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디쉬 2 : 과학의 대중화? 대중의 과학화!
선생님께서 차리신 통섭의 식탁이 생물학 위주인 이유는 앞에서 듣고 선생님 입장에 설득도 되었지만, 그 식탁에 앉은 사람은 누구이든 과학 메뉴에 깊게 빠질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획 독서를 강조하시는 최재천 선생님께, 왜 과학과 관련없는 일을 하는 사람도 과학책을 읽어야 하는지 여쭈어보았다.
선생님께서 강조하시는 말씀 중 하나가 ‘과학의 대중화’가 아니라 ‘대중의 과학화’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생각해보면 과학적 사고를 위한 책읽기 정도는 교양으로 괜찮겠지만 굳이 과학과 관련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이 양자역학을 공부할 필요는 없겠지요. 굳이 대중이 과학을 알아야 한다면 어떤 이유로 알아야 할까요?
‘과학의 대중화’를 뒤집어 ‘대중의 과학화’라는 얘기를 한 이유는 ‘과학의 대중화’라고 하니까 자꾸 ‘과학의 저질화’ 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진짜 과학은 얘기 안 하고 자꾸 주변 부분만 이야기하고 분위기만 막 띄어놓고 끝나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지요.
예를 들면요?
과학 쇼 따위를 한다거나 하는 일이지요. 재미만 있고 아무것도 가르치는 바는 없지요. 리처드 도킨스도 자기 책에 분명히 얘기했어요. ‘과학의 대중화’는 좋은데, ‘과학의 물타기’는 하면 안 된다고 말입니다. 정확하게 가르쳐 줄 건 가르쳐야 합니다. 힘들지만 해야 합니다. 도킨스는 어려운 과학을 누구나 알아듣게 수려한 문장으로 이야기합니다. 그게 진정한 의미의 과학의 대중화이죠.
과학의 대중화를 잘못 이해하면 그 뜻이 다 전달이 안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을 뒤집어서 ‘대중의 과학화’다 한 거예요. 결국 그 말은 모든 사람들을 다 과학자로 만든다는 게 아니고, 사람들이 과학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하자는 ‘과학의 대중화’의 본래 취지를 밝히는 겁니다.
과학적 사고는 다른 말로 하면 합리적 사고입니다.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뜨거운 사람들이 많은 나라에서는 전 국민이 과학적 사고를 하면 사회가 굉장히 달라질 겁니다. 지금처럼 불합리한 사고에서 벗어나야지요. 사람들이 하는 말에 다 들썩들썩하는 국민들이야말로 문제라는 말도 있잖아요.
우리 사회는 과학적이지 못한 판단으로 인해 지불하는 비용이 어마어마합니다. 광우병 문제만 봐도 이 일이 그저 소고기 문제인줄만 아는 정부의 막힌 사고나, 그렇다고 해서 촛불 들고 나와서 미국산 소고기 절대 못 먹게 하라는 사람들 둘 다 문제지요. 아무리 막아도 인간 사회 안에서는 그런 병에 걸려 죽을 사람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이런 문제는 여러 각도에서 들여다봐야 합니다. 의학적으로도 봐야 되고 사회학적으로도 봐야 되고 경제학적으로도 봐야 되겠지요. 다각도에서 합리적으로 볼 줄 모르는 정부, 합리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시민들이 다 과학적인 사고를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능력만 생기면 합리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문제들이 둘러보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좀 과학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고, ‘대중의 과학화’가 그런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봐요.
또 ’통섭의 식탁‘에서 우화처럼 쓴 이야기가 있어요. 여러분은 살면서 직업을 여러 번 갈아타야 할 텐데 한 공부만 해서는 곤란해요. 지극히 단순한 확률 계산만 해보면 여러 분야의 다양한 소양을 갖추어야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언제든 새로운 분야를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해요. 다른 말로 하면 기초학문을 해 놓는 거예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기초를 제대로만 닦아놓고 있으면 언제든지 새로운 학문에 도전할 수 있어요.
그 다음 할 수 있는 제일 좋은 공부는, 필요할 때마다 대학에 돌아와 4년 전공을 다시 하는 것이 아니죠. 기획독서를 하는 겁니다. 언뜻 생각하면 책 한 두어 권 읽는다고 세상이 달라질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그런 분야의 책을 한 권도 안 읽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과 두어 권이라도 읽어서 조금 아는 사람하고는 인생의 기회가 달라져요.
생물학을 배우신 저희 교수님께서도 전공을 다 들으신 후 뭘 해야 할까 고민하시다가 컴퓨터 공학이 끌려 그 쪽으로 조금 공부하셨는데, 갑자기 그 때 생물 정보학이 생겨나면서 논문이 학술지에 실리더니 바로 교수가 되시더라고요.
