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관. 취향의 방
평일에는 세관원,
주말에는 화가였던 남자
앙리 루소,
〈뱀을 부리는 주술사〉
화가 루소는 늘 일요일에 그림을 그렸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 일찍 취업했고 군대 복무 중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집안을 책임지기 위해 말단 세관원으로 일한 그는 화가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쉬는 날이면 루브르 박물관에서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하며 그림 실력을 쌓았다. 그래서 그는 일하지 않는 일요일에만 그림을 그린다고 ‘일요 화가’ 또는 ‘세관원 화가’라고 불렀다. 실제로 더 많은 이가 ‘화가 루소’보다 ‘세관원 화가 루소’라고 불렸다.
그가 자신의 작품을 사람들에게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한 것은 41세가 되던 1885년부터다. 호기롭게 살롱전에도 작품을 출품하지만 기성 교육을 받은 화가들의 전쟁터에서 주목받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독립 미술가전을 통해 작품을 선보인다. 물론 작품은 팔리지 않았다. 하지만 루소는 1893년 급기야 20년이 넘게 해오던 세관원 일을 그만두고 50세가 다 되어 전업 화가의 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더욱 왕성한 작업을 이어가지만, 그의 무모할 정도로 용기 있는 선택에 응원보다는 비웃음 섞인 평가가 훨씬 더 많았다. 언론에서는 그의 그림을 두고 “실없이 웃음이 나온다”, “단돈 3프랑으로 기분 전환하기 좋은 그림” “손을 대지 않고 그림을 그린다는 소문이 있던데 어떻게 그림을 그리는지 궁금하다”라는 평을 내놓았다.
파리의 식물원에서 발견한 정글
루소의 작품은 살아생전 소수의 후배에게만 지지를 받았을 뿐 다른 이들은 대부분 야박하다 못해 모멸감을 느낄 정도로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매년 독립 전시회에 1점 이상의 작품을 출품하며 정글 시리즈로 이름을 조금씩 알린다.
정글 시리즈 중 하나인 〈뱀을 부리는 주술사〉를 살펴보자. 어디인지 모를 정글의 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보름달이 떠오르고 달빛을 등져 실루엣만 보이는 여인이 피리를 분다. 우거진 숲이 마치 천국의 모습과도 비슷해 여인을 이브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피리 소리에 깨어난 뱀들과 종을 알 수 없는 새들, 한포기 한포기 그려진 풀들이 연주를 듣기 위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여인 곁으로 모여든다.
여인의 피리 소리와 강물에 비치는 달빛, 우거진 수풀로 표현된 정글은 마치 꿈속에서 보고 있는 듯하기도 하고 동화의 한 장면이 시작되는 것 같기도 하다.
루소는 〈뱀을 부리는 주술사〉를 비롯해 특유의 환상적 순수, 원시적 상상력이 드러나는 정글 시리즈를 약 25점 이상 그렸다. 이 시리즈에서는 원근법이나 비례 같은 사실주의 기법이나 빛의 효과를 표현하는 인상주의 기법 등 기존 화가들이 표현하려 한 그 어떤 방식도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더욱 루소만의 독창성이 빛을 발한다.
루소가 왜 정글 시리즈를 그렸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아마 프랑스의 멕시코 원정에서 살아남은 군인들을 만나 그들에게 열대 우림 지역 이야기를 듣고 개인적 흥미가 생긴 것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그런데 그는 이 시리즈가 알려지자 사람들에게 군대에 있을 때 멕시코와 정글을 다녀왔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런 그의 이력을 듣고 독특한 화가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루소는 살아생전 프랑스 밖으로 여행해본 경험이 전혀 없었다. 자존감이 높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망상에 사로잡힌 인물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는 파리의 식물원에서 이국적인 식물들을 관찰하고, 동물을 박제해 만든 전시관을 들락거리며 열심히 상상의 날개를 펼쳐 스케치로 옮겼다.
정글 시리즈 중 〈굶주린 사자가 영양을 덮치다〉가 가장 먼저 빛을 본다. 1905년 가을 살롱전(정부 주도 살롱전이 아닌 비영리 예술가 협회가 1903년부터 시작한 독립 살롱전)에 출품한 이 작품이 7번 전시실에 걸려 있었다. 같은 공간에 앙리 마티스, 모리스 드 블라맹크 등 젊은 화가들의 작품이 함께 전시되었다. 전시실의 작품을 관람한 평론가 루이 보셀은 마치 야수의 우리에 갇혀 있는 도나텔로 같다는 말을 사용해 ‘야수파’라는 명칭을 탄생시킨다. 물론 루소는 야수파와 함께 길을 걸은 화가는 아니었지만, 그도 이름을 알릴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다음 해 ‘그의 눈에 들면 유명해진다’라고 알려진 화상 볼라르가 루소의 작품을 구매하면서 그에 대한 평가도 조금씩 유해진다. 그리고 루소는 본격적으로 정글 시리즈를 그리기 시작한다.
