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디쉬 1 : 우리 학생들에게 매일 똑같은 메뉴만 줄 셈인가요?
통섭의 방법론에 대해서 어떤 말씀을 해 주실까 정말 궁금했는데, 통섭은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닌 여러 사람 간의 소통이라는 말씀이 신선했다. 생각해 보면 통섭은 혼자 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통섭을 이루는 ‘소통’이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너무 이상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 말씀대로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소통하고 협력한다면 이상적인 성과가 탄생할 거예요. 하지만 우리나라 현실 상 소통이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맞아요. 정말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 속에서는 통섭이든 소통이든 정말 힘들어요. 문과, 이과를 나눠서 가르치는 것부터 문제에요. 나는 교육 문제에 대해 수능이 수학 능력자를 길러 내기는커녕 대학을 수학 장애우들 천지로 만들었다고 대놓고 말해요. 미안한 말이지만 철학한 사람 물리학과에다가 앉혀 놓고 양자역학 책 주고 ‘자 공부합시다’ 해 봐야 안 되잖아요.
서울대학생, 하버드대학생, 미시간대학생을 놓고 한 시간 주고 수학 문제를 내면 서울대생이 압도적으로 잘 풀어요. 하버드대학생들은 수학을 잘 못해요. 많은 학생들이 이차방정식도 잘 못 풀어요. 그런데 굉장히 어려운 수학 문제를 주고 한 달을 주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내가 보기에 서울대생 대부분은 아예 못 풀거나 포기할겁니다. 몇 명은 귀신같이 풀겠지만요.
하버드대학생 거의 전부는 한 달이 지나면 다 풀어요. 어떤 형태로든요. 미국에서 하던 제 수업에서는 미술 대학에서 온 친구마저도 미분방정식을 결국 풀어내더라구요. 어떻게 풀었냐고 물어보니 도서관에 가서 한 달동안 미분방정식 책을 놓고 보면서 공부했다는 거에요. 그 학생들은 학문을 넘나드는 게 가능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 그 곳은 분명 우리보다 그런 교육이 되어 있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우리나라 교육이 너무 섭섭해요. 전에는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심각하다는 얘기만 들었지 정확하게는 잘 몰랐어요.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을 들여다보니 정말 심각했어요. 교과과정위원회라는 교육부의 위원회의 위원으로 있었는데 아주 이기적인 교육자들 때문에 이 나라 교육이 망가지고 있었어요. 정부는 사교육을 없애자고 난리를 치는데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사교육을 어떻게든 유지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 하고 있더란 말이에요.
과학을 어떻게 통합하기 위해서 서울대 김희준 교수님과 서강대 이덕환 교수님께서 정말 힘쓰셔서 통합과학 교과서를 만들었어요. 그랬더니 고등학교 과학 교사들이 먼저 반대해요. ‘누가 가르쳐요?’ 이렇게 나와요. 빅뱅에서부터 반도체까지 쭉 엮으니까 처음 빅뱅엔 지구과학 선생님이 들어가야 될 성싶은데 조금 가르치다보면 DNA가 나오니까요.
이 과목을 필수 교과로 해야 하냐는 토론이 벌어졌는데 두 분께서 다 필수로 안 하겠다고 나오는 바람에 필수가 안 되었어요. 통합과학 교과서는 외우는 과학이 아니라 우주의 역사부터 생명의 역사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교과서였어요. 그런데 필수 교과가 되면 4지 선다형 문제를 만들어야 하니 외우는 과목으로 다시 전락하게 되겠죠. 그래서 두 분께서 그럴 수는 없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선택과목이 되니까 아무 고등학교에서도 채택을 안 해요. 지학, 생물, 물리, 화학 다 있으니 가르치기 힘든 과목이니까요. 그런 상황을 알고 교육 위원으로 있으니 정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죠.
우리나라 교육은 정말 문제가 있어요. 우리나라에도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인재들을 키워내기 위한 교육 제도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저희도 교수님 생각에 동의합니다. 교육과정이 또 바뀌거든요. 수학을 잘하는 이과 학생은 수학에만 집중하도록 쉬운 국어 시험을 보고, 문과 학생은 반대로 국어나 영어에 치중하고 수학은 쉬운 문제를 풀어라 하는 식이고 사회와 과학은 성적에 거의 안 들어가도록 비중을 줄이게 되었습니다. 갈수록 문, 이과 장벽이 높아지는 듯합니다.
