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어밥
아직 한 번도 맛보지 못했지만 내심 벼르고 있는 음식이 있다. 그중
하나가 ‘은어밥’이다. 지금은
독일에 가 있는 허수경 시인이 20년 전쯤에 예찬하던 맛. 은어는
수박 향이 나는 물고기예요. 그녀의 말을 듣던 우리의 귀가 단번에 길쭉해졌다. 후각은 원초적인 감각을 증폭시키는 힘이 있다. 그녀의 고향인 경남
진주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말하다가 은어밥 이야기가 나왔다.
남강에서 아버지가 은어를 잡아왔어요. 여름밤 모래사장 위에 불을 피워 은어밥을 지어 먹었죠. 밥물을 평소보다 낙낙하게 잡아야 해요. 은어는 배를 따서 손질해두고요. 냄비 속의 쌀이 한소끔 끓어 익을 때쯤 뚜껑을 열고 재빨리 은어를 넣어야 해요. 밥물이 걸쭉해질 때쯤이죠. 그때 은어를 밥 속에 한 마리씩 수직으로 박아 넣는 거예요. 은어를 꽂아 넣는다고 해야 하나? 꼬리만 밥 위로 나오게 박아 넣는 게 기술이죠. 그다음은 뜸이 잘 들 때까지 밥을 짓는 거예요. 푹 익은 밥과 민물고기가 대체 어떤 맛을 낼지 좌중은 더 솔깃해졌다. 그런데 알아둘 게 있어요. 밥이 다 되었을 때 은어 꼬리를 살살 흔들면서 빼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요. 그래야 꼬리와 뼈와 가시가 같이 딸려 나오고 밥 속에는 살이 발라져 남게 되거든요. 이걸 주걱으로 섞어 양념간장으로 비벼 먹는다는 거였다. 입안에 단침이 고였다. 은어의 영어식 이름은 ‘스위트피시sweetfish’, 곧 ‘단물고기’다. 하동 섬진강 부근을 기웃거리고 싶은 때다.
연꽃
7월 말이니 연꽃이 한창이겠다. 전주
덕진연못이 코앞인데 아직 가보지 못했다. 바빠서도 아니고 게을러서도 아니다. 연꽃을 보려고 작심하고 나서는 일은 왠지 어설퍼 보일 것 같아서다. 내가
신발끈 고쳐 매고 만나러 간다고 해도 연꽃이 내게 선뜻 안기지는 않을 것이다. 나와 연꽃의 관계는 서로
서운하게 한 일도 없는데 이렇게 늘 서먹서먹하고 먹먹하다.
미당 서정주도 그랬을 것 같다. 시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같이>가 바로 그 증거.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지는 말고
좀 섭섭한듯만 하게,
이별을 하자는 말은 무엇인가. 더군다나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라니.
성미 급한 이들은 이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냐고 성화를 낼지 모르겠다.
어느 날 문득 연꽃 향기가 코끝에 닿았을 때, 나는 그 향기를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어서 쩔쩔맨 적이 있다. ‘향기롭다’는 형용사는
연꽃에 대한 모독 같고, ‘은은하다’는 상투적이어서 내 후각에
대한 비하로 여겨졌던 것. 그때 미당의 시가 떠올랐고, “연꽃 / 만나러 가는 / 바람 아니라 /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라고 쓴 까닭을 조금 알 것 같았다.
이 시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거나 깨지기 직전의 연애를 노래하고 있는 게 아닐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조절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미당은 연꽃 향기를 맡으며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연애에
빠진 이들이 연꽃한테 무얼 좀 배울 게 없을까? 향기롭게는 말고, 좀
향기로운 듯만 하게.
지명
겨울에는 불광동이
여름에는 냉천동이 생각나듯
무릉도원은 도화동에 있을 것 같고
문경에 가면 괜히 기쁜 소식이 기다릴 듯하지
추풍령은 항시 서릿발과 낙엽의 늦가을일 것만 같아
춘천이 그렇지
까닭도 연고도 없이 가고 싶지
유안진 시인의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라는 시의 앞부분이다. 지명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를 펼쳐 보이며 독자를 유쾌하게 만드는 시다. 특히 춘천은 한자 ‘춘春’으로 인해서 까닭도 연고도 없이, 느닷없이 가고 싶은 곳으로 그려진다.
어떤 지역의 지명을 머리에 떠올리는 것만으로 그 지역으로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통영에 가면 이순신 장군하고 마주 앉아 생선회에다 소주 한잔 할 수 있을 테고, 함양에 가면 따뜻한 햇볕을 품은 골짜기에다 집을 지을 수 있을 테고, 여수에 가면 바닷가에 서 있는 아름다운 여인을 만날 수 있을 테다. 임실에 가면 그리운 임이 살고 있을 것 같고, 무주, 진안, 장수에 가면 무진장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만 같고, 양양에 가면 기가 양양하게 살아날 것만 같다. 그 어느 곳보다 물이 맑은 포구로 배가 들어오는 것을 보려면 청진을 생각하면 되고, 그믐에도 보름달을 보고 싶으면 팔공산을, 잡다한 세상사를 벗어던지고 싶다면 속리산을, 여름에도 눈이 보고 싶다면 설악산을 떠올리면 된다. 그것뿐이랴. 천천히 걷고 싶다면 산티아고라는 말을 생각하면 되고, 야생의 얼룩말 등을 타고 싶다면 세렝게티라는 말을 떠올리면 되는 거 아냐?
이종민 둘
저녁밥을 먹고 났더니 대나무 숲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집주인은
소리의 진원지 쪽으로 귀를 바짝 세웠다. 날은 어둑어둑해져 뒷산으로 올라가볼 수도 없었다. 우웩, 우웩, 우웩…….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필시 무슨 가혹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터. 올무에 걸린 산짐승의 비명 소리? 아니면 마을 사람
하나가 농약병을 들고 뒷산으로 올라가기라도? 집주인은 더럭 겁이 났다.
도시의 아파트와 고향집을 오가면서 산 지 10년, 생전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방에 있던 부인을 불러 옆구리를 찔렀다. 바깥에
무슨 소리가 나는데 당신도 들리나 봐요. 시골 생활이라면 손을 내두르던 아내였다. 귀를 기울이던 부인이 잠시 그 소리를 듣더니 무섭다며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참 난처한 일이었다. 산책을 나서려던 참이었는데 집주인은 한 걸음도
뗄 수 없었다.
결국 가까운 지구대로 신고해 경찰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잠시 후에
순찰차가 전조등을 켜고 대문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동안에 그 이상한 소리는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장난전화를 한 아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경찰관
앞에서 우웩, 우웩 하는 소리를 흉내 내보는 수밖에 없었다. 아들
또래쯤 되는 젊은 경찰관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거 고라니네!
흉내 참 잘 내시네요. 요즘이 번식기여서 짝을 유혹할 때 내는 소리예요. 여기 사는 분이 아닌가 봐요?
고향 집에서 타지 사람 취급을 받았다는 이종민 선생 이야기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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