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역시 옥희 씨가 살짝 언급했던 것처럼 달구나 달구 아버지도 새엄마의 부적절한 행실을 전혀 모르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달구는 큰 체구와는 달리 참 영리한 구석이 있다. 언어에 대해서도 매우 민감하다. 예전에 운동하다가 머리를 다친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그런 놀라운 감각이 생겼다고 나는 믿고 있다.
“음, 네 새엄마라서 내가 딱히 할 얘기는 없지만, 참 우스운 꼴이구나.”
“그러게 말이에요.”
“음, 참 만세는 공장에 잘 다니니?”
“아이구, 말도 마세요. 벌써 세 번인가 술을 잔뜩 먹고 결근을 했어요. 만날 밤마다 술을 먹고 오토바이를 몰아요. 새엄마가 만세 형 때문에 아주 골치가 아픈가 봐요.”
달구의 말을 듣고 있으니 어떤 불안한 느낌이 거머리처럼 내 뒷덜미에 슬그머니 내려앉는 것만 같아 소름이 끼친다.
“아니 술을 마시고 오토바이를 타면 어떡해? 그러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구. 본인이 다치는 거도 문제지만 멀쩡한 행인이라도 치면 어쩌려구?”
어쩌면 내 뇌리 속에는 새벽길 오토바이에 치여 세상을 떠난 달구 엄마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는지도 모른다. 그건 달구도 마찬가지였는지, 달구의 표정도 몰라보게 어두워진다.
달구로부터 밤마다 술을 먹고 오토바이를 탄다는 만세 얘기를 듣고 불현듯 엄습했던 불안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로 나타났다. 아직 동이 채 트지도 않은 이른 아침, 새벽기도에 다녀오던 할머니가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달구가 몰던 오토바이에 치여서 중상을 입은 것이다.
그런데, 염치없게도 할머니를 친 달구는 엄연히 자신의 과실을 인지하고 나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그대로 달아났던 모양이다. 말하자면 뺑소니였던 것이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목격자의 증언에 의해 그날 새벽 오토바이를 몰다 할머니를 친 사람이 만세로 밝혀졌고 그 결과 만세는 지금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꽃집 아주머니가 점심때 우리 약방에 와 알려준 사실이지만 그 사고를 목격한 사람은 목욕탕 손씨 아저씨였다고 한다. 손씨 아저씨는 목욕탕 문을 열려고 마침 밖으로 나왔다가 사고를 목격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손씨 아저씨는 경찰에서 목격자 증언을 구체적으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냥, 오토바이 한 대가 할머니를 치고 가던 방향으로 그대로 달려갔다고만 두루뭉술하게 증언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오토바이 운전자가 만세였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언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옥희 씨라고 했다. 옥희 씨는 그 시간 막 잠에서 깨어 자기 방 창문을 열었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오토바이가 아스팔트 거리에서 미끄러지는 소리가 났고, 그 소리에 놀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는데, 마침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식당 홀로 들어서는 만세와 마주쳤다는 것이다. 만세는 옥희 씨에게 마치 협박을 하듯 자신을 보았다는 말을 절대로 아무에게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실 그 말만큼 결정적인 증거가 어디 있겠는가. 옥희 씨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갔더니, 목욕탕 손씨 아저씨가 저쪽에서 길에 쓰러진 할머니를 부축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옥희 씨는 그날 아침 달구 아버지에게 말했고 달구 아버지는 오늘 현장에 조사하러 나왔던 경찰에게 옥희 씨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는 것이다.
뭐 만세 따위가 무서웠을 리는 없겠지만 아무튼 옥희 씨의 용기 있는 증언으로 만세가 술에 취한 채 새벽길에 오토바이를 몰다가 할머니를 쳤다는 것이 밝혀졌다. 달구에게 전화로 확인했더니 지금 새엄마는 달구 아버지와 함께 경찰서에 갔다고 한다. 그리고 오토바이에 치인 할머니는 두 다리와 갈비뼈가 부러졌다고 한다. 다치신 건 참 안 된 일이지만 그만하기 천만 다행이다. 그런데 기막히도록 어이가 없는 건 달구 새엄마가 경찰서에 가기 전, 달구 아버지와 옥희 씨에게 퍼부었다는 극악한 폭언이다. 달구가 그것을 연극배우처럼 재연하며 그대로 내게 전해주었다.
“새엄마가 입에 거품을 물고 말도 아닌 말을 하더라구요. 정말이지 그 말은 내가 들어본 말 중에 가장 구질구질한 말이었어요. 아빠한테 이러더군요. ‘내 아들을 그렇게 팔아먹다니 그러고도 당신이 제대로 살 줄 알아? 평생 나한테 한번 당해봐. 내가 당신 속을 새카맣게 태워놓을 테니.’ 그리고 옥희 누나한테 한 말은 이런 거였어요. ‘옥희 이년아, 혀를 뽑아버려도 시원찮을 년 같으니, 그냥 잠자코 있으면 될 일을 주둥이를 놀려? 너 내 아들 감옥이라도 가봐, 너도 같이 처넣을 테니. 두고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