사실 우리가 어느 분야에 있다는 게 그 분야의 대가가 되려고 한다기보다는 그냥 그 쪽 문이 열려 있는데 자기가 좀 안다고 겁 없이 뛰어드는 거예요. 조금 아니까 덤벼들어서 얘기 나누다가 기회가 생기는 겁니다. 문이 요만큼 열린 걸 보고 가는 거예요. 그러고 보면 세상은 그렇게 사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떤 분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건 정말 위험한 겁니다. 다양한 분야에 조금씩이라도 알아가는 노력을 하는 사람 앞에는 기회가 오게 되어 있어요. 누구에게나 문이 조금씩은 다 열려 있어요. 그런데 그 문안을 빼꼼히 들여다보기만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그 안이 안 보여요. 열려있는데 ‘뭘 보라는 거야?’ 하면서 그냥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그 문틈으로 보면서 ‘우와’ 하겠지요. 그러면 문 안을 보면서도 ‘지금 우리 뭐 보는 거야?’ 하는 사람과는 길이 달라지게 마련이에요. 그래서 기획 독서 얘기를 했는데, 그런 얘기 한 사람이 나 말고는 없었나 봐요. 갑자기 기획 독서가 새로운 개념이라고 뜨기 시작해서 오히려 제가 약간 당황스러운데.
기획 독서하기 어려운 분야가 과학이지요. 이과 공부를 한 사람이 소위 문과 쪽을 기웃거리기보다는 문과 공부를 한 사람이 이과 공부를 기웃거리기가 상대적으로 더 힘든 게 현실이잖아요. 물론 철학도 어렵고 경제학도 어렵지만 말로 쓰인 만큼, 읽으면 그래도 좀 읽히잖아요. 그렇지만 문과 사람들은 양자역학은 한 페이지도 못 넘길 겁니다.
그래서 대중의 과학화 얘기를 하고 문과 전공을 한 사람들에게 과학책을 읽으라고 하는 겁니다. 쉽진 않지만 해야 해요.
전문적인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전문적인 책의 반대편에 있을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있을까요?
문학 독서도 당연히 해야죠. 조선일보 서평 칼럼을 위화의 ‘인생’이라는 소설로 시작했어요. 소설도 우리에게 뜻밖의 혜안을 줄 수 있는 좋은 장르잖아요. 좋은데 많은 사람들이 소설 읽는 것도 보면 그것도 편식해요. 그냥 달콤한 소설 남들이 읽으니까 다 읽는 소설만 볼 것이 아니라 소설도 잘 선택해서 읽으면 정말 굉장한 혜안을 줄 수 있어요. 소설 읽는 것도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많지 않아 잘 못 읽어서 그렇죠.
아이스크림 - 후배들에게 : 살아보니 살아집니다.
긴 이야기도 슬슬 끝나간다. 선생님의 독서로 시작해서 통섭, 대중의 과학화에 교육 이야기까지 정말 많은 말씀을 들었다. 후식으로 선배님께 아이스크림 얻어먹는 기분으로 대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여쭤보았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도 대학생 시절을 보내셨고 지금은 학문의 길로 오셨지요. 저희 대학생들에게 선배로서의 조언을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거창한 얘기보다 그냥 ‘너무 조급하지 말자’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마음을 너무 조급하게 잡으면, 대학 4년을 직장을 잡아야한다는데 너무 목표를 세워서 공부다운 공부를 하지 못하고 직장을 얻기 위한 직업 훈련소 교육을 받고 대학을 나가게 될 수 있어요. 저는 그걸 거의 허송세월이라고까지 표현하고 싶습니다. 너무너무 섭섭한 일이에요.
인생에서, 대학이라는 공간에 있는 4년, 5년, 저는 그게 6년 7년이 되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시간은 다시 안 오거든요. 이제 저도 나와서 살아봤으니 말하건대,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졸업하고 일하기 시작하면 절대로 다시 해볼 수 없어요. 그 기가 막힌 시간을 고작 첫 직장 얻는 데에 쏟아 붓는다, 그거 난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무지무지 손해라고 생각해요. 그 기간에 첫 직장보다도 앞으로 살아가야 될 70년을 내다보면서 정말 공부다운 공부, 기초 학문을 닦는 기간으로 보내야 합니다. 물론 쉽지는 않은 일이에요.
예전에 우리는 모르고 했어요. 언제 한 번은 서울대가 대학로에 있던 시절 학기 첫날에 학교에 들어가는데 교문 앞에서 친구를 만났어요. 오랜만에 만나서 정말 반가웠죠. 이야기하다 보니까 저는 아직 수업시간이 안 됐는데 그 친구는 수업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야기가 안 끝나서 강의실까지 따라가서 친구가 신청한 수업을 들어봤어요. 쇼펜하우어 철학 강의였는데. 한 번 듣고서는 수강신청을 변경해서 그 강의를 들었죠.
