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고 있는 일요일 오후다. 계절은 서서히 장마철로 접어들고 있다. 나는 창문을 열고 빗소리를 듣는다. 바닥에 내려앉아 있던 비둘기들이 모두 나뭇가지를 타고 앉아 있다. 그들이 부산스럽게 쪼아 먹던 사료는 비에 젖어서 흉물스럽게 으깨진 채 거리를 더럽히고 있다. 나는 새총을 들고 유난히 살진 비둘기 한 마리를 조준해서 총알을 날린다. 총알은 작은 돌조각이다. 하지만 나의 새총 실력은 참으로 형편없는 것이어서 돌조각은 엉뚱한 데로 날아가 버리고 만다. 내가 쓰는 시도 잘못 조준된 새총의 총알처럼 세상을 향해 날리는 엉뚱한 외침 같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니 조금 우울해진다.
사실 내가 우울한 것은, 오늘 옥희 씨와 데이트가 불발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옥희 씨는 거의 감금상태에 있는 모양이다. 주인아주머니, 그러니까 달구 새엄마가 외출을 금지했다고 한다. 지난번 만세의 뺑소니 사건 때, 옥희 씨가 자기 아들 만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것에 대한 앙갚음이리라. 바로 오늘이 달구네 식당이 쉬는 날이고 옥희 씨와 나는 데이트를 하기로 했는데, 달구 새엄마가 난데없이 오늘 아침 옥희 씨에게 식당 홀 바닥의 물청소를 지시했다고 한다.
달구가 보낸 문자를 보면 달구 새엄마가 얼마나 득달같이 옥희 씨를 못살게 구는지 짐작이 간다.
‘형, 옥희 누나 불쌍해 죽겠어요. 새엄마가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고 일을 시켜요.’
달구와 달구 아버지가 달구 새엄마 앞에서 몇 번 옥희 씨 편을 들었다가 된통 욕을 먹었다고 한다. 나는 외출 준비를 한다. 이대로만 보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달구네 식당에 가서 아주머니에게 항의를 할 생각이다.
어머니의 힘없는 노랫소리가 들리는 일층 현관을 지나 밖으로 나오니 빗방울이 이마에 부딪힌다. 그 느낌이 처음으로 얼음에 손을 대본 순간처럼 상큼하게 느껴진다. 나뭇가지에 앉은 비둘기 몇 마리가 똥을 휘갈긴다. 나는 그것들을 피해 달려간다. 이제 비둘기 똥 따위는 맞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것 따위에 모욕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4차선 도로를 웬 구급차 한 대가 웽웽 사나운 사이렌 소리를 내며 거리를 질주한다.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든다.
나는 이윽고 달구네 식당 앞에 도착하고, 잠시도 망설임 없이 식당 문을 연다. 옥희 씨가 허리를 굽히고 바닥에 솔질을 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놀랍게도 달구 새엄마가 손에 빗자루를 거꾸로 들고 옥희 씨를 내려보면서 다그치고 있다. 빗자루를 거꾸로 들었다는 것은, 그것의 용도가 상대방을 위협하는 데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달구 새엄마는 마치 종을 부리듯 옥희 씨를 대하고 있는 것이다. 달구는 보이지 않고 달구 아버지는 카운터에 앉아 손에 턱을 괸 채로 좀처럼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
내가 홀 안에 들어서자 달구 새엄마가 나를 보고는, 적대감이 담긴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친다.
“오늘 장사 안 해, 여긴 뭐 하러 왔어?”
그 무례한 목소리가 내 분노의 심지를 당긴다. 상대는 비겁으로 무장된 사람이다. 어쩌면 나는 그녀에게 처참한 모독을 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뻔하고 어이없는 폭력 앞에서 그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 더욱이 내 눈앞에서 내 사랑이 능욕을 당하고 있지 않은가.
“아주머니,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옥희 씨가 종입니까 노예입니까? 지금이 무슨 중세시댄 줄 아세요!”
나의 돌연한 태도에 달구 아버지와 옥희 씨가 놀랐는지 나를 바라본다. 나는 달구 아버지에게도 서운한 마음을 드러낸다.
“아저씨도 그래요. 어떻게 저런 만행을 보고만 있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