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홈통 문제
1.
표지판
“친애하는 이에게,
마우리치오 체코니 베네치아 시의원이 첨부된 사업계획서를 바탕으로 ‘여행 건축: 호텔의 역사와 유토피아’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기획해보라고 우리에게 제안했답니다. 예정된 장소는 베네치아입니다. 재정 문제는 여러 단체와 협회의 도움을 받을 겁니다. 우리와 함께할 의향이 있다면……”
며칠 전에 배달된 이 열정적인 초대장은 특정 수신자에게 보낸 것이 아니다. 받는 사람 혹은 사람들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고 그저 애정을 듬뿍 담아 부른 것일 뿐이다. 공공기관의 후원을 받은 이 열정 넘치는 초대는 특별한 개인을 넘어 일반 대중, 인류, 또는 적어도 폭넓고 유연한 교양인과 지식인 사회를 아우르고 있다. 첨부된 사업계획서는 튀빙겐 대학과 파도바 대학 교수들이 참고문헌을 갖추어 논리정연하게 작성했다. 이 계획서는 예측할 수 없는 여행의 묘미, 서로 만나고 갈라지는 오솔길들, 우연한 휴식, 불확실한 저녁, 어느 여정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불균형을 학술서의 논리정연함을 갖추어 설명하고자 한다. 흔히 말하듯, 삶이 하나의 여행이고 우리는 이 땅에서 손님처럼 살다 가는 게 맞는다면, 이야말로 실존의 입지를 그린 밑그림인 것이다.
물론 전지구적 규모로 관리되고 조직되는 이 세계에서, 여행의 모험과 신비는 끝난 것 같기도 하다. 보들레르 시에 나온 여행자들이 이미 그러했듯,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났고 난파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었던 그들조차 미지의 그 세계에서 발견한 건, 매번 예상치 못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들이 집에 떼놓고 온 똑같은 권태였다. 그러나 움직이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풍경 속을 내달리는 기차 창밖을 내다보다 길가 나무들에서 내려와 사람들과 뒤섞이는 시원한 바람을 얼굴에 맞으면, 무언가 온몸을 스치며 당신을 지나친다. 바람이 옷깃 속으로 스며들면, 당신의 자아는 병에서 넘쳐 잉크빛 바다에 녹아내리는 약간의 잉크처럼, 해파리와도 같이 부풀어올랐다 꺼진다. 그러나 제복을 잠옷으로 갈아입듯, 슬그머니 이 결속을 느슨하게 해주는 것은 국경을 넘나드는 광적인 횡단, 대대적인 국경 해체 약속이 아니라, 학교 수업시간표에 있는 레크리에이션과도 같은 데서 나오는 시간이다. 복잡한 현실에서 시리도록 파란 하늘이 펼쳐지는 걸 느낀다 해도 그건 헛된 공상이라고 고트프리트 벤이 말했다. 여행사 요금표에 있는 ‘모든 것 포함’이라는 조항에는 하늘에 부는 바람까지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세상에 널린 자족적이고 독단적인 점쟁이들이 이미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다행히 여행을 분류하고 도표화하는 모험, 여행 방법론에 대한 매력은 남아 있다. 시의원에게서 의뢰받은 튀빙겐 대학의 교수는 세상이 오디세우스를, 실제적이고도 반복될 수 없는 개인의 경험을, 충분히 위협할 수 있을 정도로 단조롭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계획서 3쪽에서, 튀빙겐 신학 세미나가 낳은 위대한 문하생 헤겔을 인용해 방법은 곧 경험의 축적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스스로를 독려한다.
가는 물줄기가 내려다보이는 이 나무 벤치는 출발 직전에 우체통에서 찾게 되는 그 체계적인 계획서에, 그 논리적 여정 아래에 숨어 흐르는 소박한 푸가 기법에, 친근함을 갖게 해준다. 나무에서는 좋은 냄새가 나고, 〈외딴 계곡의 사나이〉*에서처럼 무미건조한 남성다움이 느껴진다. 브레크 강─아니면 다뉴브 강?─은 반짝이며 흘러가는 갈빛 청동 띠 같다. 군데군데 남아 있는 숲속 잔설 덕에 삶이 시원하고 유쾌한 하루같이, 푸른 하늘과 청명한 바람의 약속같이 느껴진다. 주변 환경과 하나되는 행복과 더불어 기분좋은 여유가 ‘친애하는 이’라는 정감 어린 그 말로 더욱 고무되어 세상에 대한 신뢰로 이끌어주고, 이 독문학자가 헤겔 논리학과 항목에 따라 분류된 여러 호텔을 오가며 내린 총합, 베네치아 프로그램에 몸담도록 하는 이 계획안을 수락하게 했다.
