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우리가 이제 세 번에 걸쳐서 강의를 하게 되어있지요? 오늘은 ‘좋음과 나쁨’에 대해서, 그리고 다음 강의는 ‘있음과 없음’, 그리고 세 번째 강의는 ‘함과 됨’에 대해서 강의를 합니다. 자, 정말 못살겠으면, 사람들이 못살겠다 하면 들고 일어서지요? 그래서 불란서 혁명도 일어나고 쿠바 혁명도 일어나고, 중국에서도 혁명이 일어나게 되는데, 혁명이 일어날 때 맨 먼저 어떤 조짐이 보입니까?
인문학을 좋아하시고 교양이 높으신 분들은 이런 말들을 들어봤을 거에요. 독일에는 ‘괴테’라는 대문호가 있고, 이태리에는 ‘단테’라는 대문호가 있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셰익스피어’를 빼고도 실낙원을 쓴 ‘밀튼’이 있다. 그런데 불란서에는 누가 있냐? 2급 작가인 ‘빅토르 위고’가 있을 뿐이다. ‘레미제라블’ 보신 분 있죠? 그리고는 나는 괴테가 좋아, 나는 단테가 좋아, 나는 밀튼이 좋아 이러면서, 너네들 밀튼 알아? 단테 알아? 괴테 알아?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불란서 혁명의 도화선이 된 책을 써낸 사람은 ‘빅토르 위고’에요. 그러니까 사회 변혁이 일어나기 전에 반드시 문체 혁명이 일어나고, 그 문체는 서로 힘 있는 사람들이 주고 받던 그 소통의 영역을 넓혀서 보통사람도 알아듣는 말로 시를 쓰고 글을 씁니다. 문체 혁명이 먼저 일어나고 그 뒤에 본격적인 혁명이 뒤따릅니다.
그건 불란서 뿐만이 아니에요. 러시아에서도 ‘푸쉬킨’ 이래로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연달아 나서서 문체혁명을 합니다. 톨스토이가 늙어서 전부 자기 영지에 있던 농노들을 다 해방하지요? 그리고 야스나야 폴랴나에 그 농노들의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열어가지고 교육을 시킵니다. 근데 당시에는 문화의 영향이, 특히 소설이나 이런 것의 영향이라는 것이 굉장히 커서 러시아 상류 사회 사람들은 전부 불란서 말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일상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톨스토이도 대단한 바람둥이고, 대단한 먹물이었지요? 근데 나중에 깨우치고 시골에서 우리에게 먹을 것, 입을 것, 잠자리 다 대주는 이 사람들의 아이들을 제대로 길러내야 러시아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교육을 시키려고 합니다. 자기가 쓴 글들, 『부활』이라던지, 『안나 카레리나』라든지 그 다음에 뭐 『전쟁과 평화』, 그 중에서 쉬운 것을 읽히려고 하는데 아이들이 못 알아들어요. 그래서 러시아 옛 이야기 민담을 실제로 그것을 채록해가지고 그걸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러니까 알아들어요.
그리고 그 아이들을 위해서 뒤늦게 여러 가지 외국어를 배웁니다. 스페인어도 배우고, 이태리어도 배우고, 배워가지고 거기서 이태리 옛 이야기, 스페인 옛 이야기, 뭐 이런 식으로 그거를 번역해가지고 아이들에게 러시아어로 읽어주고 들려줍니다. 그렇게 의식을 일깨웁니다.
중국 혁명, 공산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문체혁명을 누가 앞장서서 이끌었어요? 루쉰이죠. 루쉰은 당시 서양 문물이 먼저 들어와 발전한 일본으로 유학을 가지요. 거기서 의술을 배우려고 의과대학에 갑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까 ‘아, 중국에 실제로 무지몽매한, 정말 우리 말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그런 사람들이 천지인데...’ 근데 낫은 기역자 배우라고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니죠. (일동 웃음) 어쨌든 ‘이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것이, 마음의 병을 고쳐주는 것이 몸의 병을 고쳐주는 것보다 앞선다.’ 이렇게 생각을 해서 당시의 지배계급에 대해 통렬하게 공격하는 글을 아주 쉽게,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글로 써내죠. 그런 문체혁명의 징검다리를 건너서 중국 혁명이 일어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러려고 했었던 시기가 있었죠? 비록 그 당시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해가지고 한문으로 쓰기는 했지만,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그리고 이옥 같은 사람. 그 나름으로 그 시대의 ‘공자왈 맹자왈’하고, 사서삼경을 바른 글로 생각하는 그 풍조에 맞서서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 (했습니다.)