누구의 인정을 받지 않아도 행복한 예술가
정글 시리즈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루소의 말년 3년 정도에 그친다. 그는 오히려 활동 기간 동안 대부분 괴짜 화가 정도의 평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세상이 뭐라 떠들어도 루소는 자기애가 강했다. 스스로 자신의 스승은 자연뿐이라 말하고 다녔고, 자신이 프랑스 최고의 사실주의 화가 중 한 명이라고 직접 소개했다. 실제로 그는 1897년에 〈잠자는 집시〉를 그린 후 굉장히 만족해서 고향 라발의 시장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자신을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화가라 소개하고 〈잠자는 집시〉의 구매를 권한다. 그러면서 그림 값으로 1,800프랑 ― 비슷한 시기에 산 에밀 졸라, 세잔, 피카소가 남긴 기록에 의하면 그들의 한 달 생활비가 대략 125~150프랑이었다 ― 정도를 받고 싶다고 전했지만 당연히 시에서는 아무 답변도 받지 못했다.
또 다른 일화도 있는데, 한번은 루소가 사기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받던 중 재판관에게 자신이 유죄 판결을 받으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예술 그 자체일 것이라며 자신과 예술을 동일시하는 변론을 했다.
이렇게 자기애가 강한 화가들은 자화상으로 자신에 대한 인상을 드러낸다. 그도 1890년에 〈나 자신, 초상-풍경〉이라는 작품으로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화가인지 표현한다. 붓과 팔레트를 들고 베레모를 쓴, 누가 봐도 화가인 인물이 그려져 있다. 자신의 인자한 인간적 성품을 표현하고 싶었던지 팔레트에는 사별한 첫 부인 클레망스와 현재 부인 조세핀의 이름을 나란히 적었다. 또 비례를 무시하고 인물을 그림의 3분의 2 정도 크기로 그려 배경보다 화가를 더 강조했다. 배경에는 새로운 시대를 표현하는 철제 다리와 만국 박람회에 참여한 나라들의 국기를 단 배, 막 지어진 에펠탑을 그렸다. 마지막으로 푸른 하늘과 구름, 구름 속의 해로 프랑스 국기의 삼색을 표현했다. 신문물을 통해 자기 자신을 새 시대 화가의 표상으로 표현하면서 조국 프랑스에 대한 자부심도 잊지 않은 듯 애국심까지 꼼꼼하게 챙겼다. 이 정도면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행복한 예술가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은 꿈꾸는 자의 것
앙리 루소의 그림을 가장 좋아하던 이들은 새로운 예술을 꿈꾸던 청년 예술가들이었다. 가장 먼저 초현실주의 시인 알프레드 자리가 루소의 원시적이고 아이같이 풍부한 상상력을 높이 평가했다. 이후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 입체화 화가 로베르 들로네, 피카소 등이 그와 인연을 갖게 된다. 이들은 당시 아프리카 조각에서 새로운 예술을 찾고 있었고, 루소의 작품에서 때가 묻지 않은 원시성을 발견하여 그를 ‘순수한 원시인’이라 부르며 호감을 표시했다. 특히 이미 이야기한 〈뱀을 부리는 주술사〉는 로베르 들로네의 어머니가 인도의 여름밤을 그려달라고 주문한 것을 루소만의 상상력으로 답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루소의 작품을 “살롱전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작품들”이라고 평가한 피카소는 평소에도 그의 작품을 수집하고 다른 이들에게 소개한다. 대표적인 일화로 어느 날 루소가 그린 초상화를 화상이 아닌 어느 골동품점에서 발견해 구매한다. 이를 축하하기 위해 자신의 몽마르트르 아틀리에에 작품을 걸어두고 친구들을 초대해 ‘루소의 밤’을 개최한다. 파티장을 루소의 그림 속 정글처럼 포도 잎으로 꾸미고, 그를 위한 의자와 왕관도 준비한 후 찬사를 바쳤다고도 전해진다. 그리고 초대받은 루소는 피카소에게 우리는 둘 다 이 시대의 최고의 화가이며 피카소는 이집트 양식에서, 자신은 현대적 양식에서 뛰어나다고 평했다고 한다. 어찌 보면 당황스러운 대답이지만 젊은 예술가들은 그런 루소에게 더욱 매력을 느꼈다.
하지만 루소의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고, 피카소와의 만남 이후 2년 뒤인 1910년 그는 병을 얻어 66세의 나이로 생을 마친다. 살아생전 알아주는 이들이 얼마 없었던 예술가였기에 그의 장례식에는 단 7명만이 참석했을 정도로 소박했다. 하지만 그를 좋아하던 입체파 화가들은 루소의 조각조각 그려 붙인 것 같은 화법에서 콜라주 기법을 발전시킨다. 동화적이고 몽환적인 정글 시리즈는 초현실주의 화가에게도 영감을 준다. 그리고 예술이란 교육받은 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자신만의 언어가 있다면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는 선례를 남기며 현대의 예술가들에게도 여전히 용기와 영감을 주고 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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