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1장 「하루에 두 번 런던에 간 사람」 중에서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에도 승객들은 대화를 피했다. 통근자들과 일반 철도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침묵의 규약이 신속하게 발전했으며, 이것이 마피아의 비밀 유지 서약만큼이나 잘 준수되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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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규약이 깨질 때도 있었다. 대부분의 철도 회사가 음주를 금지했고, 이를 위반할 경우 (강제력까지는 없는) 벌금을 부과했지만,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종종 아침 식사 때 술을 마셨기 때문에 일터로 갈 때 혀가 자유롭게 풀리기도 했다. 이런 경우 일종의 안전장치 규약이 작동하게 마련이었다. 열차에서의 대화는 어디까지나 열차에서 끝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철도 여행자 안내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차에서 맺은 친분은 여행과 함께 끝나게 마련이며, 설령 여러분이 누군가와 마치 20년은 알고 지낸 사이처럼 자유로운 대화를 나누었다 해도, 나중에 길에서 상대방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는 행위는 정당화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퉁명스러운, 또는 신랄한 대답”에 사용되는 갖가지 어휘는 물론이고 “이의 제기나 불만을 나타내는 툴툴거리는 표현도 여러 가지”가 있어서, 숙련된 통근자라면 이것들을 이용해 수다스러운 사람을 침묵하게 만들고 상대방의 괴롭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원치 않는 대화를 피하는 최고의 방어 수단은 책이나 신문이었다. 당시에는 “기차 타는 사람은 책을 읽게 마련”이라는 격언까지 있었다. 영국에서 철도는 문자 이용 능력의 급증을 야기한 요인으로 평가된다. 대부분 승강장에는 신문이나《브래드쇼 월간 철도 안내서Bradshaw’s Monthly Railway Guide》 같은 여행 안내서를 판매하는 소년들이 있었고, 상당수의 기차역에는 제동수 출신의 장애인이나 사망한 제동수의 아내가 운영하는 매점이 있어서 로맨스 소설과 모험소설을 판매했다.
―이언 게이틀리, 『출퇴근의 역사』, 박중서 옮김, 책세상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