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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가꾸는 식물
(중략)
슬픔은 사람을 고립시킨다. 경험이 다른 사람과 공유될 때도 마찬가지다. 가족에게 상실이 닥치면 서로 의지하지만, 그러면서도 각자가 상실감에 혼란스러워한다. 서로가 거친 감정에 다치지 않도록 보호하려는 마음이 있어서, 감정이 폭발할 때는 다른 사람들을 피하려고도 한다. 반면 나무, 물, 돌, 하늘은 인간의 감정에 무감각하지만, 우리를 거절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연은 우리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전염되지 않는 특징 덕분에 상실로 인한 외로움을 달래주는 일종의 위안이 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몇 해 동안 나는 자연에 이끌렸다. 정원은 아니고 바다였다. 아버지의 고향 근처 남부 해안, 크고 작은 배가 바쁘게 오가는 솔런트해협에 아버지 유해를 뿌렸지만, 내가 위안을 찾은 곳은 배 한 척 보이지 않는 노퍽 북부의 길고 한적한 해변이었다. 그때까지는 그렇게 긴 수평선을 본 적이 없었다. 그곳은 세상의 끝 같아서, 아버지에게 최대한 가까이 다가간 듯했다.
그 해에 나는 프로이트를 공부하다가 인간 정신의 작동 방식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문학의 길을 포기하고 의사가 되기로 했다. 그리고 의대 3학년 때 원예를 좋아하는 톰과 결혼했다. 톰이 식물 가꾸는 일을 좋아하니 나도 좋아해보기로 마음먹었지만, 솔직히 회의적이었다. 원예는 그저 허드렛일 같기만 했다. 물론 날씨가 좋으면 실내보다는 야외에 있는 편이 나았지만.
우리는 몇 년 후 아기 로즈와 함께 하트퍼드셔 서지 힐에 있는 농장 건물을 개조한 집으로 이사했다. 톰의 고향 집 근처였다. 그 후 벤과 해리가 잇달아 태어났고, 톰과 나는 정원을 만들기로 했다. 우리가 ‘헛간’이라고 이름 붙인 새 집은 넓은 들판, 바람을 맞는 언덕 북쪽면에 있어서 보호막이 필요했다. 우리가 자갈밭에 나무를 심고, 생울타리를 치고, 욋가지 울타리도 세웠다. 주변 땅을 갈아엎는 작업도 했다. 톰의 부모님과 많은 친구들이 돕고 격려해주어 힘을 낼 수 있었다. 우리가 돌 고르기 파티를 열면 로즈와 로즈의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삼촌들이 함께 땅에서 돌을 주워 양동이에 담아 날랐다.
나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뿌리 뽑힌 상태라, 집에 대한 귀속 감각을 새로 찾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내가 뿌리를 내리는 데 원예가 어떤 역할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정원이 아이들 인생에 점점 중요해진다는 점만을 의식했다. 아이들은 덤불 속에 놀이터를 만들고, 자신들이 만든 상상의 세계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정원은 환상이자 동시에 현실인 장소였다.
톰의 창의적 에너지와 통찰력 덕분에 정원은 점점 발전했지만, 나는 막내 해리가 만 한 살이 되었을 무렵에서야 마침내 스스로 식물을 기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허브에 관심이 생겨서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 이 새로운 영역의 지식을 가지고 나는 부엌에서, 그리고 이제 ‘내 것’이 된 허브밭에서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몇 차례 재난이 있었고 보리지 덩굴과 비누풀을 잔뜩 키운 것도 그 일부였다. 그럼에도 직접 키운 온갖 허브로 맛을 낸 음식을 먹는 일은 삶에 기쁨을 주었다. 나는 거기서 한 발 더 나가 채소를 재배했다. 이 시기에는 먹을 수 있는 식물을 키우며 기쁨을 느꼈다!
이때 나는 30대 중반이었고, 국립보건서비스NHS, 영국의 공공 의료 체계, 대부분 치료비가 무상이다_옮긴이에서 초급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있었다. 원예는 내가 바친 노력의 결과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내 직업과 대조되었다. 일터에서는 훨씬 더 이해하기 힘든 정신의 속성들을 다루었다. 병동과 클리닉에서 일할 때는 대부분 실내에 있어야 했지만, 정원 일은 나를 야외로 데리고 나갔다.
나는 점점 정원을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사방을 둘러보고 식물들의 변화, 성장, 질병, 결실을 살펴보는 즐거움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차츰 잡초 뽑기, 흙 고르기, 물 주기 같은 평범한 일에 대한 생각이 변했다. 그런 일을 해낸다기보다 그 일에 전적으로 참여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을 주다 보면급하게 하지만 않으면 마음이 진정된다. 일을 마치고 나면 이상하게 나 자신도 식물들만큼 상쾌해진다.
그 시절뿐 아니라 지금도, 원예에서 누리는 가장 큰 기쁨은 씨앗을 싹 틔우는 일이다. 씨앗은 자신이 어떻게 될지 말해주지 않는다. 크기도 그 안에 잠든 생명과 관계가 없다. 콩은 폭발적으로 자란다. 특별히 아름답지는 않지만, 처음부터 거의 난폭할 만큼 강력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담배풀 씨앗은 먼지만큼 작아서, 어디 뿌렸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씨앗만 보면 구름처럼 피어나는 향기로운 꽃은 고사하고 어떤 시시한 일도 해낼 거라 생각할 수 없다. 그래도 그렇게 한다. 나는 새로운 생명과 애착을 형성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느낀다. 거의 강박적으로 씨앗과 모종을 자꾸자꾸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온실에 들어갈 때면 이제 막 피어오르는 생명의 고요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숨까지 참는다.