여행이 건축일 수 있으며 그 건축물에 돌 몇 개를 보탤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비록 여행자가─앉은뱅이 업무 때문에─풍경을 구축해나간다기보다는, 에른스트 호프만이 이야기했던 폰 R. 남작처럼 풍경을 부수고 해체하는 사람이라 해도 말이다. 폰 R. 남작은 파노라마를 수집하면서 세상을 돌아다녔는데, 멋진 경치를 즐기거나 그것도 모자라 그 멋진 경치를 만들어내야겠다 싶으면 나무를 톱질하고 가지를 쳐서 울퉁불퉁한 지면을 평평하게 고르는가 하면, 시선에 방해가 된다 싶으면 숲 전체를 없애버린다거나 농장을 부수기도 했다. 그러나 파괴도 건축이다. 규칙과 계산이 따르는 해체다. 해체했다가 재구성하는 기술, 다시 말해 또다른 질서를 창조하는 기술인 것이다. 나뭇잎 울타리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멀리 석양빛에 물든 어느 성의 폐허를 드러냈을 때, 폰 R. 남작은 자신이 연출해놓은 그 광경을 몇 분 동안 가만히 바라보다가 서둘러 자리를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 잭 스케퍼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조지 스티븐스의 영화 〈셰인〉Shane, 1953의 유럽 개봉 당시 제목.
모든 경험은 끈질긴 방법의 결과다. 폰 R. 남작이 봤던 저멀리 투명한 석양빛이나 슈바르츠발트* 산맥에서부터 내가 지금 앉아 있는 이 벤치까지 불어오는 눈바람 역시 그렇다. 삶이 자신의 뜨거운 섬광을 드러내는 곳은 바로 그 분류들 속에서다. 삶을 카탈로그로 만들려 하고, 이런 식으로 삶의 신비와 매력의 마지막 잔여물을 명확히 제시하려 하는 문서를 통해 삶은 스스로를 드러낸다. 이와 같이 야심만만한 두 학자가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1.1, 1.2, 2.11, 2.12 등등)처럼 논리정연하게 정리한 사업계획서는, 숫자와 그다음 숫자 사이의 소소한 여백에서 여행의 변화무쌍함을 엿보게 해준다. 계획서에는 호텔이 이렇게 분류되어 있다. 럭셔리 호텔, 부르주아 호텔, 서민 호텔, 대중 호텔, 지방 호텔, 항구 호텔, 여행자 호텔, 전원 호텔, 왕족 호텔, 전통 호텔, 수도원 호텔, 자선 호텔, 귀족 호텔, 장인조합전용 호텔, 세관원 호텔, 우체국 호텔, 마부 호텔 등. 과학적인 도표만이 대상들과 일상적인 사건들, 그것들의 관계와 맥락에 대한 형이상학적 유머를 적절히 부각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계획서 E 부분─호텔에서 벌어질 수 있는 것과 관련된─ ‘장면들’이란 장의 어느 부분들은 이렇게 읽힌다. “2.13. 에로틱한 장면:─구애─매춘. 2.14. 목욕. 2.15. 침실. 2.16. 기상 알람.”
* 다뉴브 강이 시작하는 독일 서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삼림지대로, 불에 탄 듯한 검은 나무들이 많다. 독일어로 ‘검은 숲’이라는 뜻이다.
