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개싸움에서
지적 토론으로 가는 길
생각이 전혀 다른 사람과 어떻게 하면 의사소통을 잘할 수 있을까? 갈라지고 양극화된 시대에 사는 우리는,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과는 대화를 잘 나누지 않는다. 그에 따른 부작용은 막대하고 심각하다. 진솔한 발언이 위축되고, 공동의 문제가 풀리지 않고, 인간관계가 틀어진다. 약 20년 전, 이 책의 공저자 피터는 적극적 우대조치(여성이나 소수자에게 입학이나 취업 등에서 혜택을 주어 그 집단이 사회적으로 받아 온 불이익을 보상하고자 하는 조치. 한국의 경우 농어촌 학생 특별 전형이나 지역 균형 선발 등이 있다-옮긴이)를 놓고 직장 동료와 대화를 나눴다. 직장 동료는 자신을 진보주의자라 밝힌 백인 여성이었는데, 이름은 SDL이라 하겠다. 논란이 많은 주제이니만큼 분위기가 금방 후끈 달아올랐다. 그러더니 아니나 다를까. 곧 대화가 악화 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그 대화를 옮겨본다.
SDL: 적극적 우대조치가 공정하다는 걸 절대 인정 안 하시네요.
피터: 네, 공정하지 않으니까요. 누구한테 공정하죠?
SDL: 말했잖아요. 오랫동안 소외됐던 집단이요. 아프리카계 미국인처럼요. 그런 사람들은 시작부터 불리하잖아요. 우리가 누렸던 기회를 똑같이 누리지 못했다고요.
피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왜 결과를 인위적으로 바꿔야 하죠?
SDL: 똑같은 말만 계속하시네요. 같은 미국인인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으니까요. 그 사람들처럼 고생을 안 해봤으니 아실 리가 없죠. 좋은 학교 나오셨으니 그 사람들이 날마다 겪는 문제를 손톱만큼이나 겪어봤겠어요?
피터: 그 말이 맞는다고 합시다. 제 생각은 다른데, 일단 맞는다고 하죠. 그럼, 적극적 우대조치가 과거에 행해진 불의를 바로잡는 수단이 된다는 근거가 뭐죠?
SDL: 근거가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당연히 옳은 일이니까···.
피터: 근거가 없다는 거죠? 근거는 없지만 옳다고 철석같이 믿으신다는 거네요.
SDL: 제 말 좀 들어보실래요?
피터: 듣고 있어요. 어떻게 근거 없이도 그렇게 믿음이 확고할 수 있는지 궁금해서 그래요. 클래런스 토머스Clarence Thomas(아프리카계 미국인이며 1991년부터 현재까지 연방대법관으로 재직 중인 인물이다. 진보 성향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대법관이 퇴임하자 그 자리에 조지 부시 대통령이 임명했다. 매우 보수적인 신념과 판결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옮긴이) 덕분에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살기가 더 좋아졌나요? 그 사람이 연방대법관을 해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한테 더 도움이 됐나요? 아니면 진보적인 백인 남성이 그 자리에 앉았더라면 더 도움이 됐을까요?
SDL: 와. 진짜 짜증난다. 학생들 가르치는 교수 맞으세요?
피터: 짜증 나신다니 유감이네요. 간단한 질문에 그렇게 짜증이 나신 걸 보니 본인 생각을 변호하기가 쉽지 않은가 봐요.
SDL: 학생들한테 뭔 가르치세요?
피터: 제 학생 아니시잖아요. 그리고 그렇게 화내지 마시죠.
SDL: 완전 꼴통이시네. 우리 다시는 얘기하지 맙시다.
맞는 말이었다. 피터는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았다. 짜증 나게 굴었고, ‘꼴통’ 짓을 했다. 그 짧은 대화 중에 상대방의 말을 끊은 것은 물론, 상대방의 말을 ‘하지만’으로 받았다그나마 가장 봐줄 만한 잘못이었다. 또 주제를 마음대로 바꿨고, 묻는 말에 답하지 않았다. 피터는 상대방을 눌러 이기고, 더 나아가 상대방이 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드러내 망신을 주겠다는 목표를 추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대화는 엉망이 되었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눌 기회조차 사라지고 말았다. SDL은 결국 대화를 거부하고 자리를 떴다. 그만큼이나 대화를 해준 것도 다행이었다.
종교관, 정치관, 가치관 등이 전혀 다른 사람 간의 대화란 원래 쉽지 않은 법이다. 그러니 피터와 SDL의 대화도 매끄럽게 진행되기는 어려웠지만 그렇게까지 엉망이 될 이유는 없었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데 바람직한 방법은 따로 있다. 분명히 더 나온 대화 방법이 존재하고 우리는 이를 체득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크게 양극화된 문화적 환경에서 생각이 다른 상대와 생산적으로 대화하기는 한층 더 어려워졌다.
