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태어날 때부터 막내
찌는 듯한 더위가 계속되던 여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내일이 추석이다. 방 안으로 들어온 햇살은 뜨겁고 하늘은 맑다. 열어놓은 유리창으로 선들 불어오는 바람에서 가을 냄새가 난다.
“송편 찔 때 쓰게 저그 앞마당 소나무에서 이삐고 깨깟한 이파리들로만 골라서 따다 놔야 쓸 것인디?”
송편 빚을 반죽을 주무르던 할머니가 말한다.
“아까 제가 솔잎 따다 씻어서 소쿠리에 받쳐놨어요, 할머니.”
“오메, 내 강아지, 그랬능가. 잘했네, 잘했어.”
할머니는 중학교 1학년인 큰오빠를 보며 활짝 웃는다.
“자, 다들 자기 앞에 있는 대접에 반죽을 적당히 떼줄팅게 송편을 만들어서 여그 가운데 둥근 밥상 위에 쭈르륵 놓거라잉? 고명은 콩, 깨, 녹두 시 가지가 있응께 번갈아 감서 알아서 넣고.”
“어, 큰누나 송편 이쁘다. 진짜 반달 같아.”
제일 먼저 상 위에 올라온 큰언니 송편을 보고 작은 오빠가 감탄을 한다.
“내가 송편 만든 경력이 몇 년이냐.”
“음, 그러니까 18년.”
“야, 그만큼 오래됐다는 뜻이지 꼭 그렇게 계산을 해야겠냐.”
작은오빠 대답에 큰언니가 웃으며 타박을 한다.
“막내야, 네 것은 자꾸 부서지네? 누나가 가르쳐줄게. 이렇게 해봐.”
여섯 살 별언니가 두 살 어린 밝오빠에게 송편 빚는 걸 가르쳐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작은언니는 “반달 모양으로 만들려고 하니까 자꾸 부서지지. 그냥 이렇게 조그맣게 굴려서 만들어봐. 그럼 쉬워.” 한다.
“야야, 어멈아. 서재에 있는 아범, 정심 간단히 먹고 여태 암것도 안 먹었을 것인디 약밥이랑 과일 좀 갖다주지 그러냐.”
“어머니, 저 여기 있는데요.”
“오메, 호랑이도 지 말 하면 온다더니 언제 이 방으로 왔다냐잉. 참, 목포에서 너거 누나들 가족 모다 올 수 있다고 하든?”
“네, 어머니. 전부 연락했고요, 아마 내일 모두 올 것 같아요.”
“글믄 서른 명 가까운 대식구가 자야 헝께 다다미방이랑 저짝 아그들 방, 마루 다 구석구석 청소 좀 부탁허네.”
“그러지 않아도 어머니, 바깥 변소와 대문부터 청소하려고 밖으로 나가려던 참이었어요. 참, 당신은 배가 불러 힘들 텐데 잠시 쉬지 그러오.”
아버지가 엄마에게 말한다.
“오메, 저 많은 전도 다 지져야 허고, 이렇게 할 일이 태산인디 워치케 쉬어요.”
“당신 2년 전에 쌍둥이 유산하고 가뜩이나 몸이 약한 상태인데 마흔 넘은 나이에 임신했으니 정말 조심해야 하오.”
엄마가 송편 쟁반을 들고 부엌으로 가며 대답한다.
“걱정 말아요. 내 몸 내가 알아서 헐 팅게. 지금까지도 잘 버텨왔는디요, 뭘.”
고명딸로 외롭게 자란 엄마는 자식 욕심이 많다. 엄마 말에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방문을 나선다.
“어멈아, 힘들면 언제라도 들어가 쉬어라. 내가 다 헐팅게. 팔다리가 가늘고 빼빼 말라갖고 다들 임신 육 개월이 넘뜨락 몰랐으니. 어멈 너조차 임신한 줄 몰랐으니, 참말로 큰일 날 뻔했제. 배는 나왔어도 뒤에서 보믄 허리가 쏙 들어간 거 봉께 암만해도 딸 같다만은.”
엄마는 이미 부엌으로 나가고 없는데도 할머니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그런데 엄마, 아가는 언제 나와요?”
밝오빠가 송편을 빚다 말고 쪼르르 달려가 부엌을 내려다보며 엄마에게 묻는다.
“잉, 막내야. 엄마가 아가에게 바쁘니까 지금 나오면 안 된다, 추석 끝나고 주일날 교회 가서 예배까지 다 드리고 나면 그 후에 아무 때나 나온나, 하고 말하고 있응께 조금 더 기다려라잉. 아기가 엄마 말 잘 들으면 담 주에 만날 수 있고, 말 안 들으면 오늘 밤이라도 나올지 몰라.”
“나는 아가가 늦게 나왔으면 좋겠다. 다들 아가만 예뻐하면 어떡해.”
“아구, 우리 강아지. 걱정 마소. 아가가 태어나도 엄마는 우리 강아지가 젤로 이쁭게.”
“아가가 태어나면 이제 나는 막내 아니야?”
밝오빠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묻는다.
“으응, 그건 그렇네. 인자부터는 아가가 막내제.”
“칫, 내가 계속 막내 할 거야. 나는 막내고 아가는 맑음이야. 아가 이름 ‘맑음’이라고 했잖아.”
밝오빠는 아가를 만나는 게 썩 즐겁지 않나 보다.
“아구구, 아가가 엄마 배를 발로 막 찬다잉. 오빠 그런 말 하지 마. 이제부터 막내는 나야, 함시로.”
아버지가 미리 지어놓은 ‘맑음’이라는 이름을 가진 막내는 엄마 말을 잘 듣고 추석 명절 바쁜 일이 다 끝난 그다음 주 월요일에 태어났다.
막내가 태어나던 날,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흐렸지만 끝내 빗방울은 떨어지지 않았다. 태어난 시각이 늦은 오후라 별언니와 밝오빠는 동네 골목에서 놀고 있었다. 큰오빠와 작은오빠는 학교에서 돌아와 집에 있었다. 이미 동생이 셋이나 태어난 걸 본 큰오빠는 산통을 참는 엄마의 신음소리에 “울 엄마, 또 애기 난다.” 하며 엄마의 해산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겁쟁이 작은오빠는 마루에 무릎을 꿇고 앉아 엄마가 많이 아픈 거 같으니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라며 두 손을 모아 쥐고 기도를 올렸다.
아버지는 언니오빠들을 집에서 손수 받아낸 경험이 많았다. 이번에도 아버지는 소독한 가위로 막내의 탯줄을 자르고 알코올 솜으로 닦아 마무리한 뒤, 따뜻한 물에 목욕시켜 포대기에 눕혔다. 아버지는 엄마 배를 막 빠져나온 막내의 탯줄을 자르며 막내의 탯줄을 자르며 막내에게 기도처럼 축복의 말을 들려주었다.
어렵게 낳았는데 딸이라는 말에 아들을 바랐던 엄마는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와 함께 막내의 탄생을 도왔던 할머니는 엄마 품에서 막내를 포대기째 데려와 두 팔로 살포시 안아주었다. 큰언니와 작은언니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방으로 들어와 할머니 품에 안긴 빨간 막내를 말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아이가 드디어 우리 집 진짜 막내가 될 거라는 확실한 예감과 함께.
앞마당 동산의 연못 속 금붕어가 출렁하고 튀어 오르자 참새들이 우르르 날아갔다. 비자나무 이파리는 석양녘 햇살에 가만가만 반짝였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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