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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함께 나를 찾아가는 여정
잉클링스
모이는 곳
경남 창원시 성산구 모모 상남점
모이는 사람들
창원에 거주하는 기혼 여성들
추천도서
· 담론 (신영복 지음, 돌베개 펴냄)
· 코스모스 (칼 세이건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
·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지음, 김영사 펴냄)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지음, 민음사 펴냄)
방 안 가득 차분하고 또렷한 목소리가 울린다. 모두 귀 기울여 들려오는 대목을 책에서 짚어본다. 차례로 돌아가며 니체의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던 중, 어디서 한 번쯤 들어본 듯한 문장이 들린다. “신은 죽었다” 회원들은 곧바로 “이 구절이 이렇게 탄생한 말이었구나”하며 탄성을 자아냈다. 창원에서 모임을 꾸려가고 있는 ‘잉클링스’는 2017년 시즌 1을 시작으로 어느덧 시즌 5를 맞이했다.
2017년 창원 지역 기혼 여성 커뮤니티인 ‘줌마렐라’에 책모임 회원모집 글을 통해, 독서와 자신의 이야기에 갈증을 갖고 있던 주부들이 모이게 됐다. 원래 잉클링스Inklings는 1930년에 C.S.루이스와 워렌 루이스 등 작가들이 집필 중인 작품을 서로 읽고 토론하거나 친목을 다지는 모임이었다. ‘모호하고 완성되지 않은 암시와 아이디어를 찾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불완전한 사람들이 책을 읽고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가자는 것’이다. 그 의미와 취지를 본받아 ‘잉클링스’로 모임 명을 정하게 됐다.
단짠단짠 세상살이, 책과 함께 하다
‘잉클링스’는 매주 월요일마다 모임을 한다. 초기에는 격주로 모였으나, 인원이 적어서 유지가 어려웠다. 그래서 시즌 3부터는 매주 모이게 됐다. 공통책을 기한 안에 읽어야 한다는 것과 매주 참석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완독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책 수다 시간에 집중하게 되면서 ‘빨리, 많이 읽자’란 마음을 내려놓게 됐다. 또한 자신이 가능한 만큼만 읽어와서 이야기하면 되기 때문에 부담감도 덜게 됐다.
‘잉클링스’는 소리내 읽는 낭독책, 회원들이 읽고 싶은 책인 자유책, 혼자 읽기 버거워 같이 읽으면 좋은 공통책. 이렇게 세 종류의 책을 선정하여 시즌 내에 읽는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 분야별로 회원들이 읽고 싶은 책 리스트를 미리 정하고 투표를 통해 최종적으로 읽을 책들을 고른다. 시즌별로 미리 읽을 책을 선정하면 기한에 상관없이 미리 읽어놓을 수 있기 때문에 고전 같은 어려운 책이라도 완독할 수 있게 된다. 그 후 해당 책을 고른 사람은 진행자가 되어 발제를 준비한다. 발제는 ‘질문 만들기’다. 책에서 궁금했던 점이나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점들을 찾아서 질문을 만드는 것이다. 발제를 쫓아 책을 읽다 보면 깊이 있는 독서는 물론 토론의 갈피를 잡게 된다.
이러한 체계적인 모임 구성 또한 회원들의 숱한 고민과 조율 속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서로 의견을 공유해가며 더 좋은 독서모임을 위해 노력했다. 독서모임과 관련된 책을 찾아보면서 발제 및 한줄평 남기기를 시작하며 SNS를 통해서 모임에서 못다 한 이야기도 나누고 모임 후기를 공유했다. 그렇게 경험치와 기록이 쌓여가면서 시즌 4부터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시즌 5에서는 시즌 4보다 공통책이 다섯 권 더 늘었다. 함께 읽고 싶은 책이 늘어난 만큼 책을 보는 여유를 가지게 된 것이다.
살아 숨 쉬는 모임에서 찾은 살아 숨 쉬는 인생
회원들은 20대엔 읽기 쉬운 가벼운 책을 즐겼지만 모임을 시작한 뒤로는 고전을 읽으려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처음엔 고전을 읽는 것에 주저했지만, 막상 읽어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읽고 싶은, 읽어야 할 책은 산더미인데 고전 같은 경우 세월을 거쳐 검증된 책이기 때문에 한정된 시간에 읽기엔 안성맞춤이었다. 회원들은 고전을 통해 예나 지금이나 인생사는 다들 비슷함을 느끼고 그 안에서 현실을 마주하는 힘을 얻게 된다며, 결국 고전이 ‘책 읽는 힘’을 길러준다고 말했다. 덧붙여 고전이 끝까지 재미없는 것은 아니라며 50쪽만 넘겨도 흥미진진해지니 미리 포기하면 안 된다고 일렀다.
낭독책은 시즌 3에서 『논어』를 읽으면서부터 시작됐다.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논어를 다 같이 낭독하여 1년에 걸쳐 읽었다. 소리 내 읽으니 귀에 쏙쏙 박히고 천천히 읽어나가기에도 좋았다. 지금은 동양의 고전을 끝내고 서양의 대표적인 고전에 도전 중이다. 이렇듯 회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책 읽기에 그치지 않고 필독서들을 두루 나눠 읽으면서 무한한 독서의 세계에서 유영 중이다.
‘잉클링스’는 대부분 타지에서 모인 사람들로 구성됐다. 그래서 모임을 통해 자연스레 이곳에 대한 유대감을 형성했다. 특히 출산과 육아로 잊고 살았던 자신을 찾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고민하던 자리에 나 자신을 위한 자리도 함께 내어준 것이다. 또한 육아를 시작하면서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한정적이었던 예전과 달리 모임을 통해 내 생각과 느낌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소중해지면서, 책을 매개로 무한한 소재의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다. 다양한 시각을 접하다 보니 생각의 빈틈을 채우고 좁았던 시야를 확장하는 힘을 얻었다.
★강주희(청년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