철학에 대해서 제가 뭘 알았겠어요. 그저 재수시절에 염세주의자가 되어 철학책 한 권 읽은 게 다란 말이에요. 그런데 수업에 들어와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친구보다 더 관심이 많아진 거예요. 그래서 첫 시간 듣다가 ‘나 이거 들을래!’ 해서 수업을 들은 거니까, 말이 안 되는 짓을 한 겁니다. 요즘 여러분은 상상이 안 갈 거예요. 친구랑 같이 있고 싶어서 과목 선택해서 들은 거예요. 그 때는 얼마나 엉성했는지.
하지만 나중에 생각하니 그 강의가 저한테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그렇게 엉성한 덕에 지금 생각하면 제가 이렇게 만들어 진 거예요. 탁 다듬어진 생물학 과목 다 듣고 나갔으면 전 지금 뭐하고 있을까 잘 모르겠어요. 그때 하도 이상한 짓을 많이 하다 보니 지금 그래도 통섭을 구상해내고 폭이 좀 있는 그런 학자가 되었지요. 그래서 저는 옛날의 저에게 정말 너무너무 감사해요. 그때 그 20대 초반에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였다는 것. 그게 너무 고마운 거예요.
여러분은 우리 때에 비하면 훨씬 많은 걸 알고 세상에 대해서 훨씬 많은 정보를 얻고 있어요. 저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채 대학 생활을 보내기는 힘들겠지만, 계획을 해서라도 좀 긴 인생을 바라보면서 준비하시기를 바랍니다.
어제 저녁에도 대학생들 만나서 얘기하는 자리가 있었어요. 거기서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내가 보기에는 다들 한심하다. 장담컨대 이 안에 앉아있는 학생들 중에 절반은 이 나라에 안 산다. 한반도를 떠난다. 이제는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 말한 것처럼 지식 유목민이 돼서 일이 있는 곳을 찾아 세계를 누비고 살 텐데, 그럴 사람들이 기껏 지금 준비한다는 것이 한반도의 스펙을 쌓는 일이냐. 그런 스펙이 과연 터키며 볼리비아에 가서 먹히겠느냐. 쓸 데 없는 짓을 하는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쓸 수 있는 스펙 요거 하나로 시간을 다 보내고 있다. 전 세계를 상대로 스펙을 쌓아라.’고 그랬어요.
전 세계에 통하는 스펙 말이에요. 영어 잘해야 되고,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해야 하죠. 결국 세계를 상대로 하는 스펙은 기초학문이에요. 큰 그림의 스펙을 쌓지 기껏 첫 직장 얻는데 목을 매고 앉아있는데 과연 두 번째 세 번째 직장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싶어요.
인생 살아보니까 길더군요. 살아보니까 처음에 조금 뒤처지는 거 아무것도 아니에요. 서울대학에 처음 딱 부임을 했을 때 나이가 벌써 40이었어요. 그 당시만 해도 서울대학교에서는 천하의 어느 대학에서 교수를 하다 왔더라도 처음 부임한 사람은 무조건 조교수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제가 서울대 오고 2년 만에 내 동창은 정교수가 된 거에요. 저는 조교수로 4년 있어서 부교수가 되고, 부교수에서 또 5년이 지나서야 정교수가 됐는데, 무지 늦은 거 아니에요. 그래도 정교수 되고 보니 정교수 먼저 된 사람이나 나중에 된 사람이나 차이가 없어요.
처음에 늦는 거 살아보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살아보니까 기회도 참 많고 너무 조급하게 마음먹지 말고 길게 보고 한번 사는 인생인데 한 번 멋있게 살아봐요. 그거 뭐 남들이 다 하라는 짓 하면서 흔한 인생 살지 말고 좀 나만의 멋진 인생을요. 그런다고 사실 굶어 죽지 않거든요. 먹고 사는 것 같이 소박한 꿈꾸지 말구요 한번 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인생 사는 사람으로 한 번 살아봐요. 가능합니다. 저도 재밌게 잘 살고 있어요.
처음에는 시작은 나도 참 어려웠어요. 대학에도 떨어지고 참 엎치락뒤치락... 그렇지만 살아보니까, 살아지더라구요. 그게 위화의 소설의 핵심이지요. 인생은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거다. 네, 살아져요. 한번 멋있게 살아보세요.
선생님과 함께한 코스 요리는 포만감 대신 여운을 남기고 끝났다. 평생 최고의 요리 하나에 몸 바치는 사람도 아름답지만, 여러 요리를 맛보고 누구나 함께할만한 식탁을 준비하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멋진 요리사 아니겠는가!
선생님께서는 나만의 멋진 식탁을 차리기 전에 먼저 세상에 대한 나의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무엇이 바쁜지 지식이라야 인스턴트로만 먹어온 우리들. 초조함이 관성이 된 채 스펙에만 젖어있는 우리 대학생에게 최재천 선생님께서 차려주신 한 턱 통섭의 식탁은 오랫동안 삶의 양념으로 스며들성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