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달콤한 소보로빵 색깔의 얼룩무늬 반점이 눈처럼 흰 털 사이에 번져 있는 아기 고양이다. 내가 태어난 곳은 주택가 사이에 쓰레기가 쌓여 있는 빈터의 멜론상자 안이었다.
모두 여섯 형제가 태어났는데 다섯째 노미는 태어난 지 사흘째 되는 날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빠 고양이 쿠쿠와 엄마 고양이 모로는 아기들이 태어나자 매일 하나씩 이름을 지어와 형부터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름을 지어주는 고양이는 위대한 예언가라는 뜻의 마쑨타라고 불리는 붉은색 털을 가진 고양이였다. 그렇게 해서 큰형은 아치, 둘째형은 글롬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고 사흘째 되던 날 나의 바로 위의 누나 슈슈가 이름을 얻었고 나는 네 번째이기 때문에 나흘째 되어서야 이름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나의 이름이 좋았다. 그 다음 내 동생 이름으로 받아온 것이 노미였는데, 아빠 고양이는 그냥 막내에게 그 이름을 주자고 했지만 엄마 고양이가 그저께 죽은 다섯째에게도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고 해서 죽은 동생이 노미가 되고 막내는 새로 이름을 지어 징요라고 불리게 되었다. 징요는 작은 불꽃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멜론상자는 비좁았지만 우리 여섯 식구가 살기에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왜 여섯 식구라고 했냐 하면 아빠는 한 번도 우리랑 같이 잔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친구들과 함께 산 속에서 잠을 잤다. 엄마는 새벽녘이나 해가 떨어져 나뭇잎 색깔이 쥐구멍 색깔과 같아지면 잠시 외출을 하곤 했다. 아마 그때 어디 가서 뭘 먹고 오는 모양이었는데 우리는 엄마가 뭘 먹는지 몰랐다. 하여간 엄마가 돌아오면 우리는 달려들어 젖을 빨았는데, 둘째형 글롬은 얼마나 기운이 센지 젖이 제일 잘 나오는 쪽은 늘 둘째형 차지였다. 오른쪽 두 번째 젖이 제일 많이 나왔는데 내가 그걸 차지했더라도 글롬이 들이닥치면 양보하고 나는 다른 젖을 물어야 했다. 엄마 젖은 항상 모자랐다.
엄마는 늘 슬픈 눈으로 젖을 빠는 우리를 바라보다 잠들곤 했다. 엄마 젖이 말라버려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도 글롬형은 젖에 매달려 있었지만 아치형과 나는 멜론상자에서 나왔다. 민들레는 벌써 홀씨를 날려버렸고 덩굴장미가 빨간 초여름의 폭죽을 터뜨리고 있었다.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장애물이 나타났다. 컵라면 용기 한쪽 끝을 밟았더니 그 스티로폼 용기가 몽달귀신같이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심장이 뚝 떨어졌다. 쓰레기장엔 온갖 것이 다 있었다. 부서진 침대, 부엌 장 빨래걸이, 문짝, 변기, 수도꼭지, 궤짝, 신발, 돌리면 바퀴가 반짝반짝하는 롤러블레이드. 하지만 먹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집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게 아닐까 두려워 형한테 물었다.
“형, 집에 찾아갈 수 있어?”
“응, 걱정 마.”
아치형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우리 머리 위로 부서진 창틀이 곧바로 날아왔다. 나는 눈을 꼭 감았다. 요란한 소리가 나더니 창틀이 멈췄다. 모기장이 붙어 있는 창틀 사이로 잘게 잘린 하늘이 모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우린 위기를 넘기고 그날은 더 이상 가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녹슨 깡통에 기어오르는 작은 딱정벌레 한 마리.
부서진 블록 사이로 몸을 감추던 노리개.
그리고 버르장머리 없는 날파리가 한 서너 마리 될까? 우리가 만난 건 그게 전부였다. 집에 돌아오니 배가 너무나 고팠다. 코로 엄마 젖을 아무리 눌러도 젖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배가 고픈 채로 잠이 들면 그날은 꿈이 더 요란했다. 나는 얼마 전에 들은 마술고양이 꿈을 꾸었다.
지방또라는 마술고양이는 보석이 달린 재킷을 입고 구슬공이 달린 지팡이를 들고 나타나 마술을 부리는데, 하지와 동지 그렇게 일 년에 두 번 마술을 부린다고 했다. 하지에 하는 마술은 ‘레꾸니앙'이라는 마술인데 사람들이 모두 잠든 대낮에 낮을 잠깐 걷어버리는 것이었고 동지에 하는 마술은 ‘옹꾸니’라고 하여 밤에 살짝 밤을 걷어버리는 마술이었다.
