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
소설가 P씨의 계정을 팔로한 지는 이 년 남짓 되었다. P씨의 팔로워는 오만여 명인데 팔로잉은 세 명에 불과했으며, 그것은 친구나 가족이 아니라 지금까지 그의 책을 출간한 출판사들의 계정이었다. 그는 일 년에 평균 한 권꼴로 육 년째 저서를 출간했는데 모두 소설이었고 웬만큼 쓴다는 작가라면 으레 한 번쯤 낼 법도 한 산문집은 없었다. 그러고 보면 P씨는 신문 잡지 방송 어디에도 칼럼을 싣는 법이 없었다. 생활밀착형 미셀러니를 비롯하여 무게감 있는 에세이나 사회 문화 논평에 이르기까지, 말하자면 소설 아닌 글은 무엇 하나 발표하지 않았다. 소설은 인물이나 줄거리 따라가는 재미에 집중하느라 티가 잘 나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스토리텔링이 적은 산문에서는 저자의 평소 사고 수준과 문장의 밑천이 드러나게 마련이었다. 그가 평소 SNS에 올리는 토막 단상들은 그럴듯한 삽화를 얹어 책으로 대강 엮어 팔기에 큰 무리는 없지만 범상한 문장만큼이나 사유 또한 단순하여 지나가는 누구를 붙잡고 물어도 그 정도 말은 구사할 수 있겠다 싶은, 말하자면 저자 특유의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 글이었으니, 산문집을 굳이 출간하지 않는 것은 암만 수익지상주의 업체라도 글을 보는 최소한의 눈 내지는 출판의 사회적 책무를 고려하는 양심이 있다는 뜻이며, 이 세상의 푸르른 나무들을 위해서도 올바른 선택일 터였다.
딱히 내세울 것 없는 문체와 살짝 빈곤한 사유에도 불구하고 P씨가 매해 꼬박꼬박 신간을 내보내며 꾸준한 판매 지수를 유지하는 한편 웹에서는 수많은 팔로워를 거느린 까닭이라면 역시 그거지. 첫 책이 16부작 케이블 드라마로, 두 번째가 영화로, 세 번째가 20부작 웹드라마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박은 첫 번째뿐이며 작품이 유명세를 탔다고 하여 그걸 쓴 작가가 셀러브리티는 아니겠으나, 이후 꾸준한 중박으로 업계 입장에서는 뭘 해도 본전치기는 하겠다 싶은 작가가 그리 흔치 않지. OSMU가 가능한 작가 중 하나, 계산기 두드려봤을 때 손해는 안 나고 언젠가 다시 터질 잭팟에의 기대를 완전히 접을 필요도 없는 고른 작품 수준 ― 알다시피 우리가 대형 마트의 팝업 보드나 식당 메뉴판에서 종종 발견하는 ‘고른 품질’ 내지는 ‘균질한 맛’ 따위의 표현은 딱 가성비에 준하든가 그보다 살짝 밑도는, 하여간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뜻이다 ― 거기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음으로써 본명과 성별 및 나이와 직업, 거주지 등 정체를 궁금하게 만드는 은둔자 이미지도 한몫할 터다.
매년 발표하는 소설마다 소비되기 좋고 소진되기도 쉬운 적당한 감흥을 안겨주는 P씨의 계정을 처음 팔로했을 때의 이유는, 마침 그 무렵 논란이 된 사례에 대해 P씨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려고 ― 그보다는 이런 논란을 일으키는 사람의 일상을, 그의 토막글과 사진만으로 어디까지 파악할 수 있을지 호기심이 생겨서였다고 할 것이다.