피터가 20년 전에 이 대화를 나눈 후로도 사람들 간의 대화는 분열을 거듭했다. 견해차가 큰 사람과 대화하기가 예전보다 훨씬 더 어렵다. 사람들은 끝없이 불신하고 옥신각신한다.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 종교 신자와 무신론자, 미국이라면 민주당 지지자와 공화당 지지자가 서로 다툰다. 이 파와 저 파가 다투고 이 집단과 저 집단, 아니 모든 집단이 서로 다투고, 분노에 찬 수구 세력이나 급진 세력이 어리둥절하고 피로한 중도파와 다룬다.
그 밖에도 여러 의견 차이를 넘어 대화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 편은 갈려 있고 전선은 그려져 있으며, ‘상대편’과 대화할 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자기와 생각이 다른 상대를 실존적 위협으로 간주하는 사람도 많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남들의 존재를 위협한다고 보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상황은 해법도 출구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저녁 식탁에서 가족과 의견이 다를 때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는 상태로 소셜미디어에서 모르는 사람과 격론에 휘말리곤 한다. 그러다 보니 논쟁이 될 만한 대화를 아예 피하는 사람도 많다. 물론 그것도 한 방법이고, 때에 따라서는 그게 정답일 수도 있다. 하지만 까다로운 대화, 즉 ‘말이 안 통할 것 같은’ 대화라고 해서 피하는 게 능사일 수는 없다. 우리는 그런 대화에 임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말이 안 통하는 대화란?
이 책에서 언급하는 ‘말이 안 통하는 대화’란, 상대방의 생각이나 믿음 또는 도덕관, 정치관, 세계관이 나와 너무 달라서 대화해봤자 도저히 소득이 없어 보이는 경우를 뜻한다. 상대방이 대화할 마음이 아예 없는 경우는 여기에 속하지 않음에 유의하자. 예컨대 상대방이 폭력적, 위협적으로 나온다거나 대화의 문을 걸어 잠그고 말을 듣지도 않는 경우는 이 책에서 말하는 ‘말이 안 통하는 대화’가 아니다. 대화를 거부하는 사람과 대화를 할 방법은 없다. 그런 사람을 억지로 대화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려줄 책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굉장히 드물다. 주제가 무엇이건 대부분의 사람이 대화에 응한다.
물론 생각이 전혀 다른 사람과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기란 굉장히 어렵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대화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믿음이 투철한 사람일수록 자기 믿음에 관해 이야기하려는 마음도 강하다. 대화가 어려운 이유는 대화 자체가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양방향 소통이 안 되어서다. 상대방이 대화를 함께 나눈다기보다 연설을 일방적으로 늘어놓기 때문이다. 우리를 자기 생각을 주입할 그릇 아니면 논박하여 물리칠 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일단 상대방이 이야기할 마음만 있다면, 아무리 대화가 안 통할 것 같아도 이야기를 나눌 방법은 있다. 이 책은 그 방법을 알려주고자 한다. 상대방이 아무리 화가 나 있더라도, 또 아무리 우리와 견해가 달라서 예의 있는 대화가 불가능해 보인다고 할지라도 방법은 있다. 상대방이 아무리 극단적인 골수 신봉자이거나 특정 당파의 열렬한 지지자라고 해도,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만 아니라면 의사소통을 잘할 수 있다.
물론 생각이 다른 사람과는 말을 아예 섞지 않는 게 더 손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항상 피하기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누가 말을 걸어올 수도 있고, 자리를 뜨기 어려운 모임에서 종교나 정치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다. 또 이야기 주제가 외면하기엔 너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는 풀어나갈 방법을 알고 있는 게 모르는 것보다 훨씬 낫다. 여러분은 이제 아무리 격앙된 대화도 잘 대처해나갈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러고 나면 누구와도 예의 있게 대화할 수 있다.
1장 기본
품격 있는 대화의
일곱 가지 원리
모든 건 기본에 달려 있다. 복잡하고 화려한 발레 동작도 발레의 기본 기술 위에서 이루어진다. 모든 전문 기술은 탄탄한 기본에서 비롯된다. 원활한 대화 역시 하나의 기술이다. 이 또한 지식과 연습이 필요한 일이기에, 일단 기본 원리부터 배워야 한다. 기본이 몸에 익으면 나중엔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능력이 발휘된다. 하지만 기본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계속 대화가 틀어지고, 결국 관계가 경색될 수밖에 없다.
