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비애
숲은 뒤집혀
불타고
불은 부리가 되어
탄 숲을 새의 눈 속에 넣고
날아갔지
돌아오기 위해
다만 무언가 죽여야 했어
심부름을 했지
불은 내 거야
교생 선생님
죽었을 거야
머리가 길었지
교생 머리를 따라 교실 밖으로 나갔어
아이들은 체육을 하고
나는 너무 멀리 와버렸지
호수에 닿았어
덥고 슬펐어
머리칼 사이로 너무 아름다운 물고기들이
뻐끔거리고 있었거든
교생은 몰랐을 거야
자신의 가난과 비극 끝에
그런 것들이 매달려 있을 줄은
달로
밝고 명랑한 단순한 사람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
골목을 따라 길게 구부러진 목의 이름
달로
구름이 목을 베며 지나간다
별일 아니라는 듯
머리 없이 사는 하루 이틀
한평생
종로 큰 집 드나드는 무학 식모가
종로 스콘 전문점을 지나듯
몰라
난 행복해
행복한 거야
스콘?
잠 못 드는 소년이 말했다
불행이라는 게 있다죠
산다는 건 뭘까요
아빤 자요, 엄만 요가
나는 먹고살 만하지만
밝아오는 아침은 이토록 끔찍한걸요
여러 가지 생각하다
몇 개의 알약을 삼키려 목을 젖히다
태양이 쿵
아침이 떡
활기찬 서울이 왔다
6·25를 지나
총에 맞아 등이 터진 언니와
비쩍 곯은 엄마의 시체를 넘고 넘어
세상에 홀로 남겨진 어릴 딸에게
글자는 몰라도 돼
밥만 먹여주면 돼 밥만
온 가족이 멸족한 소녀의 배달 가방에서
훼미리주스와 함께 넘실거리는 한세상
밥 몇 그릇 먹고 나니 팔순 노인이다
별일 아니라는 듯
전쟁이 끝나고
민주주의라는 것이 왔다
* 이 시는 1941년에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은 이애순 할머니와의 대화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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