당시 P씨가 발표한 신작은 그전까지 재개발 구역의 휴먼코미디 – 병원 배경의 미스터리 로맨스 – 고등학교 신임교사의 참교육 도전기 등으로 이어져온 일련의 소설에서 따뜻하고 푹신한 톤을 덜어낸 것으로, 소위 사회파 스릴러로 분류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이때 주인공을 통해 선악의 모호한 경계를 성공적으로 형상화했다는 북 섹션 리뷰와 함께, 기존 그의 작품들이 거쳐온 수순대로 영화사에서 수시로 접촉이 들어온다는 보도가 뒤따랐다. 그런데 인물들을 하나씩 톺아보면, 주인공 옆에 상당한 비중으로 다루어지는 악인은 불법체류중인 외국인 노동자였고, 그 외에 시골 총각과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가산을 돌라내어 도망가다 잡히자 배 째라고 내미는 캄보디아 여인에다, 주인공의 보조자로 미모의 청각장애인이 등장했다. 인물만 열거해서는 무슨 이야기인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법한 소설이라는 점은 접어두고, 삼백오십여 쪽의 책에서 열두 개 문단 정도가 캡쳐 편집되어 서브컬쳐 게시판에 올라가자 아직 책을 접하지 않은 이들은 그 편협함과 낡은 세계관에 경악했고, 이미 책을 읽은 이들은 자신들의 둔감함을 돌아보았다. 나는 그때까지 누구에게 선물로 줄까 말까 고민하면서 그 책을 세 부 정도 장바구니에만 담았다가, 끝내 결제 버튼을 클릭하지 않고 이듬해 보관함으로 이동시켰다.
게시판에서 SNS로 이동한 편집본이 리트윗 단계로 넘어 가자, P씨의 소설은 외국인 노동자가 악인이라는 편견을 고착화하여 기피 대상으로 규정하는 데에 한몫하며, 매매혼에 다름 아닌 현 사회의 뒤틀린 국제결혼 문화에 대한 반성과 고찰 없이 외국인 신부를 사기꾼으로 몰아간데다 그녀의 서툰 한국어를 지속적으로 드러내어 희화화하는 한편, 선한 행동에서 성스러운 느낌마저 자아내는 청각장애인 여성이 주인공의 보조자에 그침으로써 장애인은 모두 착하고 순박해야 마땅한 사람들이라는 고정관념 ― 강요된 이미지를 재생산 및 배포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특히 주인공이 제 분을 못 이기고 그녀에게 ‘병신’이나 ‘귀머거리’라고 반복적으로 토해내는 장면은 해당 인물의 내적 갈등을 보여주는 장치로 기능하기보다는 청각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명칭을 공고히 하며, 설령 그것이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형상화하기 위한 장면이라고 주장한들, 반드시 한 주체의 인격을 짓밟음으로써 갈등을 표현할 수밖에 없다면 작가의 소양이 저급하다는 뜻이라는 사람들의 분석이 이어졌다. 주인공의 폭언을 듣지 못하나 입 모양과 행동으로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여성이 분노하기는커녕 그를 포옹하는 장면은 모성 판타지의 일종이겠는데, 이때 그녀가 하필이면 날씬하고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사전 묘사는 각종 혐의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고작 한 권의 소설에서 이렇게 용납하기 어려운 대목이 쏟아져나온다는 건 그 저자가 평소 어떤 가치관을 지녔는지를 보여준다는 댓글과 타래들이 달렸다.
문제가 불거지고 일주일 넘게 P씨는 자신의 SNS에 글을 올리지 않아서, 사람들은 그가 접속을 자주 하지 않는 것으로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평소 정치적 신념이 드러날 만한 외신 기사 한 토막을 리트윗하는 데 손가락을 놀리는 일에조차 매우 인색했으며, 대부분은 사진과 함께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며 자기 건지 누구 건지 모를 단상 한 토막을 올리는가 하면 저자가 명시된 시나 소설의 일부를 가끔 인용하는 걸로 활동을 유지하고 있어서였다. P씨의 저서는 그때그때 출판사 계정에서 알아서 홍보했고 그 자신은 신간이 나왔다거나 이번에도 잘 부탁드린다든지 같은, 개인 육성이 드러나는 말 한마디를 보태지 않았다. 팔로워가 책을 잘 읽었다든가 앞으로도 꾸준한 활동을 부탁드린다고 말을 걸면 웃음 이모티콘에 ‘Thank you’라고 적힌 이미지로만 답글을 보내는데, 무성의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Thank you’ 문구만 고정이고 배경 이미지는 매번 다양한 사진과 그림을 사용했으며, 악플이나 시비 거는 말에는 대꾸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동안에도 이렇게 소극적으로 소통할 거면 애당초 자물쇠를 채우거나 익명으로 할 일이지 뭐하러 P씨라는 이름으로 공개 계정을 팠느냐는 불평과 비판이 종종 있었다.