예의 있는 대화의 기본은 한마디로, 상대를 적이 아니라 협력 상대로 보는 자세다. 견해차가 큰 대화를 할 때 특히 중요한 점이다. 그러려면 내 목표를 알고 상대의 의도를 너그럽게 해석해야 한다. 또 상대의 말을 들으며 메시지 전달이 아닌 양방향 대화를 해야 한다. 원활한 양방향 대화의 첫걸음은 듣는 법 배우기다. 머릿속에 있는 말을 다 하고 싶은 마음을 참아야 한다. 그다음에는 타이밍을 잘 판단해 대화를 품위 있게 끝내야 한다.
이 장에서 배울 바람직한 대화의 일곱 가지 기본 원리는 목표 인식하기, 협력 관계 조성하기, 라포르 형성하기, 상대방의 말 듣기, 내 안의 메신저 잠재우기, 상대방의 선의 명심하기, 대화를 끝낼 시점 판단하기다. 이 장에 소개된 기본 원리만 숙달해도, 앞으로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하든 대화가 훨씬 더 바람직하게 흘러갈 것이다. 또 이 기본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다른 고급 기술을 익히려고 해도 모래 위에 쌓은 성이 되어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자. 이제 일곱 가지 기본 원리를 순서대로 하나씩 살펴보자.
#1 목표 인식하기
사람들이 대화하는 이유는 참 다양하다. 그저 친밀감을 나누려고 하는 대화도 있지만, 실제적인 목표가 있는 대화도 있다. 대화의 목표에는 다음의 유형이 있다.
• 서로 이해하기: 의견 일치까지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서로의 견해를 이해하려 하는 경우
• 서로 배우기: 상대방이 어떻게 그러한 결론에 이르렀는지 알아보기 위한 경우
• 진실 찾기: 힘을 합쳐 진실을 모색하거나 착각을 바로잡으려 하는 경우
• 개입: 상대방의 믿음이나 믿음 형성 방법을 바꾸려고 시도하는 경우
• 감탄시키기: 상대 또는 제삼자의 감탄을 유발하고자 하는 경우
• 강요에 굴복: 상황상 어쩔 수 없이 대화에 응하는 경우
어떤 경우이든 내 목표를 분명히 의식하고 나면 대화를 풀어나가기가 더 쉬워진다. 스스로 자문해보자. “내가 이 대화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목표를 이루고 싶은가? 대화에서 얻으려는 게 뭔가?” 위에 보인 예 중 하나가 들어맞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가볍게 친근하고 유쾌한 대화를 나누려는 마음뿐일 수도 있다.
목표는 둘 이상일 수도 있고, 딱히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대화 도중에 바뀔 수도 있다. 어떻든 간에 대화를 시작할 때 자신의 목표를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우선 내가 원하는 게 진실 찾기인지, 아니면 상대방에게 생각을 재고하게 하려는 것인지부터 자문해보자. 둘 다일 수도 있고, 어느 한쪽 마음이 더 강할 수도 있다. 일단 목표가 뚜렷해지면 목표에 가장 알맞은 기법을 사용하면 된다.
#2 협력관계 조성하기
피터의 스승인 프랭크 웨슬리Frank Wesley 포틀랜드 주립대학 심리학 교수가 1970년대에 수행한 연구가 있다. 웨슬리는 한국전쟁 중 북한군에 잡힌 미군 포로 중 일부가 북한행을 택한 이유를· 분석했다. 조사 결과 북한행을 택한 미군은 거의 전부 한 훈련소 출신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훈련소에서 정신교육을 통해, 북한 사람은 잔학무도한 야만인이고 미국을 경멸하며 미국을 궤멸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고 배웠다. 그런데 북한군에게 친절하게 대우받고 나자, 머릿속에 주입되었던 지식이 산산이 허물어져버렸다. 결국 이들은 북한 사람에 대해 특별히 교육받지 않았거나 덜 편향된 교육을 받은 군인들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북한행을 택했다.
사람의 생각을 바꾸거나 움직이고,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고, 우정을 지키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상대방에게 호의와 공감과 연민을 보여주어야 한다. 상대방을 존중해주고 품위를 지켜주어 심리적으로 안전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사람은 자기 말을 들어주고, 자기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고, 예의를 지키는 사람에게 우호적으로 대하게 되어 있다. 사람의 믿음을 고착시키고 분열과 불신을 부추기는 확실한 방법은 적대적이고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악의적이거나, 남의 말을 듣지 않거나, 상대를 무시하거나 예의 없는 사람은 저절로 싫어질 수밖에 없다. 여러분도 살면서 그런 사람을 한 번쯤은 틀림없이 만나봤을 것이다.
