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공자의 꾸지람
재여가 낮잠을 잤다. 선생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썩은 나무는 새길 수 없고, 썩은 흙 담장은 손질 할 수 없다. 너 같은 놈 꾸짖어서 뭣하랴.”
宰予晝寢 子曰 朽木不可雕也 糞土之牆 不可圬也 於予與何誅
- 『논어』, 「공야장」 -
논어를 읽다보면 공자가 제자들을 꾸지람하는 대목이 종종 나온다.
보통은 점잖게 꾸짖지만 어떤 때는 심하게 꾸짖을 때도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심한 욕은 재여가 낮잠을 자다가 공자에게 꾸지람을 들은 대목인 재여주침宰予晝寢이다.
내용은 이렇다.
재여가 낮잠을 잤다. 선생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썩은 나무는 새길 수 없고, 썩은 흙 담장은 손질 할 수 없다. 너 같은 놈 꾸짖어서 뭣하랴.”
宰予晝寢 子曰 朽木不可雕也 糞土之牆不可圬也 於予與何誅
분위기가 영 살벌하다. 공자 맞나 싶다. 논어의 다른 부분에 나오는 온화한 인상의 공자와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썩을 놈도 아니고 이미 썩은 놈이라니. 낮잠 좀 잤기로 너무 심한 욕이 아닌가. 한나라의 왕충은 이걸 가지고 공자를 비판했다. 말인즉,
“공자는 스스로 사람을 너무 미워하는 것은 미혹된 태도라 해 놓고, 재여가 낮잠 잔 것을 이유로 심하게 미워했다. 그러니 스스로 한 말을 지키지 못한 셈이다.”
왕충의 비판이 일리가 있다. 그러나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 재여는 낮잠을 잤기 때문에 꾸지람을 들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공자에게 욕을 가장 많이 들었던 제자는 단연코 급한 성질 못 참고 내키는 대로 말했던 자로일 것이지만, 심한 정도로 치자면 재여가 먹은 이 욕이야말로 가장 심하다. 게다가 재여는 삼년 상 문제로 공자에게 대들다가 불인不仁한 자로 지목받는 적도 있잖은가.
주희는 주침晝寢을 당주이침當晝而寐, 곧 낮에 잠을 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재여는 말은 잘했지만 행실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공자가 심하게 꾸짖은 것이라고 하면서 범조우와 호명중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그들로서는 농경사회에서, 배우는 자가 낮잠 잔 것만으로도 그 정도 욕은 충분히 먹을 수 있다고 여겼을 법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석연찮다. 무엇보다 욕의 내용이 낮잠 잔 것과는 상관이 없질 않은가.
그래서인지 일본의 어떤 사람은 재여가 그냥 낮잠을 잔 것이 아니라 대낮에 여자를 끌여 들여 같이 잤다고 풀이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아무리 재여가 시원찮은 제자였다고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이런 저질의 인간들이 공자가 남자南子라는 여자를 만났을 때 무슨 썸씽이 있었다는 둥 근거 없는 헛소리 하는 거다. 하기야 요즘도 사람이 유명해지면 없는 소문도 만들어지니 무슨 말을 할까.
언젠가 중문학 관련 학술대회에 참가하여 논어 번역 관련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중문학 전공 모모한 교수들이 똑 같은 이야기를 해서 아연한 적이 있었다. 게다가 내가 이을호역 한글논어가 최고의 번역이라고 평가했더니 어떤 양반은 그게 무슨 잘 된 번역인가, 성인 공자를 모독하지 말라 했다. 나는 논어를 우리말로 완전히 풀어서 번역한 게 모독이라면 모독이야말로 나의 목적이라고 받아쳤다. 한쪽에서는 공자가 남자와 무슨 썸씽이 있네 없네 하고, 또 한 쪽에서는 성인모독 운운해서 참 당혹스러웠다. 내가 보기에 한쪽은 천박했고, 다른 한쪽은 고루했다.
다산은 어떻게 보았을까. 다산 정약용은 먼저 침寢자는 ‘잔다’는 뜻이 아니고 ‘눕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그래서 재여가 낮잠을 잔 것은 아니며 대낮에 누워있었기 때문에 공자가 꾸짖은 것이라고 했다. 침寢자에 그런 뜻이 있으니 다산의 견해도 남겨둘 만하다.
재여를 이상한 인간으로 보지 않은 것이다. 적어도 그건 맞는 이야기다. 다산은 자로를 비롯한 공자의 제자들을 모두 높이 평가했으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계씨의 가신이 되어 가렴주구했던 염구만 빼고.
근데 다산도 한 가지는 빠트렸다.
침寢자에는 ‘눕다’는 뜻도 있지만 침상寢牀 또는 침실寢室이라는 뜻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언침偃寢이라고 하면 ‘침상에 누웠다’는 뜻이고 입침入寢이라고 하면 ‘침실로 들어갔다’는 뜻이다.
