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에이치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가장 널리 알려진 역사(학)입문서이다. 어떤 맥락에서 그 말이 나왔는지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말이 인용되는 바로 그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예전에 몇 번 읽은 적이 있다. 이번에 나온 개역판을 굳이 사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으나, 혹시 역자가 “17년 만에 다시 번역을 내놓으면서” 역자후기에 어떤 새로운 발견을 적어두지 않았을까 하여 다시 읽기로 하였다. “개역판 역자후기”에 이런 말이 있었다: “개역을 하기 위해 다시 읽어보니 첫 번째 번역할 때와는 달리 E. H. 카의 이 책은 단순히 역사와 역사학을 이론적 학문적으로는 설명하는 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매개로 당대의 서구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수구적인 담론과 냉전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면서 그것에 대항하고 있는 매우 논쟁적인 책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카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강연 ─ 1961년 1월부터 3월 ─ 을 하면서 무엇에 대항하려 했던 것인가. 그는 제2판을 출간하기 위해 써놓은 서문에서 자신이 대항하려는 것들을 “진보에 대한 모든 신념과 인류의 더 나은 진보에 대한 모든 전망을 어리석은 것이라고 배제해버리는 오늘날의 회의주의와 절망의 조류”라 밝히고 있다. 역자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그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강연했던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시즘이라는 공동의 적에게 맞서 협력했던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상호 대립하거나 공존하면서 경쟁하고 있던 냉전기였다. 이 냉전기에 영국을 비롯한 서구의 엘리트 지식인들은 사회의 위기를 부추기고 회의주의를 전파하면서 더 민주적이고 더 평등한 사회를 향한 역사의 변화를 부정하려 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당대의 서구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집단에 봉사하고 있었다. 이러한 지배 이데올로기에 저항해야 할 긴급성과 필요성이 노년에 접어든 카로 하여금 ‘역사’를 화두로 삼아 강연을 하고 책을 펴내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카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 — 정확하게 인용하면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정, 현재와 과거의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d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 — 라 규정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역사가는 과거 사실을 취사선택하여 역사를 서술하는데, 이러한 서술은, 역자에 따르면, “현재의 역사가들이 가지고 있는 현실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에 따라 구성되며, 과거의 사실들이 어떠했는가보다는 역사지식을 생산하는 역사가가 현재의 사회와 현실에 대해서 어떤 문제의식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정말 그러한가. 카가 예로 드는 것들을 보자.
테오도르 몸젠Theodor Mommsen, 1817 - 1903의 로마사에는 “로마 공화정 이후의 역사”가 담겨 있지 않다. 왜 그러한가. 몸젠은 “굴욕적이며 지리멸렬한 1848-1849년의 독일혁명에 환멸을 느낀 독일의 자유주의자였다. 1850년대 ─ 현실정치Realpolitik라는 용어와 개념이 탄생했던 시기 ─ 에 글을 썼던 몸젠은 독일인들이 그들의 정치적 열망을 실현하지 못한 채 남겨놓은 그 혼란을 깨끗이 청소해줄 강력한 인물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몸젠의 이러한 열망은 그의 책에서 “카이사르를 이상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가 자신의 시대에 대해 가졌던 소망이 카이사르로 투영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몸젠의 서술은 거기까지였다. 강력한 인물이 출현하였을 때 일어날 일들은 그가 활동하는 기간 중에는 아직 현실적인 것이 아니었던 까닭에 몸젠은 “시간”, “기회와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로마제국의 역사를 쓰지 않았던(또는 못했던) 것이다. 폴란드 출신의 영국 역사가 루이스 네이미어Lewis Namier, 1888 – 1960는 “변화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결합되기 시작했고 그래서 보다 나쁜 것에로의 변화로도 생각될 수 있었던 그런 시기” 즉 “보수주의적 사고방식이 부활하는 시기”에 등장했던 역사가이다. 그는 “어떠한 이념도, 어떠한 혁명도, 어떠한 자유주의도 없었던 시대”에 대해 썼고, “1848년의 유럽혁명 ─ 실패한 혁명, 고양되고 있던 자유주의의 희망들을 전 유럽에 걸쳐 좌절시킨, 그리고 무력 앞에서의 이념의 공허함과 군대와 맞섰을 때의 민주주의자들의 공허함을 증명한 그 혁명 ─ 에 관한 심층적인 연구”를 통해, “참담하게 실패한 그 혁명을 ‘지식인의 혁명revolution of intellectuals’이라 부름으로써”, “정치라는 과업에 이념이 침투하는 것은 무력하고 위험스럽다”는 교훈을 제시하려 했던 것이다.
카가 제시한 사례들을 살펴보았으니 이제 카 자신은 이 책을 쓸 당시에 어떠한 문제의식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는 어떠한 역사의 산물인지 ─ 그에 따르면 “역사가는 역사책을 쓰기 시작하기 이전에 이미 역사의 산물”이다 ─, 더 구체적으로는 그가 어떤 경과를 거쳐서 “인류의 더 나은 진보에 대한 전망”을 가지게 되었는지 검토해보기로 하자. 카는 이 책 마지막 장 “지평선의 확대”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20세기의 세계가 통과하고 있는 혁명적 변화”에서 나타난 “몇 가지 중요한 징후들”을 추려낸다. 경제에서는 “자유방임경제에서 관리경제로의 이행”이 일어남으로써 “비인격적인 법칙과 과정이라는 환상”이 사라졌으며, “인간이 이성의 의식적 발휘를 통해서 자신의 환경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마저도 변화시키기 시작”했으며, “기술과학 혁명이 사회의 모든 수준에서 이성의 활용을 증대시키라고 강요”하고 있다. 이 시대는 “이성의 확장이라고 부르고 싶은 그 혁명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으며, “이성이 기존질서의 전제들에 종속되는 것은 결국에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시대이다. 이 시대는 “학문에서든 역사에서든 사회에서든, 인간사에서의 진보는 기존질서의 점진적인 개선을 추구하는 일에 스스로를 제한[그는 이러한 시도의 사례로 칼 포퍼의 “‘점진적 사회공학’이라는 처방”을 든다]시키지 말고 현존질서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이 의지하고 있는 공공연한 또는 은폐된 전제들에 대해서 이성의 이름으로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했던 인간들의 그 대담한 자발성을 통해 주로 이루어진 것”을 분명히 목격한 시대이다. 이렇게 보면 카는 분명 “낙관론자”이다. 그는 “격동하는 세계, 진통하는 세계를 내다보”면서도 이처럼 이성의 진전을 낙관한다. 이러한 낙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도, 카의 역사관에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이 책은 여전히 역사(학)에 관한 좋은 입문서이다.
남은 물음. 카의 낙관론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기억하기로, 그는 전 간기 국제정치의 역학을 다룬 저작 등에서 소극적으로는 사회주의적 관심에서 제기된 자유방임주의 비판을 국제정치학에 투사하여 국제정치를 자유주의 관념으로 재단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의 파탄을 해부하는 하는 한편, 적극적으로는 총력전이 갖는 사회변혁 작용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로부터 전시통제경제와 지역주의(또는 광역질서론)를 토대로 삼으면서, 이것에 형해화한 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현실주의적 비판을 결합하여 이윤동기를 넘어선 공동선의 협동체 윤리를 제창한 바 있다. 얼핏 유토피아처럼 보이는 그의 이러한 신념이 전 간기를 지난 1960년대에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고, 이것이 그의 낙관론의 근거였던 것일까?
우리 시대의 역사가는 어떤 시대에 대해서 쓸까? 카의 논지를 받아들인다면 이는 다음의 물음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시대에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