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미식해
속초 아바이촌 어물전 명자네 가게에 가지미식해를 부탁해놓고
그 가자미식해가 미시령을 넘어 서울의 내게 오기까지
고향이 청진인가 북청인가
술을 마시면 한껏 굴곡진 함경도 사투리를 쓰던
수학을 가르치던 이 아무개가 찾아오길 기다린다.
그이는 이젠 나를 만나러 올 수 없고
또 올 수 없는 걸 알지만
그곳에서 가자미식해를 먹으며
가자미 둥근 눈처럼 쌍꺼풀이 굵게 진 커다란 눈을 껌뻑이며
-이보라우 한 잔 들라
할 것만 같아
나도 이곳에서 가자미식해를 시켜놓고 그를 기다리는 것이다.
가자미식해는 기다리더라도 금방은 오지 않고 또 오더라도
그가 오지 않는 것은
기다림이 부족한 나를 시험하거나 뒤늦게 나타나
반가운 건 이런 거라고 보여줄 것만 같아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다.
미시령을 넘어 가자미식해가 내게 오기까지
청진 앞바다 파도소리 같은 그를 기다리는 건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일이다.
술이라도 한잔 들어가면 그 파도소리는 더 굴곡질 것이고
눈발이라도 듣는다면
그와 나는 어깨동무를 하고 허청거리며 청진으로 갈 것이다.
현실은 각박하여
그가 나와 함께 가자미식해를 먹으러 이곳으로 오거나
내가 그곳으로 그를 만나러 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가자미식해를 고개 너머 저 쪽에 시켜놓고 기다리는 것은
세상엔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고
그 모르는 것 속에 그가 내게 오거나 내가 그에게 간다는 게 있고
또 불가능할 것도 같지 않아 기다려보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가자미식해야말로 오묘한 존재인 것이다.
가자미식해를 기다리는 동안 그가 내게로 오고
가지마식해를 먹다보면 어느새 그가 떡하니 내 앞에 앉아
큰 눈을 껌뻑거리며 술잔을 권하는 걸로 보아
가자미식해엔
남과 북이
이승과 저승이
너와 내가 없다.
밥
부도나 밥은 아닐세라
햇살과 바람과 물과
흙의 정기를 받은
한 몸 한 몸
먼 길 달려와
산목숨 위해
발가벗고 쌓아올린
거룩한 헌신
위없는 경지
재계하고 가식 없이
알몸으로 받들어 모신 고봉에
상서로운 눈발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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