이 벤치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슈바르츠발트의 노이에크 호텔은 어떤 호텔 부류에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23년 전 그 호텔 퓌어스텐베르크 맥주 광고가 그려져 있던 맥주잔 받침 앞에서 내 인생이 결정됐다. 청색 테두리가 있는 황금색 바탕에 붉은 용이 그려진 둥근 종이 받침은, 내가 두 손으로 만지작거렸던 흰색과 붉은색 테이블보를 배경으로 놓여 있었다. 출발과 귀환은, 파리의 그 미치광이가 말했듯 “나의 지리를 알기 위한 여행”*인 것이다. 이 벤치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표지판은 다뉴브 강의 수원 전체─또는 한 곳─를 표시해 이것이 중요한 문제임을 강조하고 있다. 횔덜린은 다뉴브 강의 수원 근처를 지나면서 이 강을 ‘멜로디의 강’이라고 불렀다. 다뉴브 강은 신들의 심오하고 은밀한 언어이며,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독일과 그리스를 연결하는 길이다. 신화의 시대 동안 독일 서부에 존재감을 가져다주기 위해 거슬러 흘러온 시와 언어의 물줄기인 것이다. 횔덜린이 보기에 이 강변에는 아직도 신들이 있었다. 현대에 들어 추방과 소외의 밤을 보내고 있는 인간들에게 이해받지 못한 채 숨어 있기는 해도, 신들은 분명 살아 있고 존재하고 있었다. 독일인의 깊은 잠 속에, 현실 언어에 의해 마비되어 있으나 어느 유토피아적 미래에 다시 깨어날 운명으로, 가슴·자유·화해의 시가 잠들어 있었다.
다뉴브 강은 이름이 많다. 몇몇 민족 사이에서 다뉴브 강과 이스트로스 강은 각각 상류와 하류를 가리켰지만, 이따금 그 전체를 나타내기도 했다. 플리니우스·스트라본·프톨레마이오스는 다뉴브 강이 어디서 끝나고 이스트로스 강이 어디서 시작하는지 궁금해했다. 일리리아일 수도 있고 철문일 수도 있다.** 오비디우스가 이를 가리켜 ‘복명bisnominis’이라고 했던 이 강은, 집으로 돌아가려고 생각했던 오디세우스적 정신의 꿈을 품은 채 게르만 문화를 이끌고 동쪽으로 흐르다가 다른 문화들과 뒤섞이며 수없이 혼혈변형을 해왔다. 그 속에서 강은 역사의 흥망성쇠를 함께했다. 자신의 세상으로 모두를 통합해버리는 그 물길을 따라 기회가 될 때 틈틈이 여행하는 게르만어 학자는, 인용과 편집증적 공상으로 점철된 짐 꾸러미를 함께 갖고 다닌다. 한 시인이 「취한 배」에 자신을 맡겼다면, 이 시인 대역은 장 파울의 충고를 따르려 한다.*** 장 파울은 낡은 서문, 연극 포스터, 역에서의 잡담 구문, 전쟁 시가곡, 장례 문구, 형이상학적 문구, 신문 스크랩, 술집 광고문과 교구의 공고문 같은 이미지들을 길에서 모아 메모하라고 권했다. 『동방 여행 동안의 기념품·인상·생각·풍경』이라는 라마르틴의 작품 제목처럼 말이다. 누구에 대한 인상과 생각일까? 흔히 그렇듯 혼자 여행할 때 우리는 자신의 쌈짓돈을 써야 한다. 하지만 때때로 인생은 후하기도 해서, 이따금일 뿐이고 잠깐이긴 해도, 심판의 날과도 같은 결정적인 날에 우리 이름을 말하며 우리를 위해 증언해줄 너덧 명의 친구들과 어울려 세상 구경을 하게 해주기도 한다.
* 프랑스 정신과 의사이자 미술비평가·시인 마르셀 레자의 책 『광인들의 예술』1907에 나오는 구절** 일리리아Illyria는 아드리아 해 동쪽, 즉 지금의 발칸반도 서부에 있던 고대 국가를, 철문Iron Gate은 루마니아와 구 유고슬라비아 국경을 이루는 다뉴브 강의 협곡을 가리킨다.*** 프랑스 시인 아르튀르 랭보와 그의 시 「취한 배」1891를 가리킴. 모험에 있어 시인의 ‘영감’을 중시한 랭보의 정신과 랭보보다 앞선 낭만주의 시대의 독일 소설가 장 파울의 태도를 비교한 대목.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