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강점기 조선 지식인 남성에게 ‘혁명’이란 민족해방으로 나라를 되찾는 일이었다. 여자들의 ‘혁명’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것은 ‘1920년대에 20대 여성으로서 자신이 인간임을 자각하며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관한 질문이며 조선희의 장편 소설 『세 여자』한겨레출판, 2017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주세죽朱世竹, 1901~1953, 허정숙許貞淑, 1902~1991, 고명자高明子, 1904~1950 들은 3.1운동 후유증으로 학을 뗀 조선총독부가 잠깐 동안 압박의 수위를 낮추고 문화의 빗장을 열어주었던, 언론과 사상의 표현이 그나마 자유로웠던 시기에 20대가 되었으며, 일단의 용감무쌍한 ‘선택’을 함으로써 그녀들의 일생을 ‘스스로’ 살게 된다.
표지 사진이 말하듯 세 여자는 단발머리의 신여성이다. 1924년 「조선여성동우회」朝鮮女性同友會를 만들고 공개적으로 여성 인권에 관해 발언한다. “우리도 사람이다.” 자유라는 단어, 평등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일반 민중에게는 아직 낯설거나 불편하게 다가오던 시절, 세 여자는 ‘자유, 권리, 생명’을 외쳤다. 당시의 상징질서가 강요하는 ‘여자현모양처’로 살기보다 ‘사람’으로 살기를 천명한 것이다. 여자에게 진짜 혁명은 나라를 찾는 일에 우선하여 자신을 찾는 일이었던 것.
세 여자의 짧고도 강력한 메시지는 봉건 가부장의 드높고 굳은 벽을 넘고 일본의 사상검열과 감시와 고문, 남성지식사회가 악의적으로 퍼뜨리는 소문의 두꺼운 장막을 찢어발기고 자유롭고 가볍게 훨훨 날아올라 당대 여자들이 일시에 각성하여 인간으로의 길을 선택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그랬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일은 절대 없었다. 그녀들은 삽시에 패륜녀가 되었고 화냥년이 되었고 악플의 주인공이 되어 남성들의 호기심의 도마 위에서 맨몸으로 춤추는 신세, 일본 경찰의 감시대상, 같은 여자 지식인들의 질투의 대상이 되어 천지 사방에 적의 전선을 만들어나갔다. 그러면 어떠랴, 그녀들은 일단 ‘흔들어놓기’는 했던 것이다. ‘자유연애, 자유결혼, 이혼의 자유, 경제자립’ 등등을 외치며 억압과 당대의 상징질서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남한 사회에서 오랫동안 세 여자의 이름은 금기어였다. 삭제되어 교과서에서도 그들의 발자취를 찾아볼 수 없었던 군사정치시대를 지나 복권되고 난 뒤에도 언급되지 않았다. 살아서 나라 없는 나라의 백성으로 ‘벌거벗은 몸’이었던 여자들은 죽어서도 냉전이데올로기의 무덤 속에서 여전히 냉동되어 있어야 했던 것이다. 21세기의 봄, 작가는 이들의 봉인을 해제하고 호명하여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 선보인다.
20세기의 봄에 당당하게 여자로서 목소리를 냄으로써 ‘혁명’을 과제로 삼았던 이들의 삶은 끝까지 용감했고, 그러므로 행복했을까? 봄볕은 따사로우나 짧아 활짝 피려던 꽃은 여름 폭풍우와 천둥 벼락에 채 피지도 못한 채 목이 꺾이고, 차가운 가을비와 꽁꽁 얼어붙는 한겨울 눈발에 자취조차 사라진 듯하다. 그녀들의 삶의 궤적은 이와 같았다. 간난신고와 수형 생활과 사방의 감시탑 아래에서 끊임없이 삶을 부지하기 위한 선택을 해야 했던 기나긴 시간을 작가는 서술한다.
‘혁명’의 수단으로서 사회주의 사상을 선택했던 자들의 흥망사와 궤적을 함께하는 세 여자 이야기는 역사소설인 동시에 ‘여성’ 역사소설로 자리매김 될 듯하다. 혁명을 몸으로 산 여자들이지만 모두가 같은 삶을 산 것은 아니다. 환경에 의해 상황에 의해 각자의 선택에 의해 세 여자의 운명은 갈라진다.