강의할 때 가끔 우스갯소리처럼 하지만 우리 교육은 중학교 때 대충 결정 되지 않아요? 중학교 때 글 한번 써서 냈는데 영 아니야. 그러면 선생님이 ‘야. 넌 글이 안 되네. 너 이과가라’ 중학교 때 수학시험 잘못 보면 ‘야 너 수학이 그래가지고서는, 너 문과가라’ 한다고요. 우리는 못 하는 걸 가르쳐 주려는 생각은 안 하고, 못하는 걸 피해가라는 교육을 합니다. 이게 무슨 교육이에요. 나는 아예 인권의 문제라고 말할 작정이에요. 배움은 국민의 권리인데 배울 권리를 박탈당하는 거 아니에요. 모든 분야를 다 배울 수 있는 권리가 일단은 모두에게 있어야 해요.
전 국민이 다 미적분을 할 필요는 없지요. 그렇지만 배울 권리는 다 줘야 합니다. '자 넌 이과니까, 수학이나 하고, 영어 하지 마.' 그래서는 배울 권리를 박탈하는 거예요. 다 배운 다음에 잘하는 분야를 더 잘 하도록 도와주는 교육이 되어야지요. 우리는 지금 일단 잘라낸 다음 교육을 하는데 그건 아니에요. 잘 할 수 있는 부분을 더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플러스 교육을 해야 해요. 하지만 우리 교육은 완전히 마이너스 교육을 하고 있어요.
모든 걸 다 배워야 합니다. 다시 말해 모두가 다 이과 교육을 받아야 해요. 지금 우리나라 교육처럼 '아예 너는 하지 않아도 돼‘이 이러는 것은 안돼요. 문과 이과 장벽을 없앤다는 말은 양쪽을 다 배운다는 뜻이고 양쪽을 다 공부한다는 건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이과 교육 하자는 뜻이에요. 그렇다 해서 안 되는 공부를 억지로 시키는 교육도 문제가 있어요. 모두가 이과 교육을 받되 좀 더 현실적으로 흥미롭게 배울 수 있는 과목을 만들어 가야죠.
모두가 이과 교육을 받는 만큼 문과 교육도 받으면 적절하겠지요.
네. 골고루 배울 수 있는 틀을 열어놓아야지요. 지금 우리처럼 교육하면 괴짜도 안 나오고 문과면 문과 이과면 이과인 반편이만 나와요. 이건 말이 안돼요. 다 열어놓고 괴짜도 수용하고, 아주 기가 막힌 것도 만들어낼 수 있게 해야지, 지금처럼 그냥 장벽 닫아놓고 ‘넌 이쪽 넘지 마 이런 식으로’ 가르치는 일은 옳지 않아요.
저는 수학을 잘 못해서 서울대에 두 번이나 떨어졌어요. 수학을 못 하면서 과학자가 되었다니 참 말이 안 되는 이야기죠. 하버드 대학 박사과정 시절에 수학과에 가서 학부생과 같이 앉아 수학 공부를 다시 했어요. 수학과에 가서 ‘여차저차 해서 수학을 못 하는데 수학적 사고를 안 하고는 공부를 해내리라는 자신이 없어서 뭔가를 배워야 하겠는데 어떡하면 좋겠느냐’ 했더니 기가 막히게 잘 가르치는 선생을 지목하면서 그 분 수업을 들어라 하기에 일 년짜리 강의를 들었어요.
처음 그 분을 찾아갔더니 ‘들어와라. 그런데 조건이 있다. 제일 앞줄에 앉을 것. 그리고 관조하지 말 것. 수학은 가만히 앉아 감상하는 학문이 아니다. 숙제 다 하고, 시험 다 보고, 내가 채점 다 하겠다. 다만 너는 학점을 못 받는 거다. 해줄 필요 없는데 내가 다 해 주는 거야. 나만 손해야.’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1년을 학부생들하고 앉아 매일 숙제하고, 시험 다 보고, 채점 받고, 틀린 문제 다 봐가면서 1년을 공부했지요.
그런데 그 분께 수업을 들으면서 ‘야, 저 사람이 내 고등학교 수학 선생이었으면 난 지금 수학 전공한다.' 하는 생각까지 했어요. 이론을 설명하는데 수학이 재미있더라고요. 지금은 수학 공식이 들어간 논문도 써요. 외국 친구들은 내가 일종의 수학 진화생물학자로 알기도 해요. 내가 수학 때문에 대학 떨어졌던 사람인데, 뒤늦게 배운 수학으로 그게 가능합니다.
우리나라 수학 교육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학교에서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한 수학을 가르치자는 것이 아니잖아요. 수학의 철학을 가르치고 수학적 사고를 가르치는 것이지요. 이 세상을 수학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키워주자는 건데, 그건 문제풀이 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통섭학자, 책벌로만 알고 있었던 선생님께서 교육 문제에 이렇게 큰 관심이 있으신 줄은 몰랐다. 우리나라 교육을 거친 학생으로서, 우리 교육이 통섭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에도 많이 공감했다. 그렇다면 선생님의 교육은 어떨지? 선생님은 강의실 학생들에게 어떤 요리를 선보일지 궁금했다.
