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인』에서 독고준의 매부 현호성 같은 인물은 한국 정치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지난날의 노동당원이 천하의 여당이라는 자유당의 유력 당원이고, 고액 헌금자다. 그는 애당초 주의도 주장도 없는 사람이다. 그는 편리한 대로 강한 편에 붙어서 몸을 지켜왔다”(153쪽). 김학의 『갇힌 세대』 동인들이 주장하듯이 친일파 척결이 이루어지지 못한 남한 정부의 근본적인 한계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변함이 없다.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이념으로 건설해야 할 유토피아는 이념의 열정으로 이룩되지 못하고 부정을 은폐하고자 준동하는 세력들 때문에 실현되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앵무새처럼 한 가지 말만 하라. 이것이 정부의 요구야. 인생과 정치를 좀 다원적으로 보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터부에 속해. 이른바 대통령이 산다는 집은 구중궁궐인 것처럼 신비의 안개에 싸여 있고, 국민들에게는 그 속에 사는 인물의 모습은 종잡을 수 없는 풍문처럼 밖에는 전해지지 않는다. (75쪽)
김학은 한국의 정치 상황은 절망적이라고 판단한다. 민주주의와 자유와 같은 근대적 이데올로기들이 현대 한국인들의 삶에 뿌리내려야하는 유토피아의 조건이지만 그것이 한국인들의 역사적 삶 속에서 체화되지 못했다는 데에서 유토피아란 실현될 수 없는 불가능의 영역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자유라는 이데올로기가 유토피아를 가능하게 할 최선의 방법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 김학의 딜레마가 있다. 그래서 정치학도 김학은 ‘혁명’의 명제를 택한다. 김학은 “혁명이 가능했던 시대라는 건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혁명이 일어났다”(18쪽)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우리들의 현실이 아무리 괴기하고, 따라서 반응하기가 어려운 것일지라도, 그것을 노력을 포기하는 이유는 되지 않는”(79쪽) 투철한 혁명 의지는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유토피아의 미래를 상정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근대 이후 세계사의 전개과정에서 혁명이 실현된 구체적인 사례는 20세기 초의 사회주의 혁명이다. 빈부 갈등이 해소된 인간다운 삶에 대한 열망이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결실을 맺은 사회주의 혁명은 유토피아 상상력의 근대적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와 민주, 평등의 기치로 건설하려한 사회주의 유토피아는 독고준이 보기에 서구 역사의 일부분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유토피아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김학과 다르게 독고준은 “한국의 상황에서는 혁명도 불가능하다”(17쪽)고 주장한다. 독고준에게 중요한 것은 “에고”이다. 독고준은 월남하여 생활하던 대학 초년생 시절 “민족의 일원도 국가의 일원도 그리고 가족의 일원이기도 전인 ‘자기’”를 발견하고는 “몸이 으스스하도록 감격했다”(34쪽). 최인훈의 소설 전반에 등장하는 자전적인 요소이면서 그의 소설 속 주인공의 원체험인 ‘폭격 당하는 W시의 여인’은 “에고”의 발견이자 최초로 경험한 생의 희열이다.
그 때 부드러운 팔이 그의 몸을 강하게 안았다. 그의 뺨에 와 닿는 뜨거운 뺨을 느꼈다. 준은 놀라움과 흥분으로 숨이 막혔다. 살냄새. 멀어졌던 폭음은 다시 들려왔다. 준의 고막에 그 소리는 어렴풋했다. 뺨에 닿은 뜨거운 살. 그의 몸을 끌어안은 팔의 힘. 가슴과 어깨로 밀려드는 뭉클한 감촉이 그를 걷잡을 수 없이 헝클어지게 만들었다. 폭격은 계속 되었다. 폭탄이 떨어져 오는 그 쏴 소리와 쿵하는 기동 소리는 한결 더한 것 같았다. 준은 금방 까무러칠 듯한 정신 속에서 점점 심해가는 폭음과 그럴수록 그의 몸을 덮어 누르는 따뜻한 살의 압력 속에서 허덕였다. 폭음. 더운 공기. 더운 뺨. 더운 살. 폭음. (50쪽)
성에 대한 최초의 자각과 연결된 이 체험은 독고준의 자아가 완전히 인정되었던 놀라운 순간을 간직하고 있다. 이것은 독고준이 처음으로 소외와 좌절이 아닌 희열을 맛본 경험, 그의 에고가 승리한 최초의 경험이었다.1) 중학교 2학년 시절에 경험했던 이 순간을 성인이 된 독고준은 강렬하게 희구한다. 단신으로 월남하여 고아가 된 독고준이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단순한 퇴행적 심리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이념의 갈등에서 비롯된 분단 상황이 ‘에고’의 희열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독고준이 꿈꾸는 유토피아는 “보편과 에고의 황홀한 일치”(213쪽)가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 독고준은 보편적인 이념을 내세워야 하는 혁명 또한 신뢰할 수 없다. 그가 보기에 현대 사회에서 존재를 위협당하는 것이 에고이기 때문에 혁명의 위험은 더욱 크다. 그는 “어느날 이천만 민중이 홀연 인간적 모욕을 실감하고 일제히 동시에 폭동을 일으키”기(293쪽) 전에는 어떤 구원의 길도 있을 수 없다고 믿는다. 소수의 힘으로는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을 뚫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저마다 신”인 개인을 보편이라는 이름으로 억압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개별적 존재가 동의하는 이념, 개별의 총합으로서의 보편이 아니라면 어떤 보편 이념도 허구인 것이다.2)
독고준의 유토피아인 “보편과 에고의 황홀한 일치”란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한 이상이다. 아도르노가 말하듯이 이것은 언젠가 이루어질 역사의 차원이 아니라 불확실한 실현과 관련된다. 그러니까 유토피아의 기능은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식 속에서 끊임없이 이상적 순간을 향해 나아가는 움직임을 이끌어내는 데에 있다. 최인훈의 『회색인』은 이같은 유토피아의 정신을 매혹적인 사유의 향연으로 그려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