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956년 7월
달링턴 홀
요 며칠 사이에 나의 상상을 붙들어 온 그 여행을 정말 감행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패러데이 어르신의 안락한 포드를 타고 나 홀로 즐기게 될 여행, 잉글랜드의 수려한 산하를 거쳐 서부 지방으로 나를 데려다 줄 여행, 그리고 예상컨대 무려 닷새나 엿새 동안 나를 달링턴 홀에서 떼어 놓을 여행이다. 이 여행의 발상 자체가 패러데이 어르신의 지극히 고마운 권유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언급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2주 전쯤이던가 어느 날 오후, 서재의 초상화들을 청소하고 있던 내게 그분이 직접 제안하셨던 것이다. 그때 나는 접이사다리에 올라서서 웨더비 자작의 초상화에 낀 먼지를 털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어르신께서 선반에 다시 꽂아 놓을 생각이셨는지 책 몇 권을 들고 들어오셨다. 나를 보신 그분이 마침 잘 만났다는 듯, 8월과 9월 사이에 5주 정도 미국으로 돌아가 지내기로 방금 막 계획을 확정했노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통고한 후 어르신은 책들을 탁자에 내려놓고 침대 겸 의자에 앉아 두 다리를 쭉 뻗으셨다. 그리고 잠시 후 나를 올려다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봐요. 스티븐스. 내가 나가 있는 동안 내내 집에 갇혀 지내지는 않았으면 좋겠소. 차로 어디든 며칠 다녀오는 게 어때요? 보아하니 휴가를 잘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로서는 그야말로 뜻밖의 말씀이었으므로 그 같은 권유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생각이 영 떠오르지가 않았다. 일단 그분의 배려에 감사를 표했던 것으로 기억되지만, 어르신께서 곧바로 덧붙인 말씀으로 보건대 내가 딱히 분명하게 대답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정말이오. 스티븐스. 내가 볼 때 당신은 정말 휴식이 필요해요. 차 연료비는 내가 부담하리다. 집안일을 챙기느라 늘 이런 큰 집에만 갇혀 살아야 하니 당신 같은 사람들은 자기 조국의 아름다운 산천을 대체 구경이나 해 보겠소?”
사실 어르신께서 그런 의문을 제기하신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그분께는 그 점이 정말 마음에 걸리시는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그때 사다리에 올라서 있을 때 나 나름대로 대답이 떠오르기는 했다. ‘이 나라의 전원을 여행하고 아름다운 곳을 직접 찾아다니는 것으로 치자면 저희 같은 직업의 소유자들은 물론 많은 것을 보지는 못한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저희는 이 땅의 가장 위대한 신사 숙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저택에서 살기 때문에 사실 영국에 대해선 일반인들보다 많은 것을 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제넘은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게 뻔했으므로 물론 패러데이 어르신께는 그 같은 견해를 내비치지 못하고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족했다.
“저는 오랜 세월 이 저택의 담장 안에서 영국의 진면목을 보는 특권을 누려 왔습니다, 어르신.”
패러데이 어르신이 내 말뜻을 이해하신 것 같지는 않았다. 곧바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으니까.
“내 말이 그 말이오, 스티븐스. 사람이 자기 나라도 한번 둘러볼 수 없다는 건 뭔가 잘못된 거요. 내 권유를 받아들여요. 며칠 집 밖으로 나가 보라고요.”
여러분도 짐작하겠지만 그날 오후 나는 패러데이 어르신의 제안을 전혀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저분이 미국 신사시니까, 영국의 관행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사례이거니 여겼다. 그런데 며칠 사이 그분의 권유로 내게 변화가 생겼는데, 정말 잉글랜드 서부 지방으로 여행을 간다는 생각이 점점 더 내 머릿속을 장악해 가고 있었다. 주된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내가 무엇 때문에 숨기겠는가?) 켄턴 양이 크리스마스 카드를 제외하고는 거의 7년 만에 처음 보내온 편지에 있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여기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겠다. 내 말은, 내가 여기 이 달링턴 홀에서 봉착한 업무상의 문제들과 관련해 켄턴 양의 편지가 어떤 생각의 고리를 제공해 주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내가 어르신께서 내놓으신 선의의 제안을 새삼 재고하게 된 것은 업무상의 문제들로 인한 고민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분명히 해 두고 싶다. 그 내막을 좀 더 설명해 보겠다.