레꾸니앙은 흰 망토를 걸치고 했는데, 옷소매에서 잡아 뺀 검은 천으로 태양을 가리고 마술 봉에서 나온 별가루를 확 뿌리면서 단 한 번의 손놀림으로 달을 만들어내는 요술이었다. 가끔 낮잠을 자고 났는데 마치 아침인 것 같은 착각을 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레꾸니앙이 막 끝날 즈음에 잠이 깼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비슷한 마술인 옹꾸니는 검은 옷을 입고 하는데, 커다란 칼로 밤을 가른 다음 태양이 있는 쪽을 걷어 내리면 순식간에 황금빛 햇살이 쏟아져 들어와 모든 고양이들이 한밤중에 불꽃파티를 하게 된다. 잠자던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잠이 깨면 옹꾸니는 끝이 났다. 그즈음에 깬 사람은 한밤중에도 대낮인 줄 알고 돌아다녀서 몽유병 환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나는 그날 레꾸니앙 마술을 하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어나니 아직도 벌건 대낮이었다. 엄마와 글롬형은 어디 가고 아치 형, 슈슈 누나, 그리고 막내동생 징요가 서로 포개져 자고 있었다. 징요는 자면서도 가끔 젖 빠는 흉내를 냈다.
멜론상자 안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함부로 나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문 앞에 엎드려 앞발을 쭉 뻗어보았다. 아무리 봐도 멋진 발이었다. 털이 복슬복슬한 약간 뭉뚝한 발은 아무리 귀가 밝은 토끼라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소리 없이 걸을 수 있다. 나는 발톱을 쏙 내밀어보았다. 아직은 거의 투명할 정도로 연한 발톱이지만 모양만 봐도 안심이 되었다. 나는 태양이 내 발을 탐낸다는 걸 안다. 나는 발을 멜론상자 안으로 끌어 들였다. 햇살도 따라 들어왔다. 나는 조금 더 뒤로 들어갔다. 햇살은 더 들어오지 못하고 문 뒤쪽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배가 고팠다. 그리고 다시 졸음이 쫓아왔다.
잠을 깨니 엄마가 와 있었다. 나는 허둥지둥 엄마 젖을 물었다. 왼쪽 두 번째 젖꼭지를 물고 있다 보니 글롬형 차지였던 오른쪽 두 번째가 비어 있었다. 나는 재빨리 그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역시 오른쪽 두 번째였다. 내가 코로 서너 번 꾹꾹 누르자 달콤한 젖이 흘러나왔다. 마치 입안에서 옹꾸니 마술이 벌어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맛있는 걸 만들 수 있는 건 지방또밖에 없을 거야. 그러나 누가 벌써 눈을 떠버렸는지 마술은 끝났다. 젖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슈슈가 젖꼭지에서 떨어지며 엄마 고양이에게 물었다.
“글롬 오빠 어딨어?”
“…”
엄만 대답 대신 멜론상자 지붕을 쳐다보았다. 낮에도 그렇지만 밤에도 집 안보다는 바깥이 더 밝았다. 밑에서 올려다본 엄마의 모습은 스핑크스처럼 커다란 검은 슬픔덩어리였다. 엄마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얘기를 시작했다.
“슬퍼하지 마라. 이 세상엔 아주 짧은 밤이 있는 낮과 아주 짧은 낮이 있는 밤이 있단다. 글롬 오빠는 아주 짧은 낮이 있는 밤이었나 보다. 누구나 왔던 곳으로 반드시 돌아가게 된다. 어디서 왔는지를 잊지 않고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단다. 연이 연줄이 없으면 날 수 없듯이 숙명은 우리에게 연줄 같은 거란다.”
엄마가 말을 마치고 났어도,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멜론상자 안엔 약간의 울림이 남아 있었다. 글롬 형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혼란스러움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쥐가 꼬리를 감추는 시간이 흐르기도 전에 멜론상자 안엔 납 같은 침묵이 흘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배고픈 것을 잊었다. 슈슈 누나는 입구에 나가 앉아 별을 보고 있었다. 멀리 조그만 별 하나가 태어나는 게 보였다. 우리는 그 별을 글롬 별이라고 이름 지었다.
이튿날 아침 참새들이 수군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자동차는 정말 무서워. 엊저녁 저 길에서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또 치였잖아.”
죽은 고양이의 날인 어제와 산 고양이의 날인 오늘이 너무나도 똑같은 게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