽화의 종류와 역사, 재질과 제작 과정 등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진짜 프레스코인 ‘부온 프레스코’를 접할 기회가 많지는 않겠지만, ‘드라이 프레스코’는 의외로 많습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 벽화부터 관심을 가지고 조금씩 알아가다 보면 벽화에 대한 이해의 폭이 점점 커지겠죠? 앞으로 벽화를 보시면 무슨 재질을 사용했는지, 프레스코인지 아닌지, 그냥 재미 삼아서 한번 추측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