지난 몇 달 사이 직무 수행 과정에서 내가 책임져야 할 일련의 작은 과오들이 발생했다. 사실 하나같이 아주 사소한 실수들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그 같은 실수를 범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상당히 마음에 걸리는 사태였고, 그 점은 아마 여러분도 이해가 될 듯하다. 그래서 나는 과오의 원인을 두고 기우에 가까운 온갖 가정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들에서 너무나 흔히 발생하는 일이지만, 나는 명백한 사실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내가 그 간단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켄턴 양의 편지에 함축된 의미를 곱씹어 본 연후였다. 그 간단한 사실이란 최근 몇 달간의 작은 실수들이 인력 관리 체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며, 체계를 잘못 짠 것은 아니지만 불길한 조짐을 안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집사라면 누구나 최대한 세심하게 인력 관리안을 짜야 할 의무가 있다. 집사가 계획 작성 단계에서 아무렇게나 처리한 탓에 다툼과 허위 고발, 불필요한 해고가 발생하고 전도양양했던 경력이 막혀 버리곤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누가 알겠는가? 사실 나도 훌륭한 인력 관리안을 작성하는 능력이야말로 성실한 집사가 갖추어야 할 기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견해를 같이한다고 말할 수 있다. 내 경우로 말하자면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관리안을 작성해왔지만 수정해야 했던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해도 결코 지나친 자기 자랑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만약 이번 관리안에 결함이 있다면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내 탓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번 경우는 유난히 어려운 작업에 속했다는 점도 감안하고 넘어가는 것이 공정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사정은 이러했다. 거래, 즉 달링턴 가문이 200년 넘게 소유해 왔던 이 저택을 패러데이 어르신께서 인수하신 거래가 끝나자 어르신은 당장 입주하지는 않고 미국에서 넉 달 정도 더 머물며 여러 가지 일을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전해 오셨다. 그러나 전 주인을 모셔 온 직원들의 높은 명성은 패러데이 어르신도 들으신 바이기에 이 직원들이 달링턴 홀에 계속 남아 주기를 강력히 원하셨다. 그런데 그분이 말씀하신 ‘직원들’은 사실 최소한의 뼈대만 갖춘 팀에 불과했다. 거래가 진행되고 마무리될 때까지 저택을 관리하라며 달링턴 경의 친지들이 남겨 놓은 인원은 고작 여섯 명이었으니까. 그 후 매입 절차가 완결되고 나자 클레먼츠 부인을 뺀 나머지 직원들은 모두 다른 일자리를 구해 이곳을 떠나갔는데, 패러데이 어르신으로 하여금 그 일을 막도록 하는 데 나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는 유감스러운 이야기를 해야겠다. 내가 새 주인 어르신께 편지로 상황이 이렇게 된 데 대해 유감의 뜻을 전하자 미국에서 “웅장하고 유서 깊은 영국 저택에 손색이 없는” 새 직원들을 모집하라는 지시가 담긴 답변이 날아왔다. 나는 어르신의 뜻대로 실행하고자 즉각 작업에 착수했지만 알다시피 요즘 시절에 만족할 만한 수준의 새 직원들을 찾아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클레먼츠 부인의 추천으로 로즈메리와 애그니스를 고용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패러데이 어르신과 업무상 첫 만남을 갖게 될 때까지도 더는 진척을 보지 못했다. 그 만남은 작년 봄에 패러데이 어르신께서 예비 방문차 잠시 우리 땅에 다니러 오셨을 때 이루어졌는데 텅 비어서 낯선 느낌을 주는 달링턴 홀의 집무실에서 내가 어르신과 첫 악수를 나눈 것도 바로 그때였다. 그러나 당시 우리는 이미 서로 낮설다고 할 수는 없는 사이였다. 그동안 직원 모집 문제 외에도 몇 가지 사안들이 있어 새 주인 어르신께서 나의 자질을 필요로 하고, 감히 말하건데 내게 다행히도 있었던 자질, 즉 믿음직하다고 여기신 적이 몇 차례 있기 때문이다. 어르신께서 나를 보시고는 대뜸 믿는다는 듯한 태도로 실질적인 이야기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만남이 끝날 무렵이 되자 어르신은 장차 당신이 와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챙기라며 결코 적지 않은 액수의 돈을 내게 맡기고 관리하게 하셨다. 아무튼 이야기의 요지는, 바로 이 첫 면담 때 내가 당시 쓸 만한 직원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겪고 있던 애로 사항을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어르신은 잠시 생각해 보시더니 현재 있는 네 명의 직원, 다시 말해 클레멘츠 부인과 새로 뽑은 젊은 처녀 둘, 그리고 나만으로 집안일이 굴러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보라고 하셨다. 어르신의 표현에 따르면 “이를테면 일종의 당번제 같은” 인력 관리안을 짜 보라고 내게 요청하신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저택의 일부 구역에 ‘보를 씌우게’ 되리란 건 나도 잘 알지만, 그러한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당신의 모든 경륜과 전문 지식을 발휘해 줄 수 있겠소?
돌이켜 보면 나는 한때 열일곱 명의 직원을 거느렸던 사람이다. 그리고 이곳 달링턴 홀에서 스물여덟 명의 직원이 일했던 것이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니다. 그런 집을 네 명의 직원으로, 다시 말해 가장 최소한의 인원으로 굴릴 수 있는 방안을 짜 보라니, 생각만 해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 딴에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나의 회의적인 생각이 은연중에 드러났던 모양이다. 안심시키려는 듯 패러데이 어르신께서 곧바로 다음과 같이 덧붙였기 때문이다.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직원을 추가로 고용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또 한 번 되풀이하셨다.
“네 명으로 되게끔 해 주면 나로서는 정말 고맙겠소.”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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