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유토피아는 ‘낙원’이거나 ‘이상향’의 의미였다. 그곳은 인간의 행복을 실현하는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전통적으로 『구운몽』과 같은 소설에 등장하는 선계仙界와 선경仙境은 착한 사람만이 살 수 있고 생로병사도 없는 완벽한 공간으로 제시된다. 또 『홍길동전』에서 묘사되는 율도국은 지배계층의 부조리와 불합리한 요소를 제거하려는 활빈당의 의지로 건설되는 이상세계이다. 도교의 신선사상의 영향을 받은 무릉도원형 유토피아나 유교의 대동사상大同思想에 입각한 유토피아는 한국 고전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대표적인 유토피아의 모습이다. 무릉도원형이 개인적이고 소극적인 차원의 유토피아 공간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대동사회형은 집단적이고 적극적 의지를 실현하고자 하는 공간으로 규정할 수 있다.
그런데 근대 이전 고전소설에서 전개된 이와 같은 유토피아 형상과는 달리 한국 근대소설에서 유토피아의 구상화는 그리 많지 않다. 사실주의가 지배해 온 한국의 근대소설 풍토에서 유토피아 서사가 요구하는 초월적이며 이상적인 공간의 형상화가 ‘객관적 관찰과 사실적 재현의 기교’와는 호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시적 자아의 초월적 정서를 통해 구현되는 시세계에서는 유토피아가 자주 등장하였다. 백석이나 윤동주의 시에서는 시인의 몽상 속에 살아있는 공간으로서의 유토피아를 탐색하거나 낙원으로서의 고향이 환기되었다. 또한 과학에 대한 신념과 근대를 향한 낙관적 의식을 보여준 김기림의 시에서도 유토피아가 거론되었다. 한국 현대시의 유토피아는 낙원의 상실로 이해되는 현실 속에서 원초적인 황금시대를 기억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근대 이전 시대가 유토피아를 꿈꾸던 방식과 유사하고, 과학과 근대를 무비판적으로 낙관한다는 점에서 근대 이전의 낭만적인 상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이래로 근대인이 꿈꾸는 이상향은 상실된 낙원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구축하고 싶은 이상태理想態로서의 유토피아이다. 유토피아를 염원하는 인간 의지의 도저한 모색은 문학작품으로 형상화되면서 그 시대의 결핍을 목도하게 하고, 더 좋은 세상에 대한 염원을 구체화한다. 특히 이성의 합리성으로 무장한 근대인의 유토피아 의식은 ‘지금-여기’라는 시공간성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전제로 한다. 근대인이 유토피아 의식을 환기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역사적 조건과 정치적 상황을 조명하는 일은 현실에서도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근대인이 사유하는 유토피아란 시간성이 부재하며 현실과는 격리된 공간이거나 현실과 유리된 폐쇄적 영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비록 그 실현이 불확실하다 하더라도 아직 존재하지 않지만 끊임없이 실현가능하다는 의지적 의식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유토피아를 직접적으로 건설하겠다는 노력만큼이나 예술을 통한 유토피아 의식의 형상화가 근대인에게 중요한 것이다. 예술적 형상화를 통해 근대인의 유토피아 의식은 시도되고 보완되며 새롭게 창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이러한 근대인의 유토피아 의식을 가지고 있는 소설가가 최인훈이다. 한국의 근대를 휩쓸고 간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에 대한 분석적 성찰과 핍진한 응시를 보여주는 최인훈은 지금 이곳에는 없지만 이상사회가 미래에 실현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이성의 합리성을 통해 역사와 현재를 분석하고 있다. 특히 그가 구현하는 문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성찰과 사유는 유토피아 의식을 소설적 소재이자 주제로 설정하여 현대 한국소설의 형식을 확장하였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새로운 세계를 갈망하는 근대인의 유토피아 의식을 드러내는 소설로 최인훈의 『회색인』문학과지성사, 1991을 꼽을 수 있다. 한국의 근대사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정치적 의사 표현을 집단적으로 제시했던 1960년 4·19 혁명을 경험했던 1960년대 젊은이들이 이 혁명 전후에 지니고 있었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사유와 고뇌가 이 소설에서는 다채롭게 등장한다. 또한 그 사유를 가능하게 한 한국 근대사의 질곡과 세계사의 정황이 다각적으로 분석되며 역사의 질곡을 경험한 젊은이들의 복잡한 욕망이 유토피아 의식을 둘러싸고 펼쳐진다.