다산의 해석대로 하면 재여는 구제 받을 수 있지만 공자가 이상해진다. 이게 문제다. 공자가 이상해지지 않으려면 재여가 나쁜 짓을 한 것이라야 한다. 그렇다고 여자를 끌어들여 잤다느니 하는 파렴치한 짓 말고, 일반적으로는 있을 수 있지만 공자 문하에서는 용납 안 되는 그런 일이라야 한다. 공자가 절대 이상할 리 없다는 뜻이 아니다. 논어는 제자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가 기록으로 전해진 문헌이다. 그런 논어에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공자의 모습이 있다면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거 중요한 이야기다. 그 때 사람들과 지금 사람들의 상식이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적어도 일상의 영역에서는.
얼마전 방이지方以智의 『통아通雅』를 읽다가 비로소 이 의문이 풀렸다.
방이지에 의하면 한유韓愈가 주晝자를 획畵(화로 읽으면 그린다는 뜻이고 획 『劃』으로 읽으면 긋다, 새기다는 뜻)자로 바로 잡았다고 했다. 한유의 『논어필해論語筆解』를 찾아보니 과연 그렇다. 주晝자와 획畵자는 한 획 차이인데 그로 인해 오자가 생겼다는 거다. 그러면서 획畵자가 주晝자로 잘못 쓰인 용례를 들고 있다.
이게 맞다. 그럼 어떤 의미가 되는가.
재여는 자신의 침상 또는 침실에다 화려하게 무늬를 새긴 거다.(위에서 말한 것처럼 寢자에는 침상의 뜻이 있다.) 그러니 공자가 그 꼴을 보고 욕한 거다.
이렇게
“너같이 정신이 썩어빠진 놈은 침상에 아로 새겨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고...
가만히 보면 욕한 내용이 후목불가조朽木不可雕다. ‘썩은 나무는 새길 수 없다.’는 뜻인데 여기서 썩은 나무는 재여를 가리킨 것이고 조雕는 재여가 한 행위, 곧 침상에 아로새긴 행위를 말한다. 뒤의 분토지장 불가오糞土之牆 不可圬는 더 심하게 말한 것일 뿐 같은 뜻이다.
욕을 해도 맥락을 가지고 욕을 한 거다. 주희는 조雕를 각획刻畵(새긴다는 뜻)이라고 정확하게 풀이까지 해 놓고도 그걸 놓쳤으니 애석하다할 만하다.
그러니 같은 논어에서 ‘장문중은 거북이껍질을 간직하고 동자기둥에는 산을 아로 새기고 기둥머리에는 수초를 그려 넣었으니 어찌 지혜롭다 하겠는가臧文仲居蔡 山節藻梲 何如其知也’하고 비판한 것과 같은 맥락인거다.(해석이 종래와 다른 까닭은 왕부지의 견해를 따랐기 때문이다.)
공자는 늘 이렇다. 사소한 잘못은 너그럽게 용서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赦小過 이런 건 용서하지 않는다.
22. 반드시 글자를 바로 잡으리라
글자를 바로 쓰지 아니하면 말이 순조롭게 전달되지 않고, 말이 순조롭게 전달되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일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면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고,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이 적중하지 못하고, 형벌이 적중하지 못하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다.
名不正則言不順 言不順則事不成 事不成則禮樂不興 禮樂不興則刑罰不中 刑罰不中則民無所錯手足
- 『논어』, 「자로」 -
공자가 위나라에 가기 전 자로가 이렇게 물었다.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을 모셔서 정치를 베풀려고 합니다. 선생님은 무엇부터 하시겠습니까?”
“반드시 글자부터 바로 잡을 것이다必也正名乎”
“어허! 글쎄 이렇다니깐. 선생님, 참 딱도 하십니다. 그딴 건 뭣 하러 바로 잡습니까?”
“이런 야비한 제자가 있나. 모르면 잠자코 있을 게지. 글자를 바로 쓰지 아니하면 말이 순조롭게 전달되지 않고, 말이 순조롭게 전달되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일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면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고,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이 적중하지 못하고, 형벌이 적중하지 못하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다.
名不正則言不順 言不順則事不成 事不成則禮樂不興 禮樂不興則刑罰不中 刑罰不中則民無所錯手足”
종래에는 정명正名의 명名을 대체로 주희의 해석을 따라 명분名分으로 보고 ‘명분을 바로잡는다’는 뜻으로 번역해 왔다. 그러나 최근 정현의 논어주를 보았더니 ‘명名’을 ‘자字’로 풀이하고 ‘정명正名’을 ‘정서자체正書字體’, 곧 글자체를 바로잡는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명名자가 자字자로 쓰이는 용례가 있는지 확인해 보았더니 『의례儀禮』에 “백자 이상의 기록은 죽간에 쓰고 백자가 안 되는 기록은 목판에 쓴다百名以上書于策 不及百名書于方”는 기록이 보인다. 이렇게 되면 일단 훈고訓詁는 성립되었고...
이제 명名을 추상적인 의미의 명분名分에 국한시켜 해석하는 견해에 이의를 제기해보자.