선생님께서도 직업으로 가르치는 일을 하십니다. 책에서도 ‘고통 없이 배우는 것처럼 훌륭한 가르침이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수업 때 학생들을 가르치실 때 어떤 노력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제 수업만 말한다면, 가능하면 일방적인 가르침은 피하려고 애써요. 수업이나 강의는 별로 하지 않습니다. 될 수 있으면 학생들이 스스로 배우도록 합니다.
이대에서는 ‘우연회’라는 걸 만들고 다 자발적으로 공부하게끔 해요. 이대 출신 국회의원들이 많잖아요. 학생들에게 ‘선배들이 여의도에 계신 분들이 많으니, 이번학기에 내가 전부 국회의원으로 뽑아주겠다. 너희는 다 국회의원이다. 그런데 국회의원은 시켜줄 수 있지만 보좌관은 못 준다. 그러니까 자기가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해야 한다. 국회의원은 위원회 소속이 되어야 한다. 국방위원회나 교육위원회 같은 위원회를 만들어라’ 하면 자기들끼리 위원회를 만들어서 굉장히 재밌는 일을 해요.
학기말에 가서는 학교에서 제일 복잡한 곳에 3일 동안 포스터를 전시해요. 우리가 그 동안 해온 활동들 전시하면서 토론하는 자리를 만드는데 학생들이 굉장히 재미있어 해요. 그린 캠퍼스 위원회라고, 학교 캠퍼스를 어떻게 자연 친화적으로 바꿀까 찾는 친구들도 있고 물 대책 위원회도 있고... 하여간 굉장히 다양하게 위원회 활동들을 해요.
작년부터는 또 어쩌다 일본과 연결이 되어서 학기가 끝난 다음 각 위원회에서 한 명씩 선발을 해서 일본에 보내줘요. 포스터를 말아서 일본에 가 고베대학에서 또 거기 친구들과 같이 포스터 전시하고 거기서 환경문제로 주민들과 같이 하는 그런 일 하고 토론하고 오게끔 하죠. 고베대학은 현지 경비를 대고 제가 비행기 표를 다 사요. 학교에서 돈을 안 주니까요. 비행기 값은 제가 여기 앉아서 고베대학에 원격으로 강의를 해 주고 받는 돈으로 해결합니다. 학생들이 굉장히 좋아해요.
수업은 ‘이런 일들을 하려면, 어떤 기본지식이 있어야 될까’하는 정도로 다양하게 사회과학적으로 또 생태학적으로 볼 수 있게끔 기본적으로만 해서 한 학기에 한 열 번을 안 하는 것 같아요. 그 정도만 군데군데 해주고 나머지는 외부 강사들 끊임없이 불러다가 ‘기획이란 무엇인가’ 이런 강의를 할 때도 있고 ‘자연 미술’을 하는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도 불러오고 ‘자연에서 뭘 볼 건가’로 사진하는 사람 불러다가 수업을 받고, 다큐멘터리 영화 찍는 사람도 불러와요.
한 학기 수업하고 나면 이 방에서 종강 파티를 하는데 다들 와서 너무 흥분해요. 그 후에 갑자기 전공을 바꾸더니 NGO 활동으로 나간 친구도 있다니까요.
그런 게 훨씬 효율적인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건 교과서에 다 있고 인터넷 잘 뒤지면 내가 한 시간 동안 떠드는 내용보다 훨씬 많이 알게 되는데 그걸 뭐 할 필요가 있겠냐 싶어요. 그래서 주제만 던져주곤 합니다. 그 다음 자료 찾기도 점수로 하기도 하지요. 인터넷 뒤지고 책 뒤지고 도서관을 뒤지고 해서 누가 더 많이 유용한 자료를 많이 올렸나 보는 겁니다. 그걸 그냥 올리는 건 아니잖아요.
매 강의마다 24시간 이내에 강의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한 페이지로 정리해서 내라고 하니 수업 들으려면 바쁘지요. 그러다 보니 이 수업을 위해서 계속 무언가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자기가 직접 하니까 굉장히 많은 걸 배운다고 해요. 난 그 배움을 믿어요. 그렇게 되도록 수업을 하려고 합니다.
학생들을 식탁에 앉혀놓고 요리를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요리를 하도록 하는, 최재천 선생님다운 수업이었다. 자신의 결과물을 갖고 다른 나라 학교에도 갈 수 있는 선생님 의 제자분들도 부러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