다행히도 안전하고 신뢰감 있는 소통 환경을 만드는 방법은 전혀 어렵지 않다. 한마디로, 서로 ‘대화 파트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타인을 생산적 대화를 위한 협력 상대처럼 대하면 된다. 그리고 실제로 협력 상대가 맞다. 대화를 협력 작업으로 인식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대화를 예의 있게 풀어 나가면서 인간관계를 망가뜨리지 않고 돈독히 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되는 방법이다. 그리고 그런 자세를 취하기는 의외로 쉽다.
이기는 대화에서
이해하는 대화로
가장 먼저 목표로 삼아야 할 일은 상대방의 추론을 이해하는 것이 다. 적대적 사고, 즉 맞서고, 다투고, 따지고, 비웃고, 이긴다는 생각을 버리자. 그보다는 손잡고, 힘을 합치고, 듣고, 배운다고 생각하며 협력적 사고를 하자. ‘이 사람은 내 적이며, 내 말을 알아듣게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접고, 대신 이렇게 생각하자. ‘이 사람은 내 대화 파트너이며, 그에게서 무언가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있다. 가령 그가 왜 그런 믿음을 갖게 되었는지 알아볼 수 있다.’
혹시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파트너로 삼고 대화할 수 있지. 하지만 인종차별주의자와는 죽어도 못 해!’ 아니다, 할 수 있다. 흑인 음악가 대릴 데이비스는 KKK 단원들과 예의 있는 대화를 나누어 단원들이 KKK에서 탈퇴하게끔 설득했다. 그는 그 증표로 넘겨받은 흰색 고깔 두건을 벽장 가득 보관하고 있다. 우리도 인종차별주의자와 대화할 수 있다. 아니, 어떤 신념 체계를 가진 사람과도 대화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왜 그러한 믿음을 갖게 되었는지 알아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은 상대와도 충분히 대화할 수 있다. 대화란 두 사람이 모르는 것을 서로 자연스럽게 배우는 기회다. 누군가를 파트너로 삼아 예의 있는 대화를 나눈다고 해서 상대의 결론에 수긍하는 것도 아니요, 그의 추론에 넘어가는 것도 아니다. (교양의 척도는 수긍하지 않고도 이해하는 능력이라는 옛 말도 있다.) 상대의 사고를 따라감으로써 그 사람의 믿음과 그리 믿게 된 까닭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다 보면 상대방이 내 추론을 이해하게 될 수도 있고, 본인의 추론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을 수도 있고, 또 어쩌면 내 믿음이 그릇되다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다. 서로 파트너가 되어 대화하는 일은 의견의 일치나 불일치를 가리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어디까지나 예의와 관용을 바탕으로 서로 이해하고자 하는 활동일 뿐이다.
생각해보자. 이런 사고를 바탕으로 두면, 최악의 결과라고 해봤자 정말 악독한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하는 게 다다. 그럴 때는 사람들이 도대체 왜 혐오스러운 믿음을 갖는지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될 테니 그걸 소득으로 치면 된다. 하지만 대개는 그보다 좋은 결과가 있다. 대화를 더 편안하게 나눌 수 있고, 인간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다. 또 앞으로 비슷한 주장을 접할 때 더 잘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고. 어쩌면 나 자신의 사고를 수정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유의할 점도 있다. 상대방의 행동을 어떻게 할 수는 없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내 행동뿐이다. 그러니 내가 먼저 상대방의 추론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상대방이 상응하는 노력을 보일 뜻이 없어도 어쩔 수 없다. 또, 주도적으로 나서서 협력적인 대화 방식을 정착시키고 유지해야 하며,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대화를 끝낼 마음의 준비도 해야 한다. 이 점에 관해서는 이어지는 내용에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우선 실전에 쓸 수 있는 간단한 요령을 몇 가지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 협력과 이해라는 목표를 분명히 제시한다.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해서 그 결론을 내리셨는지 정말 궁금하네요. 같이 짚어보면 참 좋겠는데요.”
2. 대화를 강요하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대화에 응하지 않거나 질문에 답하지 않거나 대화를 언제든 끝낼 길을 열어준다. 다시 말해, 대화를 불편해하는 상대에게 대화를 강요하지 않는다.
3. 순수한 호기심에서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라는 의문을 품되, 상대방에게 그렇게 묻지 않는다. 의문을 풀기 위해 진지하게 질문한다. 의아하다는 듯이 묻지 말고 순수한 호기심에서 붇는다. 의문을 해소하려고 애쓰다 보면 대화가 험악해지지 않고 원활히 진행되는데 도움이 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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