명名을 명분으로 보고 위의 문장을 압축하면 명분이 바로 서지 않으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다名不正 則民無所錯手足는 뜻이 될 터인데, 가정과 결론 사이에 거리가 너무 멀지 않은가. 도대체 통치자를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던 당시의 백성들에게 군주의 정통성과 관련된 명분이라고 하는 추상적 개념이 바로 서건 말건 그것이 삶에 무슨 영향을 미쳤을 것인가.
명名은 정현鄭玄의 훈고를 따라 자字로 풀이하면 보다 쉬운 해석이 가능하다. 이 한 글자의 해석을 달리 하면 공허한 것처럼 들리는 저 말이 모두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정명’을 ‘명분을 바로 잡는다’고 해석하더라도 명분이라는 말에 글자와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을 함축할 수는 있기 때문에 명분으로 해석하는 견해를 버릴 필요는 없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명名은 법률조문을 기록한 문서의 글자를 말한다. 또 언불순言不順의 언言은 관리가 백성들을 모아 놓고 법률문서를 읽어주는 독법讀法행위를 의미한다. 백성들은 글자를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내용 중에는 농사일과 관련된 월령月令(언제 씨뿌리고 언제 김매고 언제 수확하는지를 기록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만약 이게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백성들이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없다.
사事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말할 것도 없이 민사民事고, 민사는 농사農事다.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하면 당연히 예악도 일어나지 않는다. 음식이 있어야 예가 있고( 『예기』에 의하면 음식남녀 때문에 예가 발생했다.), 수확물이 있어야 제사를 지낼 수 있으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더욱 심각한건 백성들이 모르고 저지르는 범죄가 많아진다. 그러니 형벌이 적중되지 못할밖에. 한마디로 망하는 거다. 그런데 이게 모두 백성들이 국법을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렇다면 법이란 무엇인가?
법가의 이론가 한비는 법을 이렇게 말한다.
“인군이 가진 가장 중대한 물건은 법法이 아니면 술術이다. 법은 문서로 기록하여 관부에 비치하고 백성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이다. 술이란 마음에 간직하여 온갖 일들을 판단하여 신하들을 암암리에 통제하는 수단이다. 때문에 법은 분명히 드러날수록 좋고 술은 드러나지 않는 것이 좋다. 이 때문에 명군이 법을 말하면 나라 안의 비천한 사람들도 들어서 알지 못함이 없다.
人主之大物 非法則術也 法者 編著之圖籍 設之於官府 而布之於百姓者也 術者 藏之於胸中 以偶衆端而潛御群臣者也 故法莫如顯 而術不欲見 是以明主言法 則境內卑賤莫不聞知也 『韓非子』”
법法은 분명하게 밝혀야 하고, 술術은 감추어야 한다니. 한비는 아무래도 좀 음험하다. 아무튼 이에 따르면 법률은 무엇은 해도 되고 무엇은 해도 안 된다는 것을 규정하는 문서기록이다. 이를테면 나무가 한참 생장하는 여름철에 숲에 들어가 나무를 베어서는 안 된다든지, 한 척이 되지 않는 물고기는 잡지 말아야 한다든지, 농경에 필요한 소를 함부로 도축해서는 안 된다든지, 봄철에 술을 빚어서는 안 된다든지 하는 따위의 금법禁法들이다. 그런데 이게 불명확하면 어찌 되겠는가. 백성들은 무엇은 해도 되고 무엇은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이게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는 구체적 상황이며 공자가 걱정했던 것도 바로 이런 문제다. 자로가 이런 생각을 못했으니 욕을 먹어도 싸다. 공자는 공허한 명분론자가 아니다. 다만 백성들이 법률을 알지 못해서 일어나는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저런 말을 했던 것이다. 하물며 모르고 저지른 죄는 범죄가 아님에랴.
맹자는 『서경』에 나오는 ‘어린 아이 돌보듯 한다若保赤子’는 말을 풀이하면서 무지한 백성들이 몰라서 죄를 저지르는 것은 마치 “벌거벗은 어린 아이가 우물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과 같으니 그것은 어린 아이의 죄가 아니다赤子匍匐將入井 非赤子之罪也”고 했다.
중국 운몽에서 발견된 진간秦簡의 법조문에도 ‘모르고 했으면 처벌하지 않는다.’는 기록이 있다. 예컨대 남편이 도둑질 해온 돈을 아내가 썼을 경우, 남편을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아내까지 처벌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따지면서, “아내가 남편의 도둑질을 알고 썼으면 처벌해야 하고 모르고 썼으면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천하에서 가장 악랄한 법으로 알려진 진나라의 법도 무지한 자의 범죄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었다.
그럼 글자도 다 알고 배울 만큼 배운 자들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저지른 부정, 부패, 비리의 범죄에 대해서 뭐라고 할 것이며, 명분에 맞지 않는 전쟁에 젊은이들을 보내려 하는 자들에게 뭐라고 할까?
맹자라면,
“법정최고형으로 처벌해야 한다善戰者 服上刑 『孟子 이루』”고 할 것이다.
[파일: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