식물을 키울 때는 기본적으로 일을 약간 미룰 수는 있지만, 계절과 싸울 수는 없다. 다음 주에는 이 씨를 뿌리고 저 모종을 심어야 한다. 일을 미루면 기회를 놓치고 가능성을 박탈당하지만, 흐르는 강물에 뛰어들 듯 일단 씨앗을 심어놓으면 우리가 계절의 에너지에 실려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때가 온다.
나는 특히 초여름에 하는 정원 일을 좋아한다. 그때는 성장의 힘이 가장 강하고, 땅에 심을 것이 너무도 많다. 한번 시작하면 멈추기가 싫다. 보통 어스름한 새벽빛 속에서 시작해 어두워져서 앞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일한다. 일을 끝낼 때쯤이면 불을 환하게 밝힌 집의 온기가 나를 안으로 끌어들인다. 다음 날 아침에 살그머니 나가 보면, 내가 일한 곳이 밤사이에 제대로 자리가 잡혀 있다.
물론 당연히 계획이 틀어지는 경험도 한다. 기대 속에 나갔다가 시들어버린 어린 상추나 이파리가 다 떨어진 케일을 맞닥뜨릴 수도 있다. 민달팽이와 토끼의 분별없는 식습관이 분노발작을 일으키기도 하고, 잡초의 끈질긴 생명력이 진을 빼놓기도 한다.
식물을 돌보는 기쁨이 모두 창조 행위와 관련되지는 않는다. 정원에서 파괴적인 행위를 하는 일의 좋은 점은 그것이 용인 가능할 뿐 아니라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정원은 온통 잡초에 뒤덮인다. 그래서 정원 일의 많은 행동이 공격성을 띠고 있다. 전정가위를 들고 가지를 치거나 땅을 깊이 파헤치거나, 민달팽이를 없애고 먹파리를 죽이거나, 바랭이 풀을 뜯어내고 쐐기풀을 뽑거나 하는 일들이 그렇다. 우리는 복잡한 생각 없이 이런 일에 힘을 쏟을 수 있다. 그것은 성장을 돕는 파괴이기 때문이다. 정원에 나가 한참 동안 일을 하다 보면 녹초가 될 수 있지만, 내면은 기이하게 새로워진다. 식물이 아니라 마치 나 자신을 돌본 듯 정화한 느낌과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이것이 원예 카타르시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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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겨울이 지나갈 무렵이면, 바깥세상은 아직 3월 바람에 떨지만 온실 안 온기는 나를 꽉 붙든다. 온실에 들어가는 일이 뭐가 그렇게 특별한가? 공기 중 산소 농도 때문인가? 아니면 빛과 온도 때문인가? 아니면 그저 푸르고 향기로운 식물들 곁에 가까이 있어서인가? 이 조용하고 안전한 공간에서는 모든 감각이 고양된다.
지난해 어느 흐린 봄날, 나는 온실에서 물을 주고, 씨를 뿌리고, 배양토를 옮기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개면서 햇빛이 쏟아져, 나를 다른 세상으로 실어갔다. 반투명한 풀잎들 사이로 빛이 쏟아지는 찬란한 녹색 세상이 펼쳐졌다. 잎마다 흩뿌려진 물방울들이 빛을 받아서 눈부시게 반짝였다. 한순간 넘치는 지상의 복을 느꼈다. 그 감각을 아직도 선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그날은 온실에 해바라기 씨앗을 뿌렸다. 한 달 정도 뒤에 모종을 옮겨 심으면서, 다 살지는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큰 놈은 괜찮아 보였지만, 나머지는 시들시들했고 보살핌을 받지 못한 듯 보였다. 그런데, 여전히 더 관심을 가지고 돌봐야 하긴 했지만, 병약하던 녀석들도 조금씩 기운을 차리기 시작하면서 기쁨을 주었다. 마침내 그 모종들이 제대로 성장하기 시작하자, 내 관심은 더 연약한 다른 모종들로 옮겨갔다.
원예는 반복이다. 내가 이만큼 하면 자연이 그만큼 하고, 거기 내가 응답하면 자연도 다시 응답하는 식으로 반복하는 게 대화와 비슷하다. 속삭임도 아니고 고함도 아니고 어떤 이야기도 아니지만, 이 주고받음 속에는 느리지만 계속 이어지는 대화가 있다. 때로는 내가 느린 쪽이 되어서 잠시 입을 다물기도 한다. 식물이 그런 방치를 견디고 살아남아주니 감사한 일이다. 잠깐 떠났다 돌아오면 훨씬 흥미롭다. 내가 없는 사이 다른 사람이 무슨 일을 했나 싶은 기분이다.
어느 날 해바라기가 모두 튼튼하게 자라서 당당하게 꽃을 피워내기 시작했다. 언제 어떻게 이렇게 키가 컸나? 놀라웠다. 유일하게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 모종 ― 역시나 그놈이 가장 튼튼했다 ― 은 큼직한 진노랑색 꽃을 피워, 까마득한 높이에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앞에 서니 아주 작아진 듯 느껴졌지만, 내가 그 생명을 이끌어냈다는 사실이 긍정적인 감각을 안겨주었다.
한 달이 또 지나자 해바라기들은 다시 변했다. 벌들이 모든 꽃을 해치웠고, 꽃잎은 시들었다. 가장 큰 해바라기도 굽은 머리를 제대로 지탱하지 못했다. 얼마 전까지 그토록 당당하던 모습이 이렇게 서글프게 바뀌다니! 한순간 해바라기를 모두 베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초라한 슬픔을 가만히 참고 지켜보면, 해바라기들은 햇볕에 하얗게 말라서 전과 다른 종류의 위엄을 띠고 우리에게 가을을 보여줄 터였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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