만일 우리나라가 식민지를 가졌다면 참 좋을 것이다. 먼저 그 많은 대학 졸업생들을 식민지 벼슬아치로 내보낼 수 있으니, 젊은 세대의 초조와 불안이 훨씬 누그러지고 따라서 사회의 무드가 느긋해질 것이다. (…) 여야가 아무리 치고받는 국회라 할지라도, 일이 식민지 통치에 관한 한 쉬쉬하면서 아무래도 민족은 이해 공동체라는 본을 훌륭하게 드러내 보일 것이다. (…) 노동자들도 인터내셔널이니 만국의 노동자니 하는 말에 그닥 입맛을 돋우지 않을 것이며, 그보다는 값싼 식민지 노동군의 내지 이동을 막으라고 요구하는 온건한 파업을 할 것이다. 경제 사정은 나쁘지 않을 것이다. (…) 대학에서는 국학의 연구가 성하고 허균은 조나단 스위프트의 큰 선배며 토머스 모어의 선생이라고 밝혀질 것이며, (…) 우리들의 식민지를 가령 나빠유NAPAJ라고 부른다면 “정송강과 나빠유를 바꾸지 않겠노라” 이런 소리를 탕탕할 것이다. (8~9쪽)
『회색인』의 주인공인 독고준은 일본을 식민지로 삼은 조선을 가정해보는 가상 역사를 그려본다. 여기에서 조선은 정치와 경제, 학문과 문화 모든 면에서 여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누리는 “태평천하”이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식민지를 거느렸기 때문이다. 일제의 식민 지배 탓에 뒤틀려버린 한국의 근대적 삶을 상상적 재구성을 통해서나마 교정해보고자 하는 독고준은 친구인 정치학도 김학과 ‘지금의 한국(인)을 넘어 새로운 한국(인)은 가능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위 예문은 독고준의 고민을 발랄하게 표현해본 경우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들이 보기에 지금의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이 겪은 근대의 역사가 서구와 동등하게 시작할 수 없었던, 불평등한 출발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근대’가 가지고 있는 서구 중심적 역사 전개에서 기인한다. 『회색인』에서 정치학도 김학과 소설가 지망생 독고준의 사변과 관념의 독백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 근대사와 세계 문명사에 관한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서양에서 완성된 근대는 신을 부정하고 개인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시작되었고, 보편제국이 아닌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과정에서 유혈혁명을 치러냈다. 서양은 제국주의로 동양을 짓밟았고 특히 한국은 아시아에서 서양 역할을 담당한 일본에 의해 희생되었다. 근대의 민주주의와 민족주의를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 한국은 부정한 정권에 의해 지배되고 있을 뿐이다. 한국인들에게 근대의 이념은 실감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서양의 공통된 사상적 기반으로 작용하는 기독교처럼 한국의 신화를 찾아내는 일이 시급하다.’
독고준과 김학이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한국의 근대사는 환멸의 역사에 다름 아니다. ‘지금-여기’의 현실에 대한 분석을 요구하는 이 질문은 필연적으로 한국 근대사의 질곡을 직시하고 있으며, 그간의 역사를 극복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소설의 중심인물인 독고준과 김학의 견해차가 존재한다. 특히 한국 근대사의 부정적인 문제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정치 현실의 왜곡에서 비롯된다. 서구의 역사가 쟁취하고 확립한 근대의 보편적인 이념인 자유와 민주주의가 한국에서는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데서 오는 필연적 결과이다.
우리는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상 민주주의에 대한 의사 표시를 한 적이 없다고 할 수 있어. 어떤 사회를 지배하는 사상이, 그 사회가 역사적 결단(즉 혁명이지)에 의해서 채택한 것이 아니라면 그 얼마나 취약한 건가.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성은 바로 여기 있어. (165쪽)
독고준과 김학이 보기에, 서구에서 이식된 이념으로서의 ‘자유’와 ‘민주주의’는 전근대적인 사회의 근본 모순을 해결하며 새로운 세계의 건설을 위해 확립되어야 할 유토피아의 조건이었다. “왕도낙토”의 꿈을 유토피아로 믿어왔던 동양의 지도자들과 달리 새로운 사회에서는 모두가 자유롭고 누구나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조건을 이룩함으로써 인간의 인간됨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대의 세계에서는 바로 ‘자유와 민주주의’가 유토피아를 보장하는 기본 이념으로 강조된다. 북쪽이 고향이었던 독고준이 월남하기 전, 가족들이 모여 골방에서 몰래 청취하던 남쪽 대북방송에서 들려오던 “자유로운 조국, 민주주의의 나라, 유토피아”라는 메시지를 그는 “오색 무지개에 싸여서 꽃이 피고 털빛이 고운 새들이 지저귀는 남쪽”(22쪽)으로 이상화하여 마음에 깊이 새겼다. 독고준에게 ‘자유’와 ‘민주주의’는 유토피아의 전제였던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은 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주장하면서도 역사에서 쟁취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 경험해 보지 못한 것에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