허정숙은 끝까지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아 수를 누린 드문 경우인 반면 주세죽은 스탈린 시대 모스크바에서 딸도, 믿었던 동지이자 남편도, 조국도 인정해주지 않는 호모 사케르*로 그녀가 신봉했던 이데올로기의 국가 소련에서 유형수의 신세로 외롭고도 처절한 배반의 삶을 살아내다 고독하게 병사한다. 그녀의 삶은 스탈린 시대, 디아스포라가 되어 중앙아시아로 추방된 우리 민족의 이동 경로와 궤를 같이한다.
*호모 사케르Homo Sacer: 로마제국에서 사람들이 범죄자로 판정하여 ‘죽여도 되는 자’. 인간 사회 내에 있지만 인간 사회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를 말한다. (편집자 주)
고명자의 삶은 어땠을까? 강경의 드넓은 들판이 모두 그녀의 집안 소유였던, 부잣집의 막내딸로 어린 동안 사랑을 듬뿍 받는 호사를 누리고 교양 교육을 받으며 귀족의 삶을 살던 그녀가 선택한 혁명은 과연 그녀에게 어떤 선물을 안겼을까?
봉건의 벽을 뚫고 혁명을 선택한 그녀, 그녀는 국내에서 활동했기에 주세죽 못지않은 간난고초를 겪는다. 봉건의 벽은 넘었을지 모르나 기다리는 것은 일경의 감시와 구속, 고문과 협박이었다. 일경으로부터 풀려나도 자유롭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 동료집단은 그녀를 밀정 혹은 전향자로 의심하며 냉대하고 소외시킨다. 사랑하는 사람의 생사를 알지 못해 20년간 외로운 몸을 부지했건만 들려오는 소리는 그 사람이 처형당했다는 소식, 그리고 주세죽과 혼인했다는 소식이다. 배신감, 외로움, 불안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고독사한다.
작가는 말한다. 절체절명의 순간 여자는 불행을 선택하는 한이 있어도 품고, 희생하고, 함께 가며 기다리는 데 용감하나 남자는 회피하는 비겁을 선택하며 이 선택에 ‘역사는 말해줄 것’이라는 핑계를 댄다. 박헌영朴憲永, 1900~1955이 그러했고 김단야金丹冶, 1901~1938가 그러했다. 남자는 끝까지 정치적 인간의 외연을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다. 정치적 인간은 내부에 적을 쌓고 파벌을 일삼으나 여자는 파벌을 월경越境한다. 그녀들의 선택은 남자들의 선택과 기준이 다르다. 그녀들은 ‘정치’보다는 ‘인간’을 선택 기준으로 삼는다. 세 여자의 삶의 행적의 행과 불행, 영광과 고독, 인정과 불인정의 차이는 모두 이 ‘선택’에서 비롯되었다.
그녀들의 삶은 무모했으나 용감했고 초라했지만 존엄했다. 외로웠지만 스스로를 살아내었고 순간순간 흔들렸지만 신념을 버리지는 않았다. 그 어떤 드높은 벽도 뚫어내진 못했지만 타고 넘고 균열을 내는 데는 성공했다.
21세기의 봄, 지금의 20대들과 20세기의 봄의 20대 여자들은 묘하게 겹친다. 1924년 5월 23일, 경운동 천도교당에서 부르짖은 그녀들의 외침 “아! 우리도 살아야 한다.” 의 「여성동우회」의 창립선언과 2016년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이후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여성들의 외침이 그러하다. 백 년 동안 어떤 부분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차별, 혐오, 대상화, 폭력 부분이 그러하다. 그녀들은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혁명’을 위해 산 것이 아니라 ‘제대로 살기 위해’ 혁명적 선언을 한 셈이다. 갑자기 이상의 시 「오감도 제1호」의 한 부분이 떠오른다.
13人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다른事情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무서워하는 아해(여성)가 무서운 아해(여성)가 되는 것이다. 무서운가? 그러면 무서워져라! 20세기 봄의 여자들이 21세기 봄의 여자들에게 하는 말이 바로 이것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