연암 박지원이 『열하일기』를 썼던 시대가 어떤 시대냐 하면, 중국에서 청나라에 세 현군이 나타나죠. 처음에 『강희대전』을 만들고 모든 문물을 정비한 ‘강희’가 있었고, 그 다음에 ‘옹정’, ‘건륭’. 건륭 황제 70세 생일을 맞이해서 박명원을 정사로 하는 축하사절이 가는데, (박지원이) 박명원의 팔촌 동생이니까 따라가지요. 그 때는 ‘한족이 다스리던 명나라가 우리가 진정으로 섬기는 나라이지, 되놈들이 다스리는 나라에 우리가 무릎을 꿇을 수가 없다’고 생각해가지고 사신들이 중국 황제한테 엎드려 절을 하면서도 발가락은 요렇게 세워가지고 절을 하고 나서 우리나라에 돌아와서 그거를 자랑합니다. ‘나는 발가락을 세우고 절을 했어.’ 그게 말이 되나요?
그런데 연암 박지원은 얼마만큼 청나라가 그 당시에 유럽 문물들을 받아들여가지고 개화했는지를 알죠? 벽돌 하나, 거중기,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리는 거 하나 놓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그걸 가지고 우리나라도 제대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결국 실패로 돌아가죠.
정조가 어떤 임금입니까? 대단한 임금이죠? 영·정조 시대를 우리나라가 새로운 시대의 기틀을 만들려고 애썼던 시기라고 봅니다. 그런데 문체반정을 해요. 옛 문체로 돌아가자는 겁니다. 그렇게 우리나라는 실제로는 새로운 기운이 짓밟히고 짓눌려가지고 제대로 된, 우리 힘으로 된 사회변혁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지난 이명박 정권 때, 실제로는 모든 보수 단체,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죄다 모였죠? 우리 역사상 해방 이후로 역사상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일치단결한 예가 한 번도 없었어요. ‘알튀세르’라는 불란서 철학자 말에 따르면, 국가는 두 가지 기구를 이용해서 통치를 하죠. 다스립니다. 정치라고 그럴 때, ‘治’(다스릴 치)라고 하는 것은 다사롭게 감싼다는 뜻도 있고, 다 살린다는 뜻도 있습니다. 바른 정치라는 것은 따뜻하게 백성들을 감싸서 다 살리는게 바른 정치입니다.
근데 지난 대선 때, 국정원장이 국정원이라는 국가 기구를 이용해 불법 선거운동을 했다고 해가지고 말썽이 되고 있습니다. 알튀세르가 이야기한 국가 기구 가운데 두 가지가 있습니다. 민중들을 통치하는데, 두 가지 수단으로 통치한다고 그러죠. 하나는 폭력적인 국가기구, 경찰, 검찰, 법원, 군대, 국정원까지. 폭력적인 국가기구를 통해가지고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강제를 가해서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서 통치를 합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안 되니까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를 또 동원한다고 그러죠. 이념적인 국가기구. 그것이 뭡니까? 제도교육. 학교, 그 다음에 언론, 교회까지 포함해서. 이념적인 세뇌를 통해서 통치 질서를 확립하려고 하는, 그런 두 가지 수단을 사용합니다. 폭력적인 국가기구와 이념적인 국가기구. 그런데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이제까지 한번도 지난 이명박 정권 때처럼 완전히 통합된 적이 없어요. 완전히 이명박 정권이 장악을 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현 정권을 탄생시켰죠?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좋은 세상이냐, 바꿀 것이 하나도 없는 좋은 세상이냐? 아니라는 거 분명하지요? 아니라는 것이 분명한데, 그러면 어떻게, 무엇을, 무엇부터 바꾸어낼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