이대로 사안이 묻히게 두고 볼 수 없었던 유저들은 작가가 먼저 입을 열지 않으니 출판사 계정에 지속적으로 멘션을 보내 해명과 이후 방침을 요구하기 시작했는데, 그런 다음 올라온 P씨의 첫 게시물은 놀랍게도 카메라의 제원만 밝혔을 뿐 별다른 캡션이 없는 사진 세 장이었다.
물론 그전에도 P씨는 설명 없이 직접 찍은 듯한 사진들을 종종 올렸고, 사진에는 그 자신이나 지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전혀 없이 주로 자연 풍경, 국내외의 거리 모습과 타인임이 분명한 사람들, 박물관이나 전시관 같은 장소와 정물을 비롯한 인테리어가 나타나 있었다. 사람들은 그 대중없는 이미지의 파편들을 조합하여 그가 어느 지역에 사는지 어떤 곳을 여행하고 어디에 들렀으며 무슨 종류의 문화생활을 영위하고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추측하는 한편, 그렇게 드러난 관심사를 통해 성별과 나이와 가족 사항을 분석하기도 했다. 구도 잡는 방식이 거칠고 대범하며 아기자기한 소품에는 관심이 없는 한편, 분위기 좋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몇 번이나 가놓고도 테이블의 음식 사진이 단 한 번도 올라오지 않았고 고양이나 강아지 사진은 전무한데, 서로 다른 디지털카메라의 스펙을 비교하는 장면이나 무언가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장면이 종종 올라온 것으로 보아서 안정적 수입원이 있는 남성일 확률이 높다든가, 아니 굳이 사진으로 판단할 거 없이 이미 발표한 소설마다 매번 삼십대 중반의 남성이 중심 화자라는 사실만으로도 알조라거나, 일상에 찌든 느낌이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미술관과 여행지 사진으로 보아선 결혼하지 않았거나 최소한 자녀가 없는 우아하고 윤택하며 기품 있는 생활을 누리고 있으리라는 추측, 어딘지 모를 초등학교 운동회 장면이 최소한의 연출과 구도를 무시한 채 올라온 걸 보면 아이를 둔 부모라는 또다른 추측, 그 정도야 단지 지나가다 찍은 풍경일 수 있다는 반론, 아니 확실히 일련의 다른 사진들에 비해 소재가 이질적일 뿐만 아니라 결이 달라 결이, 뭐가 됐든 사진과 글을 주로 올리는 시각으로 볼 때 회사원은 아니고 자영업자겠지, 아니 자영업이 가게 놔두고 이렇게 많은 곳을 돌아다닐 수 있나, 결론은 프리랜서나 전업 작가, 그런데 포털 연재도 아닌 연 한 권 전작 출간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전업 작가가 우리나라에 몇 명이나 되겠으며, 매번 영화나 드라마의 2차 판권료를 억대로 받지 않고서야 불가능하지 않나, SNS에 비교 분석기가 올라온 그의 카메라를 보자면 렌즈 포함 오백만원에 이르니 애당초 돈 좀 있는 딜레탕트이겠다든가, 아니면 또다른 필명으로 대중성 있고 접근성 좋은 플랫폼에 좀더 로맨틱하거나 에로틱하거나 속도감 넘치는 무언가를 연재하여 생계를 해결할지도…… 같은 식이었다.
그러나 그전까지의 짐작이 일종의 유희 차원에서 오간 이야기였다면, 이번 경우는 P씨 자신과 직접 관련된 일이 벌어지는 중인데 관련 피드백 없이 파도가 덮쳐오는 찰나를 찍은 사진만 올리다니, 책을 내놓고 나 몰라라 하는 무책임이 도를 넘어 독자를 무시하는 처사에 다름 아니라는 평이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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